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아카시아 나무 꽃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아카시아 나무 꽃

이성수(수필가‧서북미문협회원)


페더럴웨이 상록회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노인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빙고게임은 인기가 있다. 당첨되면 상품을 주기 때문이다.

한 시간 게임을 하지만 끝날 때는 언제나 아쉽다. 오늘은 L 권사가 빙고에 당첨되어 상품을 타고 그의 노래 18번 ‘과수원 길’을 열창했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이 노래를 듣는 순간 이맘때 고향 산천에 무진장으로 피어 그 달콤하고 이상야릇한 환상적인 향기가 진동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적어도 20여 일 동안 그 고상한 향기가 온 마을에 진동했다. 초록색 잎 사이사이로 눈송이처럼 하얀 꽃이 온 천지를 뒤덮었다. 공부방에서 책을 보려고 앉아 있으면 바람을 타고 솔솔 코에 닿던 그 설레던 향기! 어디라도 무작정 떠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던 그 향기는 사춘기의 내 마음을 산란하게 하였다.  


나의 소년 시절 아카시아꽃은 배고픔을 달랜 꽃이다. 춘궁기 보릿고개를 넘기기 무척이나 힘들었던 때 달달한 꽃자루 한 움큼 쥐고 따 먹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봄 일찍 진달래꽃도 따 먹고, 찔레순도 꺾어 먹어 봤지만 아카시아꽃의 달달한 맛과 매혹적인 향기는 이국에서 맛보는 것 같았다. 


벌이 꿀을 따려고 윙윙거리는 부산한 아카시아 나무 밑에서 어머니는 소쿠리 가득히 꽃을 따셨다. 집에 가지고 와서 밀가루 반죽을 하여 부침개를 부쳐 배고픈 우리들을 먹여주셨다. 참기름 냄새 풍기며 노릇노릇 지져진 아카시아꽃 부침개는 배고픈 시절 최고의 맛이었다. 어느 때는 큰 양푼에 보리밥과 아카시아꽃을 듬뿍 넣고 비벼 먹었다. 달착지근한 맛이 식욕을 돋웠다. 하얀 아카시아꽃이 꼭 쌀밥을 넣고 비벼 먹는 것만 같았다. 


쌀이 떨어진 지가 오랜데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착각을 느끼기도 했다. 아카시아꽃을 넣고 밥을 비벼 먹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바로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 영부인 육영수 여사에 관한 일화(逸話)이다. 서울 달동네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한 남자 어린이가 살고 있었다. 아빠는 택시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생활고에 가출을 했다. 밑으로 동생 둘과 몸이 불편한 할머니와 함께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도 살기가 힘들어 어려운 사정을 또박또박 노트에 연필로 적어 청와대 육영수 영부인에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부쳤다.


눈물의 편지를 받은 육 여사는 격려의 답장을 써서 금일봉과 함께 비서를 시켜 달동네를 찾아가 전달하도록 하였다. 비서가 산꼭대기 그 학생네 집을 어렵게 찾아갔을 때는 단칸방에서 식구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 하얀 쌀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비서는 하얀 쌀밥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 학생의 편지에 끼니가 없어 굶고 있다고 했는데 흰쌀밥을 먹고 있다니 영 믿어지지 않았다. 


비서는 좀 더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휜 쌀밥이 아니고 아카시아꽃을 살짝 데쳐 간장 하나만 놓고 수저로 퍼먹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하얀 아카시아꽃이 영락없는 흰쌀밥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때 마침 달동네 여기저기 우거진 아카시아 나무에서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그 집 초등학생이 방금 꽃을 따다가 식사 대신 아카시아꽃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비서는 집안을 살펴보았다. 어디에도 식량이 보이지 않았다. 식구 모두 흰쌀밥만 먹고 있다고 육영수 여사에게 보고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비서는 가난한 식구들을 위로하고 편지와 금일봉을 전달하였다.  


우리나라에 아카시아 나무가 들어온 것은 한일 합방 바로 전(1891)이다. 이 나무는 한 일본인이 중국 상하이에서 구한 묘목을 조선 땅에 심으면서 우리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 많은 아카시아 나무 전문가들은 아카시아 나무가 6가지 덕(德)을 갖춘 육덕나무라고 예찬하였다. 우선 콩과식물이라 뿌리혹박테리아에 의하여 공중의 질소를 고정하여 비료를 자체 공급한다. 그러므로 토사가 흘러내릴 정도로 척박한 땅에도 또 다른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민둥산에도 뿌리를 잘 내려 빠른 시간에 사방사업을 하니 이것이 일덕(德)이다. 


아카시아 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잘라버려도 금세 새싹이 나서 빨리 자라 화력이 좋음으로 땔나무의 역할을 하니 이것이 이덕(德)이다. 나무의 재질이 최고로 단단한 느티나무에도 뒤지지 않고 색깔, 무늬 또한 일품인 것이 삼덕(德)이다. 또 아카시아 나무의 꽃 속에는 질 좋은 맑은 갈색의 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들어 있어 양봉을 통해 우리들에게 꿀을 베푸는 배려가 사덕(德)이다. 보릿고개에 배고파 허덕이던 시절 꽃을 따다가 구황(救荒)식품으로 먹을 수 있으니 이것이 오덕(德)이다. 


끝으로 척박한 토양을 기름진 토양으로 바꿔 놓고 수 백 년 한없이 더 번성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자신은 척박한 토양에 의해 수명이 줄어들어 20~30년가량 살다가 조용히 300년도 더 사는 옆 소나무 등에 양보하는 미덕(美德)을 갖추었으니 이것이 육덕(德)이라고 하였다. 아카시아 나무를 일제 침략과 함께 일본 사람이 일부러 우리나라 땅에 심은 것이다. 이것은 조선 산을 망치려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성장 속도가 놀랍게 빨라 우리 토종나무를 모조리 죽이기 때문이다. 


또 뿌리 뻗음이 대단히 강해 산소의 묘(墓) 밑으로 침범하여 시체에까지 해악을 끼치는 불효막심한 나쁜 나무라고 싫어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것은 나무의 특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아카시아 나무는 산을 푸르게 하고, 땔감을 주고, 단단한 목재로 쓰이고, 잎은 영양가 높은 가축의 사료로 쓰이고 있다. 또 꽃은 배고팠던 보릿고개에 따먹은 구황(救荒)식품이었고, 산사태를 막는 사방(砂防)과 치산 효과를 줄 뿐 아니라 5월이면 매혹적인 향과 함께 질 좋은 꿀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 꿀 생산의 70퍼센트를 아카시아 나무 꽃에서 딸 정도이다. 1년에 아카시아 꿀로 2천억 원이 넘는 수입을 올리고 있으니 세상에 이런 좋은 나무가 또 어디 있을까? 그런데 아카시아 나무를 혐오하여 벌목함으로 요즘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꿀 생산도 날로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를 비롯하여 각처에서 아카시아 나무 식수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니 그나마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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