[이성수칼럼] 노인 아파트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노인 아파트

코로나19가 물러가고 있다. 이제는 걸려도 감기 수준으로 가볍게 앓고 일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코로나 역병을 한 달 전에 내가 걸려 우리 협회 문화대학 입학식에도 불참했다.  

아내가 감염되고 5~6일 후에 내게로 옮겨 10여 일간 앓았다. 내가 살고  는 노인 아파트 주민들은 걸릴까 봐 경계하고 우리 내외는 두문불출 숨어서 지내야 했다.


처음에는 아내가 독감에 걸린 줄 알았다. 증세기 꼭 감기 같았기 때문이다.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나고, 가래가 나오고, 근육통이 있고, 식욕이 없고, 무기력하였다. 잠복기를 거쳐 내게 전염되었다. 


병원에 가서 검진했는데 코로나19 역병이었다. 고령이라 심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유증은 오래갔다. 글을 쓰기 위해 오래 앉아 있으면 어지러웠다. 한 달간 교회도 못 나가고 외출도 못했다.


페더럴웨이시(市)는 시애틀 다운타운에서 남쪽으로 약 30km가량 떨어져 있다. 이곳은 시애틀의 국제 관문인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과도 가깝고, 5번 고속도로가 도시의 동편을 관통해 접근성이 아주 뛰어나다. 쇼핑이나 외식은 물론 각종 친목 모임, 골프 등 운동 뒤의 회합 등에 더없이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서쪽으로 호수 같은 바다인 퓨짓사운드가 자리 잡고, 태평양 바닷바람이 불어와도 케스케이드 산맥이 막아 여름엔 덥지 않고 겨울엔 춥지 않아 잔디가 파랗다.

페더럴웨이시 인구 10만 1800명 중 한국교포가 9만 명쯤 살고 있다.

나는 페더럴웨이(Federal way)시에 있는 6층 노인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곳의 6층 아파트는 고층 건물에 속한다. 1970년에 벽돌로 튼튼히 지었다. 나는 이민와서 5년 후에 입주해 지금까지 26년간을 줄곧 이곳에 살고 있다. 킹 카운티(King County)의 노인 아파트는 여러 차례 리모델링하여 지금은 호텔급이다.


걸어서 3분 거리에 미국 대형 마트가 있고, 5분 거리에 한국 H마트가 있어 생활이 편리하다. 

봄이면 아파트 사람과 함께 눈산(Rainier) 기슭으로 고사리 꺾으러 가서 1m씩이나 쭉쭉 뼏은 고사리밭에 반해 고만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다. 여름이면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바닷가로 조개를 잡으러 갔다. 욕심껏 한 보따리 잡아 오다가 단속반에 결려 벌금을 낼 뻔했다. 이민 온 지 얼마 안 되어 몰랐다고 사정을 하여 벌금은 면했다. 그 당시는 한국 사람이 적었다. 단속반은 조개 큰 것 40개 이상 잡지 말고, 계는 크기가 ‘달라 지폐 길이’보다 커야 하고, 5마리 이상을 잡지 말아야 한다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가을이면 송이버섯을 따 그 향기에 취했다. 또 초겨울이면서 한치 낚시를 하여 이웃에 선물을 하였다. 한치는 오징엇과에 속하는 작은 오징어이다.

노인 아파트에는 두 대의 엘리베이터가 운행되고 있다. 그 엘리베이터는 너무 느려 갑갑하다. 한국에서 방문객이 와서 이 엘리베이터를 타보고 

“한국 엘리베이터는 무척 빠른데 왜 이렇게 느려요.?”


라고 묻는다. 한국의 엘리베이터는 빠르다. 금방 와서 떠나가고, 안내 방송 멘트도 빠르며 사람들 걸음걸이도 모두 빠르다.    

우리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느린 이유가 있다. 만일 한국의 엘리베이터처럼 휙 획 고속으로 운행한다면 매일 사고가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입주자가 모두 노인들이기 때문에 대부분 지팡이, 휠체어, 워커, 보행기와 같은 보조기에 의지해 다니는데 엘리베이터가 빨리 움직인다면 넘어져 사고가 빈번할 것이다. 


이번에 엘리베이터 수명(壽命)이 다 돼 새것으로 제작할 때도 자그마치 6개월 이상 걸렸다. 고속 엘리베이터 같으면 금방 새것으로 교체가 되겠지만 느린 엘리베이터만 따로 특수 제작하였기 때문이다. 

노인아파트는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면서 앞 잔디밭에 흙을 돋워 텃밭을 만들었다. 킹 군(郡 카운티(king county)은 노인들이 채소를 가꾸며 운동을 하므로 치매 예방을 위해 1.5평 정도의 텃밭을 분양해 주었다. 


나도 분양을 받았다.

우리 아파트는 총 84세대가 살고 있다. 러시아 사람과 한국 사람이 거의 반반으로 살기 때문에 밭도 반반으로 분양을 받았다.  

뭐니 뭐니 해도 한국 사람들은 상추를 제일 좋아한다.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한국 치마상추는 대인기이다. 봄에 일찍 씨를 뿌려 놓으면 2달 후부터 솎아 먹기 시작한다. 상추 한 포기에서 50여 장의 잎을 따 먹을 수 있다. 


상추 후작(後作)으로 열무를 심는다. 여름이라 열무는 빨리 자라서 심은 지 20일이면 뽑아서 김치를 담아 먹을 수 있다. 시판하는 열무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주기 때문에 공해가 있다. 그러나 직접 텃밭에서 가꾼 무공해 유기농 열무는 돈 주고 살 수 없다. 사실 텃밭에서 농사 짓는 주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공해 없고 싱싱한 채소를 먹고 운동도 하기 때문이다.


킹 카운티의 페더럴웨이 노인 아파트입주자들은 고사리를 꺾고, 조개를 잡고, 송이버섯을 따고, 한치를 잡고 미국에서 제일 느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린다. 그리고 텃밭에서 싱싱한 무공해 채소를 채취해 먹으며, 오이 호박 토마토도 따 먹는다. 작은 밭에 얼마 안 되는 채소를 가꾸지만 모두 미소 지으며 즐거워한다. 


나는 봄이 빨리 오길 기다리며 빈 밭을 돌아봤다. 달래가 벌써 싹이 나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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