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칼럼] “봄은 왔는데....”

전문가 칼럼

[정병국 칼럼] “봄은 왔는데....”

“봄은 왔는데....”


봄은 분명히 왔는데 날씨는 봄 날씨가 아닌듯하다. 옛말에 ‘춘래불사춘’이란 말이 있다. 즉 봄이 온 것은 분명한데 『날씨는 봄 날씨 같지 않다』는 말이다. 요즘 날씨가 바로 그렇다. 한낮엔 그래도 따스한데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다. 그리고 봄바람은 살(가슴) 속으로 파고든다고 하여 ‘임의 바람’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봄철에 피는 벚꽃은 보기는 아주 좋은데 눈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중에 끼는데 봄에 벚꽃만 피면 여지없이 눈이 가렵고 붉게 충혈이 된다. 세월이 흐를수록 조금씩 덜한데 금년엔 거의 알레르기 반응이 없이 지나가는 듯하다. 아직은 입찬 말을 못하지만 지금이 한창 벚꽃이 만발했는데 별로 눈이 가렵지 않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봄이 오면 산과 들에 새싹이 돋아나고 그것들이 하루가 다르게자라고 변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콘도미니엄은 사방이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봄부터 생기가 돌기 시작하여 푸른 잎과 꽃을 피우고 이어서 푸르른 숲으로 변한다. 사시사철을 가만히 집에서 맞이하고 감상한다. 시애틀에는 4철이 있어서 좋다. 


한국과 거의 같은 4계절이 있고 기후도 흡사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콘도에서 가까운 늪지대에 아내가 취미 삼아 조그마한 밭을 일구어 부추, 감자, 돗나물, 파를 심어 우리 두 식구는 충분히 먹는다. 그런데 늪지대라서 슬럭이 많은데 이놈들이 새로 나오는 싹을 잘라먹는다. 주위에 소금을 뿌리기도 하고 약을 사다가 뿌리기도 하지만 그놈들이 먹는 것을 100% 막을 수는 없다. 


산초나물과 돗나물은 슬럭이 별로 안 좋아하는지 그런대로 우리가 뜯어다가 먹을 수가 있다. 근처 산야에 민들레가 봄이면 자라나서 노란색 꽃을 피우고 있다. 근처에 있는 공원에 가면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다. 앞에는 바다가 확 트여 있어서 베이션 아일랜드가 확연히 보이고 가끔씩 큰 화물선이 지나가기도 한다. 


화물선은 주로 한국에서 오는데 현대와 삼성 컨테이너가 가득히 실려있다. 뒤로는 야산이 있는데 워킹 트레일이 있어서 걷기에 아주 좋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불과 10여 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공원인데 우리 동네와 판이한 자연 환경으로 둘러있어서 좋다. 우리는 겨울철을 빼고는 일주일에 두 세번 정도 이 공원을 찾는다. 


탁 트인 앞 바다를 바라보며 고향을 그려보기도 하고 어렸을 적에 살던 곳을 추억해 보기도 한다. 바다는 우리네 가슴을확 트이게 하고 고향도 그려보게 한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서 살아온 세월이 50년이 지났으니 한국에서 산 세월보다 더 길게 살았다. 앞으로 하늘나라로 이사를 할 때까지 여기서 살다가 갈 것이다. 


인간에게는 귀소 본능이 있어서 나이가 들고 늙으면 고향이 그립고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나지만 그 고향이 지금은 100% 신도시로 변하여 옛 모습은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다.그래서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민이 된 셈이다. 몇 년 전에 한국에 나갔다가 고향에 들렀는데 얼굴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만나지 못했다. 


이사를 했거나 이미 하늘나라로 집을 옮긴 것이다. 참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다. 고향에서 만난 사람들을 하나도 알아볼 수가 없으니 이제는 더 이상 고향이 아니다. 봄 이야기를 하다가 방향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어렸을 적에 뒷동산에 올라가서 벌렁 누워서 하모니카를 불던 생각이 난다. 나와 동 연배의 친구도 하모니카를 아주 잘 불었다. 


둘이서 “고향생각”이라는 곡을 합주하던 생각이 난다. 그 친구도 오래전에 고향을 떠나 어느 도시로 이사를 했고 다시 만날 수가 없다. 그리운 고향, 그리운 친구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아직도 살아 있는지....?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빨리 흘렀는지....? 봄 이야기를 하다가 고향 생각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내 마음도 그 속에 피고....” 이제 허연 머리칼을 거울에 비춰보면서 한세상이 잠깐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 김동길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70대는 시간이 70마일로 달리고, 80대는 80마일로 달린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게 빨리 세월이 흐르고 있다. 90대엔 90마일로 세월이 달리므로 걷잡을 수조차 없다고 하셨다. 


이제 이 찬란한 봄을 몇 번이나 더 맞이할까? 쏜 살처럼 찾아온 봄을 꼭 붙잡고 더는 달려가지 못하게 해야겠는데 자신이 없다. 삼천 갑자 동방삭이도 세월을 붙잡지는 못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왔다가 하나님을 붙잡고 믿고 살다가 가는데 그래도 우리는 갈 곳이 있으니 다행이다. 


그곳은 언제나 빛과 사랑이 넘치고 아름다우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니 영원을 기약할 수가 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 갔다가 돌아온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누구에게 물어볼까? 이 찬란한 봄에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흘렀네. 내년 봄에 다시 봄 이야기를 계속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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