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51년 전, 신혼여행지 후포를 다녀오며

전문가 칼럼

[나은혜칼럼] 51년 전, 신혼여행지 후포를 다녀오며

서울에 와서 오자마자 남편이 결혼식 주례를 하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은혜 받은 아가씨인데 러시아 유학생이었다가 7년 동안 공부하고 한국에 와서 좋은 곳에 취직하고 살다가 신랑을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러시아어를 해야 하는 외국에서 사업을 하는 사장님의 둘째 아들로 아버지 회사에서 사업을 돕고 있는 사람으로 동갑내기였다. 


두 사람이 다 러시아어를 잘해서 잘 통하고 아주 아름다운 한 쌍의 선남선녀이었다. 결혼식이 토요일 11시 월드컵 체육관 안에 있는 결혼식장으로 우리는 그 안에 그렇게 큰 결혼식장이 많은지 몰랐었다. 그날 비가 오고 있어서 우산을 쓰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숙소에서 일찍 떠났는데도 결혼식 장소를 잘 알지 못해서 헤매었고 그 길로 곧 부산으로 가서 고려인 러시아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에 주일에 설교하러 가야 해서 짐까지 들고 가는데 결혼 예식에 늦을 것 같아서 달려가야 했다. 


식장 근처에 와서는 남편은 먼저 달려가고 나는 가방을 끌고 뒤늦게 갔다. 식장에 들어가서 보니 남편이 주례사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왔는데 사회자가 “주례 목사님이 나오시겠습니다.”할 때에 남편이 마침 도착해서 나가서 주례 말씀을 전하게 되어 시간이 꼭 맞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첫째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한다. 세계지도를 보라. 하나님을 잘 섬기는 나라들이 얼마나 복을 받고 잘 사는지를 알고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한다. 

둘째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 장수와 번영을 약속받는다. 

셋째는 자녀를 많이 낳아서 훌륭하게 잘 길러야 한다.”


라는 요지로 말씀을 전했는데 신부의 상사가 큰 은혜를 받고 자기도 쉬었던 교회에 다시 나가야 하겠다고 했다고 하고 신랑과 신부 부모님들이 너무 좋아하셨다. 마침 한국에 온 우스리스크 천사 합창단이 와서 축가도 불러주고 김바울 목사님께서 짧은 축사도 해 주셨다. 

신랑과 신부가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신랑은 먼저 직장인 외국으로 나가고 신부는 잠깐 더 한국에 남아 있는 동안에 우리에게 울진 자기 고향으로 여행을 오라고 초청해 주었다. 


우리가 1972년 2월 5일에 결혼하고 7일에 스승 장로님의 고향인 후포로 신혼여행을 갔었다고 하니 자기 집이 울진에 있다고 꼭 오시라고 예전부터 이야기했는데 이번에 1박 2일 예정으로 다녀오게 되었다. 신부가 울진에서 태어나서 자기는 이런 시골에 살지 않겠다고 외국에 나가서 살겠다고 하면서 러시아로 유학을 가서 7년 동안 고생을 많이 하면서 러시아 대학원을 나와 한국 서울에서 좋은 회사에 취직을 했고 이제 사업가와 결혼을 해서 중앙아시아로 나가 살게 되었으니 어릴 때의 꿈이 이루어졌다. 


인터넷으로 우리의 버스표도 샀는데 우리가 이미 샀으니 취소하라고 하고 울진으로 달려가서 간호사이신 어머니를 만나 그곳에서 유명한 전복 내장탕을 먹고 울진과 우리가 51년 전에 신혼여행 갔었던 후포를 갔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관광지가 되어서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예전에는 바닷가에 바위들과 파도와 오징어를 말리는 것과 멸치를 말리는 것을 보았고 남편과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시골에 가본 적이 없는데 새파란 바다가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집들이 모두 초라했었고 우리도 신학생인 남편이 돈이 없는 고로 장로님께서 자기 고향으로 초청을 해 주셨고 저녁마다 부흥 집회를 하게 해주셨다. 


그때의 후포의 위쪽인 울진 해안에서 간첩선이 발견되어서 온통 세상을 놀라게 했었다. 그때는 참 초라했었는데 지금은 그때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바닷가로 이어진 전망대의 맨 끝에는 인어 인형이 매달려 있고 바닥은 유리로 되어있는데 사람들에게 일일이 덧신도 주면서 얼마나 친절하게 인도하는지 감탄이 된다. 무엇보다 한 사람 당 3000원만 받아도 큰 수입이 될 텐데 돈을 한 푼도 안 받는 것이 너무 신기할 정도다. 


미국 라스베가스에 있는 그랜드캐년의 높은 산에 여행을 갔었는데 유리로 바닥을 해 놓고 걷는데 입장료를 내고 걸어야 했었다. 그곳에 아름다운 공원도 만들어 놓고 모두 공짜이고 화장실도 좋고 너무 편리하게 해 놓았다. 50년 만에 한국이 얼마나 놀랍고 깨끗하게 발전을 했는지 정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 감탄이 절로 난다. 


그곳 산에 있는 호텔에 묵고 온천욕을 하는데 이 온천물은 땅에서 자연히 나오는 온도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다른 물을 섞지 않는다고 자랑한다. 얼마나 뜨겁고 시원하고 좋은지 모르겠다. 산이라 공기가 아주 맑고 좋았다. 신부인 하슬(가명)의 현직 간호사인 어머니가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 온 딸의 운전을 못 믿어서 휴가를 내셔서 이틀 동안 운전을 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어머니가 믿음이 너무 좋아서 딸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하시고 아직 젊으시고 너무 아름다우시고 아버지도 젊으시고 핸섬하셨다. 박물관 구경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고 강원도 삼척을 거쳐 동해로 와서 서울 청량리로 오는 KTX를 타고 하슬이가 싱가폴에서 사온 예쁜 구슬백과 미역과 여러 가지 선물도 주고 헤어졌다. 하슬 어머니가 우리를 내려놓고 자기 혼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2시간쯤 걸린다고 하신다. 


사랑하는 딸 때문에 우리에게 대접을 하시느라고 애쓰신 그 어머니의 사랑이 너무 감사해서 기도가 절로 나온다. 서울에 와서 직장에 다니며 남편이 인도하는 신학교 강의에도 버스를 타고 달려와서 듣고 토요일 탈북자 신학생들을 위한 아침 10시부터 4시까지의 세미나에도 참석을 하고 김밥과 저녁도 같이 들고 말씀을 사모하는 하슬(하나님의 이슬)이가 너무 예쁘다.


“주님이시여! 저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딸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고 외국에 나가서 살 때에 하나님의 영롱한 이슬로 많은 힘들고 어렵고 삭막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촉촉한 하나님의 이슬로 적셔주세요.”라고 기도하게 되고 이슬람 지역이라서 한국 선교사님들이 다 쫓겨났는데 훌륭한 선교사님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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