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운드교회] 성공 하셨습니까

전문가 칼럼

[리사운드교회] 성공 하셨습니까

우리는 살면서 언제를 실패의 때라고 여기십니까.

요즘엔 태어난 것 자체가 실패 같은 삶도 있을 것입니다.

로버트 슐러(Robert H. Schuller)목사님의 실패에 대한 정의처럼 실패가 실패자를 의미하지 않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실패를 경험했다고 모두가 실패자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왜 있겠습니까.


어쩌면 실패가 없으면 경험할 수 없는 성공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생각도 들지 않습니까.

실패 없는 성공이 과연 성공일까 하는 것입니다.

실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실패의 길목 일 수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공의 질)이라는 말을 만들고 싶지 않습니까.


성경 사무엘상에 나오는 나발이나, 찰스 디킨스의  소설 성탄절의  개심 전의 스쿠리지 같은 인물의 재물 많음은 좋은 성공이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일반의 생각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재물의 많음이 성공한 인생의 척도 알 수 없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추구하는 성공은 어떤 것입니까.

그런데, 

실제로 인생이라는 것이 성공과 실패만으로 정의할 정도로 명료하지 않은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당장 당면 과제들로 첩첩이 쌓인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성공을 추구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또 각자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성공한 신앙생활에 대한 정의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것입니까.

그리스도를 본받아 죽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죽기까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그러한 순종할 힘이 있다고 여겨지십니까.

그 순종을 힘의 크기가 얼마만큼 인지 가늠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는 왜 주저할 수밖에 없습니까.

왜냐하면 사수할 것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쪽에서는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왜 사수이어야 합니까.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그런데, 


그런 것은 이렇게 책상머리에 앉아서 논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지금 우리가 아무리 논하여도 그것은 베드로가 최후의 만찬에서 하던 영혼 없는 외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욥이 그 수많은 까닭없는 고통 속에서, 수많은 변증 속에서도 굽히지 않던 그 곧음이 언제 무너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앞에서 만나기 전까지의 어떤 말도 그냥 소음일 뿐입니다.

그러나 누구일지라도 하나님의 영광 앞에 거하면, 그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덧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것으로도 맹세할 수 없음입니다.

성자이신 예수님께서도 그 일을 위하여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었음을 말씀이 기록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21세기를 성령의 시대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누가 부인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음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스스로 성공한 인생이란 있을 수 없음입니다.

성공은 스스로 한 것인데 그 누구도 스스로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태여 정의하자면 오직 겸손한 자만이 성공한 자일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1등으로 완주한 자가 성공한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마라톤은 오직 주와 동행한 자만이 성공한 자일 수 있다는 것일 것입니다.

누가 연상됩니까.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러면 동행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목적지를 향한 뜻이 같다는 것일 것입니다.

어떻게 뜻이 다른데 같이 걸을 수 있겠습니까.

탈북자들이 중국 땅에서 잡히면 족쇄를 연결하여 북녘으로 넘겨진다고 합니다.

이런 강제적 동행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분명, 아닐 것입니다

족쇄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감동 감화가 그를 떨어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구리수도께서 우리 마음 보좌에 좌정하고 결심을 의미하는 것일 것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가 어떻게 하늘의 영화에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떠오릅니까.


이전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김에 성공한 바울일 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이제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주를 위하라고 담대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도 기쁨의 서신을 기록할 수 있으니 성공일 것입니다.

그는 마흔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은 자입니다.

세상 권세를 이기면 성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발이 땅에 닿아 있음을 부인하지 않고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하면 허락하신 성공이라고 여겨지지 않습니까.

우리 믿음의 선조가 성공 사례이라고 선포하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그 성공 사례는 실제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포기할 수 없음일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원하고 바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성공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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