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운드교회]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1)

전문가 칼럼

[리사운드교회]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1)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실 것을 선포하신 예수님은 이후에 제자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시는가? 마태복음 16장에는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첫 번째 선포와 더불어 이후 예수님이 걸어가실 구체적인 수난 계획이 소개됩니다. 마 16:2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서 나타내시니 우리는 내 문제 혹은 자녀들의 문제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알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것이 인생이지요! 그래서, 말씀은 언제나 내 발 앞을 비추는 등불인 것입니다. 삶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아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나를 부르신 분을 알고,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곧 믿음이라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첫 교회로 세워질 제자들을 그렇게 때를 따라 인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 고백 위에 교회를 선포하셨고 그 때로부터 이 예루살렘 여정의 의미들을 하나하나 밝히시는 것입니다. 그 길은 평소와는 다른 고난의 길, 십자가를 향한 길, 부활의 길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이것을 한 번에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분은 이 땅에 왕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왕이 자기 백성들로부터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죽임을 당한단 말입니까! 그런 의미에서 베드로의 반응은 당연하게 보여집니다.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 사실 한글성경에는 이 대목을 부드럽게 번역했지만 예수님을 심하게 책망하고, 비난 했다는 의미입니다. 


주님,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한 말씀을 하십니까! 베드로의 그 불 같은 성격이 드러날 만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이미 많은 것을 포기한 자들 아닙니까! 함께 해 온 그 3년의 여정을 통하여 이제 예수님을 확신가운데 


믿음으로 고백한 신앙고백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이 꺼내신 이 한마디는 모든 것에 찬물을 붓는 격 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고난을 받아 죽으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이 일은 결단코 일어날 수 없는, 아니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 또한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 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십자가의 길 앞에서 결코 타협이 없으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베드로야, 걱정해 주는 네 마음 내가 잘 안다. 그런데 난 괜찮다! 나는 이 일을 위하여 온 것이다. 그러니 기도로 도와 다오! 이런 식의 대화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건만, 주님은 단호합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여러분 이 장면을 곰곰이 묵상하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아무리 신앙고백이 뚜렷해도, 교회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살아가도,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며, 그 일을 성취하고자 애쓰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왜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이신지, 왜 교회가 성령 안에서 잉태되어야 하는지 “교회” 라는 그 이름 속에는 이렇게 연약하고 부족한 나를 도우시는 은혜의 손길이 함께하고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비로서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도에 대하여 말씀으로 도전하십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제자도 하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또한 너무 멀게 느껴지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먼저는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에 대하여 이런 질문을 한번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나는 정말 내 인생 속에서 예수님을 따라가며 그렇게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가고 싶은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질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면 자기 부인은 무엇이며, 자기 십자가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목사님, 저는 다만 성도, 교회라는 타이틀이 필요해요! 저는 아직 예수님을 따라서 그 좁은 길을 걸어갈 마음이 없습니다. 저는 왜 내가 그 불편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의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런 마음이 있다면, 자기 부인 이나 자기 십자가가 무엇인가를 놓고 고민하기에 앞서 이런 기도를 드리는 것이 오히려 더 유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님, 당신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고, 당신의 십자가로부터 흘러나오는 그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내 삶 속에서 더욱 깊이, 더욱 온전히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이 솔직한 기도의 고백이 더 풍성한 은혜의 삶으로 인도할 것이 분명합니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의 출발점은 내 의지나 각오가 아닙니다. 


억지로 지는 삶이 아닌 것이지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시작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처음 만나 그들을 제자로 부르실 때,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진정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분에게는 어떤 능력이 있으신지, 그분이 꿈 꾸시고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정녕 그 분이 어디를 향하여 나아가고 계신지, 그곳에서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실 것인지 보고, 듣고, 배우는 그 함께 함의 삶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결코 억지스러운 과정이 아닙니다. 나를 부르신 분이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당신의 손으로 빚어가시는 아름다운 사랑의 연합입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깨달아지고 나의 삶 속에 드러나는 삶, 그것이 제자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 무엇이 자기 부인이요! 또한 어떠한 삶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인지 계속해서 알아보기 원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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