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가짜와 진짜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가짜와 진짜

이성수(수필가)

                                            

내가 농업고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피를 뽑으러 가자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논으로 갔다. ‘피’란 벼농사에 아주 골칫거리인 벼와 똑같이 생긴 잡초이다. 벼를 모판에서 싹을 키울 때 바람에 날아와 ’피‘가 섞인다. 모가 자라서 논에 옮겨 심은 뒤 ’피’를 뽑아내는 일을 ‘피사리’라고 한다. 즉 피 제거 작업이다. 


초록색 모가 자라고 있는 넓은 논에 모두 다 벼뿐이지 피는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벼가 자라고 있을 때는 아무리 평생을 농사짓는 기술자라도 피와 벼를 얼른 구별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만큼 피는 벼와 생김새가 너무도 꼭 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피는 잎의 빛깔, 모양, 자라는 상태 등 무엇 하나 진짜 벼와 다를 바가 없이 너무도 꼭 닮았다. 


이럴 때 위폐감별기로 금방 가짜 돈을 가려내듯이 가짜 벼인 ‘피’를 감별할 수 있으면 좋은데 아직 그런 시스템은 없다.

나는 오늘 아버지로부터 피와 벼를 구별할 수 있는 노하우를 현장인 논에서 배웠다. 아버지는 “피 줄기는 뿌리 근처로 갈수록 붉은색을 띤다.” 하시며 보여주셨다. 뿌리 근처에 붉은색이 희미하게 보였다. 


아버지는 피와 벼 잎사귀를 뜯어 햇빛에 비춰 구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잎사귀를 햇빛에 비춰볼 때 투명한 초록이면 그것이 ‘피’이다”라고 하셨다. 

과연 잎사귀를 뜯어 햇빛에 나란히 비교하여 비춰보니 벼는 어두운 초록색이고 피는 밝고 투명한 초록색이었다. 그렇게 해보니 구별이 가능하였다.


아버지는 얼른 볼 때 피는 잎사귀 색이 벼보다 진한 푸른색을 띤다고 하셨다. 오랜 경험이 쌓이면 감(感)으로 피와 벼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햇빛에 비춰보고는 벼와 피를 구별하여 피사리를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일일이 대조해 보지 않고도 피를 뽑으셨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쪼여 땀이 비 오듯 하였다. 논물이 더웠다. 아버지는 논에 사는 개구리가 뜨거워 쪽쪽 뻗어 죽어야 풍년이 든다고 하셨다. 벼는 그만큼 고온 작물이다.  

아버지는 침침한 눈으로 용케도 피를 족집게처럼 잘 뽑아내셨다. 나는 아버지의 반의반도 피사리를 못하였다.


나는 농업고등학교에서 벼와 피를 구별하는 방법을 배웠다. 하지만 실습을 통해 하지 않고 이론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구별을 잘 못 한다. 

피사리를 했지만 남아있는 피는 벼를 누르고 벼보다 몇 배나 왕성하게 생육한다. 뿌리가 땅속 깊이 뻗어 비료분을 전부 흡수하기 때문에 벼가 자라지 못한다. 벼보다 빨리 자라 영글어 피 씨가 떨어진다. 이때 벼는 아직 영글지 않을 때이다. 


피를 벼와 같이 베여 수확하면 피 씨는 이미 다 논에 떨어진 뒤라 내년에 온 논에 피가 판을 친다. 그래서 피사리를 꼭 해야만 한다. 

피는 볏과에 속해 있어 피 제초제도 잘 듣지 않는다. 다음 해는 면역이 생겨 전혀 듣지 않는다.가수 신신애는 가짜가 난무(亂舞))하는 세상을 풍자(諷刺)하며 ‘세상은 요지경’이란 노래를 불렀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

/인생 살면 칠팔십년, 화살같이 속히 간다./

/정신 차려라 요지경에 빠진다./ 중략.....

배우이자 가수인 신신애가 1993년에 이 노래를 불러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가짜를 거꾸로 ‘짜가’로 비아냥대며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거짓 즉 짜가를 비판하며 세상은 요지경 속이니 조심하라는 노래를 불렀다.


나는 지금도 신신애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상념에 잠기곤 한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위조지폐가 진짜 돈 행사를 하고 가짜 벼 즉 ‘피’가 진짜 벼보다 훨씬 잘 자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도 가짜 참기름이 판을 치니까 참기름을 ‘진짜 참기름’이라고 부르고 있다. 


참과 거짓, 진짜와 가짜, 명품과 짝퉁(模造)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아니 가짜가 진짜를 능가하여 거짓이 진짜 행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가짜가 아무리 진짜인 양 속여 봐도 결국은 가짜임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인류는 참을 위해 거짓과의 전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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