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모세의 생수와 예수의 생수

전문가 칼럼

[나은혜칼럼] 모세의 생수와 예수의 생수

모세는 너무나 겸손하고 온유하여 그 온유함이 세상 모든 사람보다 가장 온유하다고 칭찬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유일한 사람이다. 그렇게 인정받은 모세가 광야 생활 마지막에 가데스에서 미리암이 죽어 장사하고 백성들이 목이 말라 모세와 아론을 원망할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라고 하셨다. 모세가 “패역한 너희여 들어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고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반석에서 물이 많이 나와 백성들과 짐승까지 모두 물을 마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희가 나를 믿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라고 모세를 꾸중하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제껏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을 당하고 고생하면서 저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걸어온 모세로서는 얼마나 원통한 일이었을 것인가? 그러나 “우리가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라고 마치 자기가 물을 내는 것처럼 말하고 “명하라”라고 하셨는데 두 번씩이나 지팡이로 반석을 친 것은 혈기를 부린 것이다.

 

반석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다니던 그리스도로 광야 생활 초기 르비딤에서 물이 없어 갈증으로 허덕이던 백성들이 모세에게 물을 달라고 소동을 부릴 때에 하나님께서 “반석을 치라”고 하셨고 그때 반석에서 물이 터져서 사람과 짐승들의 갈증을 해소하였다. 반석을 치는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으로 한 번만 치면 되는 것이고 다음부터는 간절히 구하기만 하면,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가장 온유한 모세가 그런 실수를 했다면 오늘날 많은 주의 종들도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인가? 그래서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병을 고치고 많은 능력을 행하였어도 “나는 너를 모른다. 너는 네 일을 하고 영광만 받다가 왔구나.”라고 하시면 어찌할 것인가? 항상 두렵고 떨면서 구원을 이루라고 하셨다. 광야 생활 초기(출 15장)에 마라에서 물이 써서 백성들이 물을 마실 수가 없었을 때에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한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라고 하셨다. 나뭇가지를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져서 온 백성들이 마실 수가 있었다. 


우리의 삶이 고달프고 벽에 부딪쳤을 때에 주님의 십자가를 깨닫고 믿음으로 승리한 인생들의 간증을 우리는 많이 알고 있고 우리도 모두 체험하지 않았는가. 

사람의 몸은 70%가 물로 되어있어서 좋은 물만 잘 마셔도 모든 질병에서 헤어날 수가 있다고도 한다. 물이 귀하고 생수가 없는 아프리카에서 물을 길으러 온종일 물지게를 지고 걷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아프리카는 아이들을 많이 낳는데 사람들 수명이 짧고 모두 일찍 죽어서 아이들만 많고 노인들이 별로 없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 속에서도 물 때문에 갈증으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그때가 더 좋았다고 모세를 원망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배신하는 것으로 애굽에서 노예였던 때가 좋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인데 오늘의 크리스천들, 나 자신을 돌아보아도 항상 감사하고 살아도 부족한데, 범사에 불평과 원망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광야 백성의 모습이 꼭 내 모습으로 깨달아져서 간절히 회개한다. 


광야 초기의 르비딤(출 17장)과 말기의 가데스(민 20장)에서 물이 없어서 백성들이 애굽에서가 더 좋았다고 아우성을 치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가?’라고 의심하므로 백성들이 다투었으므로 그곳의 물을 두 곳 다 므리바의 물이라고 하였다. 광야 생활 초기의 르비딤의 뜻은 쉬는 곳, 안식과 평화라는 뜻으로 이제 주님의 은혜로 광야 생활 속에서 평화롭게 안식을 하고 살라는 뜻이고 광야 생활의 끝에의 가데스는 ‘거룩하다’(카도쉬)는 뜻으로 광야 생활 끝에는 거룩하게 살아야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은 광야 생활로 원망과 불평을 할 수밖에 없지만 주께 기도하면서 인도를 받고 범사에 감사만 하면서 순종하고 살면 기적으로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시고 주님의 백성으로 안식하고 평강으로 살다가 말씀을 깨닫고 주님의 거룩함을 사모하고 닮고 천국으로 들어오라고 하신다. 요한복음에 4장에 우물가의 피곤하고 목마르신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 좀 달라”고 하시니 어찌 사마리아인인 자기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하는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가 나온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고 지금 있는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라고 하니 사마리아 여인이 놀라서 선지자시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보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 사람들에게 “와서 보라!”라고 전도하러 달려가서 많은 사람에게 전도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셨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피곤하고 목마른 작은 예수님들, 선교사님들, 주의 종들이 계시다. 우리는 그들에게 육신의 생수를 드려야 하고 그들을 통해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하늘의 말씀을 듣고, 생수를 마시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


모세가 갈증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에게 준 생수는 다시 목마를 수밖에 없는 생수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는 성령이시고 성령을 받지 않으면 천국을 볼 수도 갈 수도 없으니 우리는 꼭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 성령을 받아야 예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깨닫고 주님의 마음을, 인류를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과 사랑을 깨닫고 이 세상이 얼마나 악하고 계속 죄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를 애통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는 전쟁터로 언제 더 큰 전쟁이 터질지 모르고, 알 수도 없고 약도 없는 괴이한 질병과 화산이 터지고 지진과 쓰나미가 계속 일어나고 경고의 나팔을 불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 순간에만 깜짝 놀라고 다시 무서운 죄 속에 빠져들고 있는 것을 본다. 청년들이, 인류가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할 것인가? 주님의 말씀밖에는 없다. 허무하고 헛된 이 세상에 잠깐 나그네로 살면서 저 영원한 내 고향 본향을 사모하고 깨끗하고 거룩하게 살기를 소원하고 눈에 보이는 이 세상도 너무 아름다운데 저 천국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영의 눈을 떠서 바라보고 그곳을 행하여 날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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