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운드교회] 함께 함

전문가 칼럼

[리사운드교회] 함께 함

우지무라 간조 선생의 나의 동지(同志)라는 글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나의 동지는 내게 와서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의 동지는 나처럼 혼자 하나님을 의지하고 일하는 사람이다.

정부 또는 교회에 의지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어떠한 사람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다.


독립된 사람이어야 서로 존경하고 사랑한다.

참된 성도의 교제는 독립인의 교제이다.

우리가 서로 굳게 맺어지기를 원한다면 서로 의지하기를 그만두고 각자 하나님을 의지하고 혼자 서야 한다.”


혼자 온전히 섬을 강조함인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집을 바쳐주고 있는 기둥 같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이 기울어 지지 아니하고 또 바로 설 수 있음은 각 기둥들이 각기 자기의 하중을 잘 지켜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집뿐만 아니라 가정도 그러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결손 가정이 문제아를 만드는 것 같음입니다.

아버지가 아버지로, 어머니가 어머니로, 자녀가 자녀로 함께 할 때 그 집은 건강한 가정이 되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족은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가며 온전함을 유지 보수하기도 합니다.

목적은 온전함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서로 함께 할 수 있음의 조건은 각자의 온전함일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문 어귀에서 앉은뱅이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으켰을 때에 그 앉은뱅이가 스스로 일어선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앉은뱅이일 수 없음입니다.

혼자서 일어설 수 있음에도 앉은뱅이로 살려 한다면 누구도 어쩔 수 없음, 즉 함께 할 수 없음을 의미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분량대로’라는 말씀이 연상됩니다.


믿음의 분량이란 질이나 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소명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소명이 온전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제자 된 우리 각자에게 허락하신 소명들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온전한 것입니다.


그 소명 중에 제일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제일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부부가 결혼 45주년을 맞이하면서 돌아보면 지난날 함께 주신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여러 말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사랑으로 함께 함”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함께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찬양할 수 있음이 그 증거입니다.

함께 십자가의 사랑을 고백할 수 있음입니다.


지난 45년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외로움을 느낄 정도의 각행이 있었던 적도 물론 있지만, 그 것은 외로움을 가장한 함께 함이라는 것입니다.

부부가 각자도생하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마치 사울이 기름부음 받은 다윗을 해치려해 보지만 결코 자신이 그를 헤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포기치 못하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행할 필요가 없음입니다.


간혹 남편이 혹은 아내가 자기가 진 십자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그냥 어리광일 따름입니다.

문득 ‘성숙’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각자의 성숙 없이는 평온한 가정을 이룰 수 없음입니다.

일방적 성숙이 강요된다면 분리를 자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순간 ‘성숙의 과정이 복되도다’고 선포하고 싶습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John Gray)가 함께 할 수 있음은 기적입니다.

두 우주가 마치 하나인 것처럼 사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심인 것이기 때문입니다.우지무라 간조 선생의 나의 동지(同志)라는 글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나의 동지는 내게 와서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의 동지는 나처럼 혼자 하나님을 의지하고 일하는 사람이다.

정부 또는 교회에 의지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어떠한 사람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다.


독립된 사람이어야 서로 존경하고 사랑한다.

참된 성도의 교제는 독립인의 교제이다.

우리가 서로 굳게 맺어지기를 원한다면 서로 의지하기를 그만두고 각자 하나님을 의지하고 혼자 서야 한다.”


혼자 온전히 섬을 강조함인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집을 바쳐주고 있는 기둥 같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이 기울어 지지 아니하고 또 바로 설 수 있음은 각 기둥들이 각기 자기의 하중을 잘 지켜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집뿐만 아니라 가정도 그러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결손 가정이 문제아를 만드는 것 같음입니다.

아버지가 아버지로, 어머니가 어머니로, 자녀가 자녀로 함께 할 때 그 집은 건강한 가정이 되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족은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가며 온전함을 유지 보수하기도 합니다.

목적은 온전함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서로 함께 할 수 있음의 조건은 각자의 온전함일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문 어귀에서 앉은뱅이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으켰을 때에 그 앉은뱅이가 스스로 일어선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앉은뱅이일 수 없음입니다.

혼자서 일어설 수 있음에도 앉은뱅이로 살려 한다면 누구도 어쩔 수 없음, 즉 함께 할 수 없음을 의미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분량대로’라는 말씀이 연상됩니다.


믿음의 분량이란 질이나 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소명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소명이 온전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제자 된 우리 각자에게 허락하신 소명들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온전한 것입니다.


그 소명 중에 제일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제일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부부가 결혼 45주년을 맞이하면서 돌아보면 지난날 함께 주신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여러 말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사랑으로 함께 함”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함께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찬양할 수 있음이 그 증거입니다.

함께 십자가의 사랑을 고백할 수 있음입니다.

지난 45년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외로움을 느낄 정도의 각행이 있었던 적도 물론 있지만, 그 것은 외로움을 가장한 함께 함이라는 것입니다.


부부가 각자도생하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마치 사울이 기름부음 받은 다윗을 해치려해 보지만 결코 자신이 그를 헤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포기치 못하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행할 필요가 없음입니다.

간혹 남편이 혹은 아내가 자기가 진 십자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그냥 어리광일 따름입니다.


문득 ‘성숙’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각자의 성숙 없이는 평온한 가정을 이룰 수 없음입니다.

일방적 성숙이 강요된다면 분리를 자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순간 ‘성숙의 과정이 복되도다’고 선포하고 싶습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John Gray)가 함께 할 수 있음은 기적입니다.

두 우주가 마치 하나인 것처럼 사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심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가정의 모습을 외양으로 가졌다고 다 같은 가정일 수 없음입니다.

산 가정도 있고, 죽은 가정도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가정의 공통분모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의 가정에도 문제는 발생하지만 그 해답이 언제나 정해져 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깨어질 수 없음입니다.

믿음이 있는 가정의 동행은 주님과의 동행이라는 대전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이제 이제 또 2023년 봄과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우리 모든 가정이 예수그리스의 계절로 충만하길 기원해 봅니다.


실로, 가정의 모습을 외양으로 가졌다고 다 같은 가정일 수 없음입니다.

산 가정도 있고, 죽은 가정도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가정의 공통분모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의 가정에도 문제는 발생하지만 그 해답이 언제나 정해져 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깨어질 수 없음입니다.

믿음이 있는 가정의 동행은 주님과의 동행이라는 대전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이제 이제 또 2023년 봄과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우리 모든 가정이 예수그리스의 계절로 충만하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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