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운드교회] 내집 정원의 청지기

전문가 칼럼

[리사운드교회] 내집 정원의 청지기

가지마다 충실하게 하얀 꽃이 핀 삼색 체리 나무를 보면서 더 이상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눈앞에 있는 가지부터 저 몇 길 높은 곳에 있는 가지까지 그 어느 것 하나에도 소홀함이 없이 빼곡히 하얀 꽃이 피어 머물러 있음입니다. 백 송이의 꽃이 아니라 만 개의 꽃 이상이라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17년 동안이나 우리 집 정원에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꽃이 맺은 적은 없었던 것 같으므로 어떤 감동조차도 일으킵니다. 


그 쓸모없이 키만 크다고 여기며 해먹(Hammock)을 달아 놓고, 아이들 그네를 다는 데만 사용하였는데 이제는 드디어 빙 체리나 레이니어 체리가 아니라 삼색 체리 나무의 이름값을 하는 것 같아 내가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렇습니다.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게 됨입니다. 모든 가지가 만 가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냄 같음입니다. 이제 그 꽃들이 지고 그 꽃송이가 세 가지 체리의 모습을 보일지, 혹은 그렇게 되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음입니다. 


이 아름다운 것을 보게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도 이런 것을 볼 수 없는 우리 최영호 집사님에게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나는 볼 수 있고, 그 부부는 볼 수 없지만, 아버지 하나님께 대한 찬양함이 내가 더 크다고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나로 겸손해지게 함을 고백합니다. 오늘 새벽에도 일어나서 채팅을 위하여 내 방에 들어와 책상에 앉았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가서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저것을 나름대로 2시간여를 손봤지만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손전등을 의지하여 QT를 시작하고 거의 7시 반 정도에 마치고, 다시 고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사무엘하 13장이었습니다. <가문의 치욕으로 이어지는 잘못된 욕정>이라는 제목으로 다윗의 장자 암몬이 누이인 다말을 겁탈하는 장면을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한 말씀인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이 너무나 큰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암몬의 행위를 아는 다윗은 그 사랑하는 아들에게 어떤 말로 채찍을 가할 수 있겠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왕 다윗은 아들인 솔로몬에게 왕위를 이어가게 하는 성공한 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는 믿음의 가문을 계승함에도 성공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Power를 다시 점검해야 하는 숙제를 갖고 있었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동안에 잠시도 그것을 떠올리지 않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은혜받은 자가 되어 다시 차분하게 유튜브를 살펴보다가 어떤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확신 가운데 아까도 살펴보았던 Breaker를 다시 차분하게 점검하는데 무언가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을 발견하고 집중적으로 도전하였는데 결국 그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분명히 다른 Breaker들과 똑같은 방향을 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 되고 고치게 되었음입니다. 그러면서 편안한 마음, 여유로운 마음이 곧, 답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우리 마당 삼색 체리 나무를 너무 몰랐던 것처럼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답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 여유로운 마음, 곧 평강의 신이 해결의 첩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치고 나서 보면 그 고장이 당연한 것 같지만 핵심을 못 찾으면 모든 것이 모르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 삶에서 발생하고 초래되는 것들을 다시 한번 살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발생은 예기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고, 초래라는 것은 무엇인가 원인이 있고 그 결과로 일어나고야 마는 것이라고 합니다. 


발생하는 것은 일어나지 않아도 이상한 것이 아니나, 초래는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것일 것입니다. 정원을 둘러보면서 작년에 피했던 것 중에 다시 봄을 맞아 움트고 싹이 트는 것도 있고, 겨울의 혹한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삶>을 이루지 못하는 것들도 있음을 봅니다. 그러면서 내 집 병원의 주인이 누구인가 묻고 싶어집니다. 내 집 병원의 주인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물주시고 봄바람을 가져오시기 때문입니다. 


이 Evergreen State의 모든 수목의 주인은 분명히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내 집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우리는 단지 창지기로서의 정원사일 뿐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게 됩니다. 정원하면 우리는 에덴동산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민 와서 처음으로 캐나다 빅토리아의 부차드 가든을 방문하고 나서 우리도 그 같은 정원에 대해 꿈꾸게 되었습니다. 부차도 가든의 입구를 지나 약간의 언덕에 올라섰었을 때 처음 가졌던 감동은 잊히지 않음입니다. 


갑자기 눈 앞에 펼쳐지는 그 꽃동산은 마치 에덴을 보는 것 같은 감동이었습니다. 우리 집의 작고 작은 정원에도 그 같은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Plants의 이름은 잘 외워지지 않지만, 그 꽃들과 열매들의 예쁨과 맛은 기억하지 않을 수 없음이기 때문입니다. 지고 피고, 지고 피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우리의 교만 같기도 합니다.


전도사의 기자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될지라도 우리는 그저 주어지고 허락된 삶을 불평 없이 기뻐하며, 감사하며 모진 구석 없이 살아야 하는 소명이 있는 존재라고 말하고 싶음이 저 싹처럼 움터 오릅니다. 오늘도 오늘의 소명에 충실하며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는 날 되길 기원합니다.


[ 전도서 12장 1절 KRA ]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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