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3한4온을 연상케하는 '3일 비 4일 맑음'의 규칙을 반칙이나 하듯 잔뜩 찌푸린 날들이 연속되고 있다. 밝아져야겠다는 생각에 하던 일을 서둘러 마무리 한 후, 쎄미를 차에 태우고 동쪽으로 달렸다. 동으로 동으로, 햇빛이 있는 곳으로…

I-90를 타고 달리면 변화무쌍한 워싱턴주의 기후는 물론 판이하게 다른 자연의 모습과 함께 남북한을 모두 합친 크기의 워싱턴주 면적이 놀랍기만 하다.

크기 뿐만 아니라, 기후까지 알래스카와 애리조나를 몇시간 만에 경험할 수도 있다. 가랑비가 내리는 벨뷰를 떠난지 40분만에 I-90 52번 출구의 서밋스키장은 이미 폐장 되었지만 산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다. 다시 40분쯤 달리면, 86-105 출구까지의 하이웨이 양 옆으로 보라, 주황, 흰색의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협주곡을 연주하듯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개선장군처럼 지나고 싶을 정도로 기분전환이 된다. 풍력기들의 움직이는 손짓은 한폭의 생명을 불어 넣은 그림 속을 달리는 듯하기도 하다.

콜롬비아 강을 바로 지나면 저 언덕위로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가 나를 내려다 본다. 말을 한번 타 보려고 급경사를 오르려니 종아리에 힘께나 주어야 오를 수 있다. 그러나 그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경관은 정말 일품이다. 다시 151번 출구에서 나와 17번 도로를 타고 30분 정도 달리면 소프 레이크(Soap Lake)가 나온다. 긴 겨울에 휴가라도 한 냥 빈 가게터가 적막감을 주기도 한다. 30분만 더 달리면 올 여름 성황을 이룰 리조트들이 손님맞이 단장에 한창이다.

선 빌리지(Sun Villige)와 드라이 폴스(Dry Fall)를 지나기 전부터 약 20마일은 1억5천년 전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때는 나이아가라 폭포수보다 더 웅장했던 곳이다.

그곳에 도착하기 전 오른편에는 7개의 커다란 동굴들이 보인다. 바위 계단을 타고 올라 보니 자이언 공원같은 암석군이 호수와 어우러져 병풍처럼 띠를 두르고 있다. 1500년 전 토착 인디언들이 짐승과 물고기 사냥을 나와 그들이 살고 있던 원집으로 운반하기 전 임시거주지로 지내며 불을 피운 자취 등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외부인들에게 자신들만의 것들을 모두 빼앗기고 떠나야만 했던 인디언들의 애환을 고요히 흐르는 물소리는 철새의 춤에 맞춰서 속삭이는 것 같다.

에버그린의 시애틀 이라면, 수억년 전부터 내려오는 암석이 들려주는 전설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모두 두고 갈 화려함을 내려 놓고, 비오고 구름있는 곳을 벗어나 맑은 햇살과 봄꽃들의 향연이 있고 고요가 있는 곳을 돌아 본다.

주말에 잠깐이라도 가족과 함께 당일 코스도 좋지만, 1박 정도의 캠핑을 계획하고 간다면 정말 멋진 여행이 될 것이다.

오늘 문득 오정방 시인님의 글이 생각난다.

나그네는 새 집을 짓지 않는다

나그네는

새 집을 짓지 않는다

지금 있는 곳은

잠시 머물고 있는 곳일 뿐

때가 되면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나그네는

욕심을 갖지 않는다

지금 가진 것은

잠깐 지니고 있는 것일 뿐

때가 오면 다 두고 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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