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샬롬교회 컬럼] 새로운 피조물, 새 예루살렘 성

전문가 칼럼

[하늘샬롬교회 컬럼] 새로운 피조물, 새 예루살렘 성

제목: 성도의 영적전쟁, 자아의식과 그리스도의 의식 


예수님과 제자들이 한 배를 타고 바다에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다에 풍랑이 칩니다. 제자들은 풍랑이 치니 ‘우리는 죽겠구나!’ 생각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같은 공간, 같은 환경에서 예수님께서는 마치 자신은 풍랑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 주무시고 계십니다. 


나의 육신의 자아는 제자들과 같이 풍랑 앞에서 곧 죽을 것 같이 두려워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환경을 초월하여 통찰하는 창조자의 본성안에서 존재합니다. 마치 산모의 태아가 탯줄로 산모와 연결이 되어있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안에 거듭난 그리스도의 생명은 보이는 환경을 초월하여 계신 모든 우주 만물의 창조의 근원되신 하나님 아버지와 연결이 되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할 수 있는 것도, 육신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창조자와 연결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창조자와 탯줄로 연결된, 부활이라는 영원한 생명의 정체성만 제대로 가지고 있더라도, 지금 보이는 환경을 통해서 마귀가 자아에게 주는 두려움, 낙심에 타협하지 않을 수 있고 도저히 가망없는 어둠의 상황에서도 칠전 팔기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거듭난 생명의 정체성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곧 부활입니다. 


미가 7:8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제자들은 보이는 환경에 따라 요동하는 우리의 옛사람, 타락한 자아를 상징하고, 예수님은 보이는 환경을 초월하여 계신, 우리 안에 진정한 그리스도의 의식으로 살아 계신 생명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참된 나이고, 이것은 실재합니다. 

또한 이 말은 우리는 이 땅에서 비록 육신으로 살아감과 동시에, 부활의 실재로 살아가는 생명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성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사람을 몸 된 성전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새 예루살렘 성을 단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보이는 천국으로 생각해서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장성한 분량에 이를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는 새 예루살렘 성이 마치 신랑을 위해 단장한 신부와 같다고 하였는데, 새 예루살렘 성은 성전 된 ‘사람’을 일컫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을 사람의 육체에 넣어주셔서 사람을 다른 피조물과 달리 창조주 하나님의 신성을 가진 피조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성, 하나님의 본성은 결국 태초부터 살아 있는 말씀의 본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살아 있는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육체 안에 거했다는 것은, 본래 사람은 태초부터 살아 있는 말씀의 본성으로 살아가는 자였음을 뜻합니다. 에덴에서 아담은 그렇게 살아 있는 말씀의 본성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다스리고 통치하던 자였습니다. 


  [ 요한복음 10:34~36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 고린도전서 6:19~20 ]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성경은 태초부터 살아 있는 말씀의 본성이 일어난 거듭난 사람을 둘째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 증거가 되는 사람입니다. 내 자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 하면 이 땅에서는 칭찬과 상급을 받을지 모르지만, 자아의 신앙생활은 하늘에서는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안의 둘째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이 일어나 기도하고 찬양하는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아들이 아버지께 드리는 증거의 예배입니다. 그 사람으로 예비되어 있어야 진정으로 단장한 새 예루살렘 성으로 휴거되는 것입니다. 


  [ 고린도전서 15:47~50 ]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 로마서 8:13 ]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뱀이 아담을 타락시키기 위하여 미혹하였을 때, 뱀은 아담과 하와 안에 있는 ‘혼’에 전쟁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그 전쟁은 혼의 전쟁이 아닌, 영과 영의 전쟁입니다. 


 사단의 목적은 아담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영을 죽이는 것입니다. 사단은 아담과 하와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영을 직접 죽일 수는 없습니다. 혼은 영과 결탁되어 있습니다. 혼은 영의 문입니다. 사단이 아담의 혼을 타락시키면 그의 영은 자동으로 타락합니다.


  [ 창세기 3:1~6 ]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혼은 육체로부터 오는 감각의 정보를 처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혼은 지, 정, 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교육 수준도 다르고, 삶의 환경에서 주로 느껴왔던 정서도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동일한 정보라도, 각 사람의 혼은 그것을 다르게 처리합니다. 

  컵 안에 물이 반이 차 있는 것을 보고 A라는 사람은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혼에서 정보를 처리하고, B라는 사람은 컵에 물이 반이나 있다고 처리하듯 말입니다. 

  뱀은 하와에게 먼저 선악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들려주고 직접 선악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육체의 감각을 자극시켜 선악의 열매를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로 생각하게끔 했습니다. 


  하와가 선악의 열매를 보았을 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와의 혼, 생각에서 그렇게 정보를 처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래 하와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뱀의 생각이 하와의 생각, 혼의 영역으로 밀고 들어온 것입니다.


  하와는 본래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와가 가지고 있던 그 생각이 영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가진 생각입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입니다.

  그러나 하와는 그 생각을 뱀과의 영적 전쟁에서 빼앗깁니다. 뱀의 생각, 정보를 받아들이고 남편에게 전달하여 결국 아담과 하와 안의 하나님의 생명은 죽고, 그들은 하나님의 에덴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 요한복음 6:63 ]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 로마서 8:5~7 ]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태초부터 살아 있는 생명의 본성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살아가던 자들인데, 어떻게 뱀의 생각에 질 수 있습니까?


  뱀의 생각이 마치 하와의 생각인 것처럼, 하와의 본성인 것처럼, 하와의 감정인 것처럼 속이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분명 그것은 사단의 생각이었으나 하와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처럼 들어왔기 때문에 하와는 뱀에게 속고 패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이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목소리, 감정, 정보 등을 다 내 것이라고,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면, 아무리 신앙생활을 수십 년을 해도 뱀의 미혹에서 백전백패(百戰百敗)하게 되어 진리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 된 생명을 잃고 하나님과 분리된 존재인 ‘자아’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자아가 바로 뱀의 미혹으로 타락한 혼입니다. 그리고 자아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뱀의 문, 마귀의 문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그 문으로는 선한 모양이든 악한 모양이든 항상 뱀의 생각들이 치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 에베소서 2:2 ]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많은 기독교인들이 타락한 혼, 자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타락한 혼(지, 정, 의)도 새롭게 변화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으면 포도주도, 부대도 다 터집니다. 


  인생들이 다시 창조의 형상으로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새 영, 그리스도의 영은 그리스도의 마음인 새 마음에 부어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타락한 혼, 자아는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우리 자아는 이미 첫 사람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뱀의 본성과 하나가 되어 낙원에서 추방당한 것입니다. 

  옛사람은 하나님 앞에 이미 죽은 자입니다. 너무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뱀과 하나 된 자아를 기도와 말씀으로 깨끗이 하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노력하는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 시체를 아름답게 꾸미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늘 샬롬 교회 haneulshalom(장로회)

김 이스라엘 선교사

206-696-9894 

경상남도 김해시 내외 중앙로 73

haneulshal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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