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교회] 다른 복음은 없다 - 시애틀한인로컬종교칼럼
다른 복음은 없다
2004년 남편과 많은 목사님 부부와 함께 터키와 그리스로 선교여행을 다녀왔다. 풍랑이 심한 바다에 배를 타고 하얗고 아름답게 관광지로 꾸며진 밧모섬에 들어가서 산꼭대기에 높이 세운 십자가를 바라보고 올라갔다. 그곳 산위에서 사도 요한이 기도해서 움푹 파졌다는 바위도 보고 하얀 집들과 빨간 꽃들과 새파란 바닷가 경치도 보았는데 날씨도 화창했고 너무나 아름다운 천국이었다. 그러나 본래 이곳 밧모섬은 사형수들을 유배시키는 곳으로 풍랑이 심하고 사방이 바다로 싸인 탈출할 수 없는 무서운 지옥 같은 감옥이었다. 죽이려고 애를 써도 죽지 않는 사도 요한을 먹을 것도 없는 이곳에 보내서 전도도 못하게 하고 죽으라고 보냈는데 요한은 이곳에서 밤낮 기도하면서 계시를 받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여 천국을 보여주었고, 이 캄캄한 불모지의 땅인 섬에 후세의 사람들이 모래를 퍼 나르고 하얀 집을 짓고 천국을 만들어 유명한 관광지로 만들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곳은 작은 섬으로 특별히 더 볼 것도 없고 저녁 식사를 하고 밤중에 크루즈 배를 타고 자면서 다음 행선지인 아테네로 가야 하는데 시간이 남아서 그곳에서 집시와 관광객에게만 전도하는 선교사님을 모시고 강의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그곳 정교회를 믿는 그리스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쫓겨나는 엄격한 법이 있는데 집시와 하층의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할 수가 있다고 한다. 그 선교사님은 교회사를 전공하셨고 천주교와 정교회와 그리스의 역사를 꿰뚫고 계시고 잊을 수 없는 감동의 명 강의를 하셨다.
밧모섬에는 정교회가 300개나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그곳에 십자가를 세우고 교회라고 한다고 한다. 터키는 일곱 교회가 있는 유명한 관광지가 있고 바울 사도가 전도한 곳인데 교회는 하나도 없고 천주교가 하나 있는데 돌팔매질을 당하고 무서운 박해로 철문을 굳게 닫고 주일에만 잠깐 미사를 드린다고 한다. 선교사님의 명 강의를 다 듣고 어느 목사님이 “당신은 정교회에도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정교회에 구원이 있다, 없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바울 사도가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정교회에서 전하는 복음이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과 똑 같은지를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판단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예수님께서 전하는 복음과 똑 같다는 확신을 가지고 갈라디아서를 썼다. 그러면 오늘날 목사님들이 전하는 복음은 바울 사도가 전하는 복음과 똑같은가도 깊이 생각해야 할 일로 아니면 저주를 받을 것이 아닌가?
(갈 1:6-9)에 ‘다른 복음’이란 말이 네 번이나 나오면서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안타깝게 외쳤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무섭게 책망하시고 그러므로 모진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고 본을 받으라고 하신다. 교회 지도자들, 목사, 장로들은 두려워 떨며 바울 사도와 예수님과 같은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래서 구원으로 가는 협착한 길로 인도하여야 하리라.
도대체 사도 바울은 무슨 복음을 전했을까?
첫째, 바울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했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십자가가 눈에 밝히 보이는 데도 다른 복음을 기꺼이 따라갔다고 책망 받았는데 우리 눈에 나의 죄 때문에 못박히신 주님의 십자가가 눈에 밝히 보이는가? 바울은 자기의 모든 학식, 명예 등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는데 오늘 주의 종들은 무엇에 사로잡혀있는가? 예수님의 제자 자격은 예수님과 함께했던 자, 부활의 증인이어야 했는데 오늘 우리들도 주님과 동행하고 부활의 증인들이 되어야 하는데 부활을 믿으시는가? 진단해 보자.
둘째, 바울의 복음은 성령 충만의 복음이었다.
뜨거운 사명감으로 신학교에 들어가서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목회를 하면서 너무 힘들어 세상과 타협하고 유혹에 물들고 결국에는 육체로 마치는 것을 책망하시지 않는가?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고 했다. 교회 공동체에서 생활할 때에 내 지혜로, 내가 영광받기를 원하지 말고, 사람들에게 칭찬 받기를 원하지 말고 오직 살아계신 주님 앞에서 그분의 영을 받아 행복한 평강의 삶을 살자.
셋째, 바울의 복음은 자아(自我) 죽음의 복음이었다.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함은 남에게 전파한 후에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한다(고전 9:27)고 했다. 그래서 이 길은 좁은 길이지만 주님이 함께하심으로 영광의 길, 기쁨의 길이다. 우리의 흙덩어리인 육체와 함께 정과 모든 욕심을 다 버리고 주님의 십자가에 나도 죽고 주님의 부활에 나도 동참하는 복된 삶을 사모하자.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부활장에서 죽어야 사는 비결을 말씀하신다. 내가 죽어야, 한 알의 밀알로 희생해야 가정도 사회도 교회도 살아나고 주님의 뜻만을 온전히 이루는 주님 마음에 꼭 합한 성결한 단체들이 되어 주님의 영광만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의 헛되고 헛된 짧은 생애를 통해서 내 자랑, 내 영광을 구하지 말고 나는 죽고 주님의 뜻만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사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