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산이야기] 브라이스 캐니언 7박9일

전문가 칼럼

[김수영의 산이야기] 브라이스 캐니언 7박9일

2020년초 코로나19의 어두움이 실제로 다가오기 전 나는 연중 버킷 리스팅 중 하나로 아름다운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의 연필 촉처럼 뾰족한 봉우리들이 하얀 눈으로 덮인 고고한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오고 싶었다. 그러나 바로 떠나기 며칠 전에 그 계획은 불청객 코로나19로 무산됐다. 


순식간에 암흑 같은 거대한 그림자를 만들며 긴 시간 동안 우리를 잡아둬 일상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정신을 가다듬고 차분히 지난날을 뒤돌아보니 나는 이미 인생 후반기의 황혼에 접어든 것이다. 지난해 이루지 못한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부담감이 들자 나의 특기 중의 하나인 번개 같은 순발력으로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시동을 걸었다.


오늘이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을 내 생애 가장 젊은 날이라면 가자 지금! 하며 행동으로 옮긴 7박9일의 여행이었다. 달은 천만번 이즈러져도 그대로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금쪽같은 나의 인생에서 두 다리가 얼마나 버티며 견디어 줄 것인가를 생각하여 보니 바로 지금이 가장 적기인 것이었다.


우선 가장 저렴한 항공권으로 산우 2명과 함께 3좌석을 예약, 며칠 후에 우리는 라스베가스에 도착하였다. 차림새는 캠핑하러 온 여산꾼들 같지만 먹고 자는 곳은 깨끗하고 운치 있는 곳으로 정하고, 차는 안전한 SUV를 렌트하기로 만장일치로 뜻을 모았다.

라스베가스의 4성급 호텔에 머물었는데도 3인으로 나누어 보니 한 사람당 모텔8 가격이 나왔다. 


공주와 여왕처럼 우아한 곳에서 첫날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일어나 라스베가스를 출발, 유타주의 부라잇그 캐니언 국립공원으로 시속 75마일로 달렸다.

거의 5시간 반 걸려서 가는 길은 황망한 사막지대이었으나 하늘에는 새털같이 펼쳐진 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곧게 뻗은 국도와 주도는 길이 아니라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반기는 레드 카페트 같이 느껴졌다.


두 시간 정도 달리고 보니 뾰족한 돌기둥 봉우리들과 사암 절벽들이 겹겹이 쌓인 미로에서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 손을 놓고 운전을 하여도 직진으로 갈 수 있는 주도를 달리며 연신 터지는 산우들의 환호 소리와 경쾌한 음악 소리가 어우러져 자연과 인간이 함께 합창을 하는 듯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브라이스의 장엄한 자태는 수백만 년 동안에 걸쳐 빚어진 초대 걸작의 예술품처럼 느껴졌고, 날카로운 봉우리 끝은 빙하와 바람과 풍화작용으로 이런 창조물이 탄생하게 된다는 저력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형형색색의 기암과 협곡들 속을 걷는 여행은 선셋 포인트와 인스퍼레이션 포인트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정오쯤 되니 화씨 100도에 이를 정도로 수은주가 치솟았고 나바호 트레일을 지날 때 이미 2시간 이상을 걸었으며 경사가 심한 구불길에서 숨이 턱턱 차오르기 시작하여 아껴 둔 물을 2병이나 마셨다. 모두 13개의 전망대를 들르며 최고도 2,778m 높이에서 내려다 본 브라이스 캐니언 공원의 장관은 마치 자연이 건설한 거대한 원형극장 같았다.


어둠이 내리자 곧 은하수처럼 쏟아지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며 소녀처럼 걸어 보기도 하고, 브라이스 공원 지역에서는 첫 손가락을 꼽는 최고의 명소인 실내 공연장에서 흘러간 팝송들을 생생한 라이브 쇼로 감상하는 추억도 만들었다.

날이 밝자 아침부터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 브라이스 공원을 거듭 둘러보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듯 뒤돌아 보며 “그렇다. 


떠나는 새는 뒤를 어지럽히지도 않지만 돌아 보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또다른 기대와 설레이는 마음으로 아치스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2천여개의 아치형 기암을 보기 전 우리 모두는 낭만의 도시 모압에서 자유로운 복장으로 바꾸어 입고 가벼운 차림으로 멋진 레스토랑에 앉아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했다.


한국에서라면 아들을 바라는 아낙네들이 두손을 모아 빌어 볼 듯한 기암 기둥들이 우뚝 우뚝 서있는 곳을 돌아보고 우리는 다시 데드 호스 포인트의 슬픈 이야기를 생각하며 한참이나 떠나고 싶지 않았다. 수억년의 세월 동안 깍이며 빚어 놓은 붉은 사암과 사석의 계곡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청록색의 강줄기 옆에 숙소를 잡았다. 


다음날은 데드 호스와 캐년랜드 국립공원을 둘러 보고 돌아온 7박9일의 캐년 휴가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제는 2021년의 코로나와의 전투 속에 보낸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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