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샬롬교회 컬럼] 새로운 피조물, 새 예루살렘 성 1부

전문가 칼럼

[하늘샬롬교회 컬럼] 새로운 피조물, 새 예루살렘 성 1부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 요한계시록 21장 1~2절




  저는 모태신앙은 아니지만 아주 어릴 적부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학창시절과 젊은 날 생활의 대부분이 교회와 신앙을 빼놓으면 이야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마음을 다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한 지가 수십 년이고, 20대 초반에는 강력한 성령의 체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얘기하면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할 정도의 표적을 체험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진정으로 성령 안에서 거듭나 내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어 신앙생활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였습니다. 

성령의 외적인 역사와 하나님의 기적을 수없이 체험했지만 그러한 것들은 껍데기였을뿐 본질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더욱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는, 불을 지필 수 있는 계기는 되었습니다만, 저의 세계관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은사적인 체험은 땅의 세계에서 열심히 신앙생할을 하는 것을 도움을 줄 뿐, 땅의 세계에서 하늘의 세계로 옮겨다 놓을 수 있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말씀 뿐이라는 것을 저는 늘 강조합니다. 


저의 신앙에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사건입니다. 

그때 저는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군가의 아내였습니다. 외부에서 저를 볼 때는 예쁜 아기가 있고 안정된 가정을 꾸린 30대의 평범한 여자였으나 실상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저를 아무 문제 없이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평가해주길 원했고, 저 자신에게 또한 ‘나는 당연히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이야, 나에게 다른 삶은 없어.’라고 말하고 요구했습니다.


마음의 벼랑 끝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애를 쓰고 있던 어느 날,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공원에 있는 도서관에서 나와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어폰(earphones)으로 듣던 찬양 (본 어게인 : Born Again) 가사가 불같이 제 심령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사건은 지금까지 수십 년을 신앙생활을 했고 수없이 성령 체험을 했지만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해야 했던 영적 체험이었습니다.

내 안에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어떤 생명이 “나는 실존하고 있어!”라며 내 가슴의 문을 두드리며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보이는 육체만이 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 심령 안에서 소리치며 문을 두드리는 이 생명은 뭐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과 생각이 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습니다. 


  제 가슴에서 문을 두드리고 소리친 생명은 “지금까지 너라고 생각한 너는 진짜가 아니고, 지금 네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소리치고 있는 이 생명이 바로 진짜 너이고, 너의 진짜 생명이야. 너는 지금 네가 아닌 거짓된 자아로 살고 있어.”라며 저의 심령을 울렸습니다. 


  믿음 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늘 열매는 없었고 ‘천국은 죽어서나 누리는 것이구나.’ 생각하며 소망 없이 탄식만 하고 있던 저에게 그 영적 체험은 한 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내 안에 소리치고 있는 생명이 진짜 나라면, 이 생명은 지옥과 같은 삶에서도 천국을 누릴 수 있겠구나.’라는 막연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후, 막연했던 믿음은 성령께서 주신 말씀들이 줄줄이 꿰어 저에게는 확실한 증거로 변했습니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않으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진정한 믿음의 경주의 시작은 이렇게 그리스도의 새 생명인 ‘참된 나’와 ‘거짓 나’가 분별되고 쪼개지는 시점부터입니다. 


  어느 날 쇼핑몰(shopping mall)에서 사람들이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헬멧(helmet)을 쓰고 의자에 앉아 소리를 지르고 팔을 허우적대는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아마 가상현실 세계에서 다이나믹(dynamic, 역동적인)하고 무서운 레이스(race, 경주)를 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 공간에는 2종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상의 현실 세계에 들어가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레이스가 실재인 것처럼 팔을 허우적대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을 외부에서 흥미롭게 관찰하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저에게 “이 땅의 삶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고 경험하는 것들이 실재인 것 같지만 결국 없어질 것들이고 지나갈 것들이고 사라질 것들이다. 그것들 속에서 사람들은 허우적대고 있다. 진짜 생명은, 가상에 빠져서 없어질 것들을 경험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팔을 허우적대는 사람이 아니라, 결국 보이는 것은 허상이라는 것을 알고 관찰자의 시점으로 그 현상을 보는 사람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를 하나 더 들어 보겠습니다. 

