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샬롬교회 컬럼] “왕자와 거지” 그리고 십자가

전문가 칼럼

[하늘샬롬교회 컬럼] “왕자와 거지” 그리고 십자가

“왕자와 거지” 그리고 십자가


왕의 아들이 태어나면, 그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이 참 많죠? 마찬가지로, 우리 안의 빛의 생명은 날 때부터 굉장히 엄청난 것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 생명은 창조자 하나님과 동역하는 생명이고요, 창조자 하나님의 기업을 이을 후사이고, 그리고 창조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 곁에서 창조자가 되어 함께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가 된 생명입니다. 이분이 예수님이신데, 십자가 해산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 창조자의 아들의 명분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왕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하루는 살고 있는 궁정을 벗어나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궁정을 떠나서 바깥세상을 구경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바깥세상에서 정말 불쌍한 거지를 만나게 됐습니다. 왕자는 진심으로 그 거지를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게 됩니다. 그 거지와 같은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구걸하는 삶입니다. 항상 걱정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야 해요. 내일 양식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거지에게는 이 보이는 세계가 전부입니다. 그런데 왕자는 거지에게 구걸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이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왕자가 속해 있던 궁정과 왕의 통치와 다스림이 있는 그 세계를 이야기해줍니다.


그런데 왕자가 아무리 거지에게 이야기해주어도 거지는 “왕자님, 그곳은 나 같은 거지가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에요. 나는 여기가 더 익숙해요. 여기서 잘살 수 있게 돈을 주실 수 있나요?”라고 구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왕자는, 어떤 가르침을 줘도 이 거지는 자신이 거한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왕자는 자신의 생명보다 그 거지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결단하게 됩니다. 왕자는 그 거지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죽음으로 내어줍니다. 그리고 왕궁에 있는 왕께 유언을 합니다. “아버지, 저는 이 거지를 저의 귀한 친구로서 너무 사랑하게 됐습니다. 이 사랑이 얼마나 큰지, 저의 생명보다도 사랑하게 됐습니다. 저는 이 친구가 나의 신분과 나의 이름으로 왕의 아들의 자리에 가서 아버지의 나라를 통치하길 진심으로 원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부디 이자에게 나의 이름과 나의 신분을 부여하셔서 아버지의 나라를 통치하게 해주세요.”라고 유언을 하고 죽습니다. 그리고 그 거지에게는 자신의 이름과 자신이 입었던 옷과 신발을 내어주고, 왕께 나아가라고 합니다.



[ 요한복음 15:13 ]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왕궁을 떠나 세상 바깥으로 온 왕자님은 하늘 보좌를 떠나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왕자가 세상에서 봤던 거지는, 이 보이는 세계가 전부인 줄 알고, 육신에 갇혀서 내일 일을 위해 염려하며 사는 죄인 된 우리입니다. 왕자가 거지에게 얘기해주었던 왕궁의 이야기들은 아버지의 나라, 복음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듣고도 “나는 갈 수 없다. 나의 세계는 아니다.”라고 낙심하는 거지는 복음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육신의 나입니다.


왕자의 죽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거지에게 준 왕자의 옷과 신발은 ‘아들의 증거’를 상징합니다. 실제 왕자의 보이는 육신의 몸은 없지만, 이제 이 거지의 몸을 빌려 내가 산 것이니 이 거지를 거지로 하대하지 마시고 나로 여겨서 아버지의 유업과 통치를 맡겨 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안의 빛의 의식, 속사람은 예수님이 사랑한 가장 좋은 친구예요. 하나님 독생자의 죽음과 맞바꾸고 태어난 존귀한 생명입니다. 이 천한 나를 예수님의 귀한 친구로 여기고 나를 위해 자신의 이름을 기꺼이 내어주신 것을 알면, 내 육신의 소욕대로 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왕자의 이름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예수의 이름이 나에게 왔잖아요. 어떻게 나를 사랑하게 되셔서, 나를 좋은 친구로 삼아주신 것인지…. 이 예수의 이름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살아갈 때, 귀한 내 친구인 예수님을 위해 나도 이제 기꺼이 육신의 본성을 내려놓고 왕자의 본성으로 살려 할 것입니다.

왕자의 유언, 그리고 아들의 옷과 신발, 즉 아들의 신분을 받았다면, 거지는 이제 거지 때 생활했던 그 습관과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다른 거지들이 와서 “야, 어디 구걸하러 가자. 공짜로 엄청나게 준다는데?” 해도, 구걸하러 가면 안 됩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거지촌에 거지들이 모여서 토의하고 걱정해요. “내일은 양식이 없는데, 어느 동네로 구걸하러 가지?” 그러나 왕자의 옷과 구두를 받은 거지는 “뭘 구걸하지?” 하며, 다른 거지들과 수다 떨면서 염려하면 안 됩니다. 이런 거지 모임에 참석하면 안 됩니다.



[ 마태복음 6:31~32 ]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한번 돌아보세요. 거지 모임에 참석했어요, 참석 안 했어요? 거지촌을 빨리 떠날 생각을 해야죠. 빨리 떠나서 왕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하나님의 증거를 받았음에도 하나님께 나아가지도 않고 하나님의 증거, 복음을 그걸 팔아먹는 나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 왕자가 죽고 나에게 왕자의 생명을 내어주었으면, 왕자의 의식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왕자는 구걸자가 아니라 명령자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의 이전 의식들은 여전히, 이제까지 살아왔던 낡은 의식의 습관과 방식대로 살아가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너 왜 옛날처럼 안 사니?” 하면서, 거지 친구들이 왕자가 된 거지를 끌고 내려오려고 훼방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만나면, 삶이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이름이 바뀌고, 신분이 바뀌고…. 껍데기만 빼고 다 바뀌는 거예요. 그런데 뭣 때문에 못 바뀌나? 옛사람의 천성, 그 거지 때 살았던 그 익숙한 습성 때문입니다. 익숙한 것들을 하면서 왕자를 의식하며 사나요? 옛날의 나를 의식하면서 살잖아요. 그리고 어떤 자들은 이 거지 신분을 얼마나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지, 왕자가 그렇게 해 주셨는데도 시큰둥해요. “죽었다고? 나를 위해? 음, 은혜롭네.” 거지 노릇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만족함이 커서 예수의 복음을 들어도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지 중에서도 부자 거지거든요. 그럼 어떻게 하나요? 계속 땅에서 거지 노릇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지옥으로 떨어져 봐야 그때 그 생명이 어떤 생명이었는지 깨닫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의 복음에 마음이 무뎌지지 말라고 고난을 주시는 거예요. 마음에 이 땅에서 돈 좀 잘 벌고, 유명한 거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있으면 왕자의 생명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후 왕이 세상에 행차하실 때, 어떻게 하시겠어요? 오히려 왕자의 옷과 신발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더 큰 형벌을 받습니다. “왜 너는 나에게 나오지 않았어? 그걸 가지고 왜 아직도 거지촌에 있었어?” 더 진노하시고 더 심판하실 겁니다. 감히 내 아들의 생명을 얻고, 그 피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무시했다고, 왕께서 진노하시고 그들을 다 도륙하고 말살하시는 것입니다.



[ 욥기 19:29 ] 

너희는 칼을 두려워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이제는 세상 끝이며 추수 때입니다. 십자가 해산을 통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신분을 내어주신 사랑의 왕자이시며 이 땅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살던 비천한 나에게 값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옷(신분)을 내어주신 그분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의식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늘 샬롬 교회 haneulshalom(장로회)

김 이스라엘 선교사

206-696-9894

haneulshal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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