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운드교회] JUNETEENTH
먼저 AMAZING GRACE가 떠오릅니다.
노예선의 선장이었던 존 뉴턴이 회심하고 성공회 신부가 되어 자신의 죄를 자복하며 지은 찬송입니다. 처음 제목은< 신앙의 회고와 소망> Faith’s review and expectation이었으나 Amazing Grace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한 때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였으나 82년 평생을 허락받았습니다.
생애 말년 이삼 년 동안은 시력이 상실되고 기력이 허약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상태인 그의 생애 마지막 고백이 다음과 같이 알려져 있습니다.
“나의 기력은 점점 사라져갑니다. 그러나 나는 두 가지를 기억합니다.
하나는 내가 엄청난 죄인이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 예수는 위대한 구세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라고 고백하며 1807년 12월 21일 영국 런던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미국을 청교도의 나라로 정의하길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 시온 복지에 노예제도가 있었다는 것은 치욕스럽지만 역사적 사실로 남아있습니다.
교회가 없어서 노예제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말씀이 왜곡되어 받아들여질 때 일어난 일인 것입니다. 우리의 시대는 언제나 중세 암흑시대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여겨지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자유의지가 주님 밖에서의 것이 될 때 우리는 저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의 장망성(A Castle that will fall)에서 벗어날 수 없음입니다.
그러한 와중에 성도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이 되어서 1863년 1월 1일 노예해방을 선포하고 드디어 남부 연합과 북부 연합의 노예해방을 위한 전쟁이 시작되었고 거의 이 2년 4개월여 만에 전쟁이 끝나고 노예해방은 실현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 땅의 흑인 노예들은 자신들의 해방을 2개월간이나 알지 못하고 있다가 1866년 6월 19일에 그들이 모여서 해방을 자축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날이 다시 미국이 연방 공휴일로 제정한 것은 2021년 6월 19일에 바이든 대통령이 재가하고 난 다음부터라고 합니다. 거의 155년 기간을 노예였던 자만의 축제였다가 이제야 비로소 열한 번째 미국 국가 공휴일이 되었다는 것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듭니까.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할지라도 사탄이 그 권세를 잡은 이 말세에는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현실임을 보여줌입니다.
우리는 무엇에 열심을 내면서 나의 성실을 뽐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다섯 살짜리 우리 손녀가 요즘 몽키 바(Monkey Bar)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뒷마당에 설치하여 주었습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미 이 아이의 손바닥에서 굳은살이 집힐 정도입니다.
이 어린아이도 자기가 좋아하고 흥미로워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습니까.
스스로 Dear Grandpa인 나는 이 아이가 언제까지 몽키 바에 매달려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만 지금 저와 제 손녀는 함께 기뻐할 따름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항상 기뻐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 아이에게 지금 가장 열심히 내어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런데 옛적에 이 땅에 부모 형제를 떠나 팔려 왔던 아프리카인들은 과연 어떤 소망을 가지고 살았겠습니까.
그들은 왜 지금 내가 내 손녀와 누리는 이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되었던 것이겠습니까.
그들의 죄 때문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만 여겨지지 않습니까.
오히려 노예 상인들이 자초한 죄라고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
예레미야애가 5장 7절 말씀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결코 저들의 범죄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1970년대 후반에 방영되었던 “뿌리”라는 미국 드라마가 기억나지 않습니까.
감비아에서 잡히어온 소년 “킨타 쿤테”의 눈물 나는 생애를 그린 것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요셉처럼 꿈이 많은 소년이었지만 결코 요셉처럼 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있음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다름을 보여주는 감명 깊은 드라마였고 모든 미국인과 세계인을 회개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QT로 예레미야애가를 하고 있습니다만 거기에 나오는 유다와 애돔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며 극명하게 다름을 보면서 아버지 하나님 앞에 경외를 드릴 따름입니다.
애돔은 범죄한 유다를 징벌하는 채찍으로 사용되지만, 애돔은 그것이 죄가 되어 사라지고 이스라엘에는 회복의 기회를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그러한 미국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그 노예였던 자들이 미국의 백성으로 자리하게 하시며 함께 번영을 누리게 하심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높으신 뜻대로 미국을 택하셨기 때문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음입니다.
미국은 아버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역사를 가진 백성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빚어 사용하심이라 여겨짐입니다. 그렇습니다.
미국을 기회의 땅으로 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노예로 팔려 왔지만, 해방을 외면할 수 없는 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노예의 유월절이 어떻게 모두의 축제일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어쩌면 지금은 사탄의 노예로 살고 있음은 아닌지 누군가 물어온다면 즉시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까.
Juneteenth는 June nineteenth의 약자라고 합니다.
이 미국 땅에 두 개의 독립 기념일이 존재함이 기쁨 같기도 하고 아이러니 같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오늘도 JOHN NEWTON의 <신앙의 회고 와 소망> Amazing grace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찬양하는 날 되길 기원합니다. 히브리서 13:3 KRV
자기도 함께 갇힌 것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는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