  소파(sofa)에 앉아 어떤 드라마를 본다고 가정을 합시다. 드라마를 계속 보고 있으니,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양 몰입하게 되어 주인공이 웃으면 나도 웃고, 주인공이 상처받고 슬퍼하면 나도 같은 감정으로 울다가, 드라마가 끝나면 그러한 감정에서 벗어나 다시 나로 돌아오게 됩니다. 

  진정한 나는, 변화되는 환경 속에서 울고 웃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을 지켜보는 나라는 것입니다. 지켜보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생명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에게 환경과 역할이 주어집니다. 어떨 때는 회사에서 동료에게 폭언을 당하고 왕따 당하는 환경과 역할이 주어지기도 하고, 어떨 때는 회사 오너(owner, 소유주)의 아들과 사랑에 빠지는, 마치 신데렐라와 같은 역할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주어진 스토리(story, 이야기)에 매몰되어 기쁜 상황에서는 엄청 기뻐하고 슬픈 상황에서는 울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드라마와 같이 예측하지 못한 환경들이 찾아옵니다. 사단은 우리를 마치 드라마의 주인공과 같이 사고하게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자아라고 부르고 성경에서는 옛사람 또는 겉사람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자아의식을 통하여, 예측하지 못한 삶의 환경 속에서 우리를 감정에 매몰시켜 버립니다. 그러나 ‘참된 나’는 예측하지 못한 환경에서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삶의 드라마를 초월하여 그것을 지켜보는 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생명은, 변화되는 삶의 역할과 환경에 형태(감정, 의식)가 변하거나 매몰되는 존재가 아니라 그것들을 초월하여 있는 영원한, 진리로서의 생명 그 자체입니다. 


  [ 요한복음 1:17 개역한글 ]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우리가 수면 중 꿈을 꾸는 것도 좋은 비유가 될 것 같습니다. 꿈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학대당하고 맞고 있습니다. 꿈에서는 그것이 실재 같습니다. 그래서 실제 맞은 것처럼 아프고, 나를 때린 그 사람을 미워하는 감정을 가지고 언젠가는 나도 그 사람에게 복수할 것이라는 원한을 가집니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면 그것이 실재가 아니라 허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어떨 때는 꿈을 꾸면서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인지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자각몽이라고 합니다. 꿈에 내가 나오는데, 그것을 지켜보는 또 다른 내가 있어서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실재가 아니고 꿈이라는 것을 알고 꾸는 꿈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내로, 남편으로, 부모로 또는 자녀로 살아갑니다. 어떨 때는 평탄하게 별다른 근심 없이 살고 또 어떨 때는 환경에 문제가 왔는데 극적으로 해결이 되어 안도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꿈과 같이 지나갈 것들이고 허상이라는 것을 자각할 때, 우리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참된 생명의 의식을 가지게 되며, 자신이 더이상 드라마 속에 갇혀 변화하는 환경에 울고 웃는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삶을 드라마와 같이 시청하고 통찰하게 됩니다. 삶의 주체가 완전히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데 왜 삶은 지옥같습니까? 

삶의 주체는 여전히 바뀌지 않고 열심히만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열심히 하면 너희가 천국에 갈것이다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직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에 거하면,, 오직 그리스도안에서 우리가 천국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가 주체가 되어 이 땅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수의 증언(말)이 필요합니다.

 

이 증언을 먹고 하나가 될 때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본성이 자라 그리스도의 시각으로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안에서 이루어져 실존케 되는 하나님의 킹덤입니다. 


하늘 샬롬 교회 haneulshalom(장로회)

김 이스라엘 선교사

010-5091-7621(한국)

206-696-9894

경상남도 김해시 내외 중앙로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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