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레지나씨, 내가 약속할께요 레지나씨에게 빨간색 컨버러블 차 한대 사줄테니까….(2)

전문가 칼럼

[레지나칼럼] 레지나씨, 내가 약속할께요 레지나씨에게 빨간색 컨버러블 차 한대 사줄테니까….(2)

잠이 깊이 들었었다.


꿈속에서 무엇인가에 놀란듯해서 눈을 떠보니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몇 번씩 들어와 있다고 불이 빤작거린다. 아직 깨지 않는 정신에 눈을 비비고 전화 메시지를 보고는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우선 안경을 찾아 쓰고 메시지를 정확히 살펴보니 타코마에 있는 세인트 프란시스 병원에서 급하게 찾는 메시지였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며 눈에 눈물부터 고인다. ‘아니지! 지금은 아직 아니지요!’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는 차를 타고 타코마로 달린다. 시애틀의 새벽공기는 아직 차다. 거의 한 시간을 달려 병원으로 들어가 내 고객 ○○씨가 누워있던 방으로 들어가니 몇 번의 방문에 친해진 담당 간호사와 의사가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내 환자의 고객 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담당 의사를 보고 “지금 ○○씨가 어떤 상태지?”라고 묻는데 모두 고개를 푹 숙인다. 그리고는 “레지나, 미안해. ○○씨는 이제는 떠나셨어. Regina I am sorry he is gone” “아하 그랬구나! 좀 더 일찍 불러주지 그랬어”라고 원망스럽게 묻는데 간호사와 담당 의사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눈물만 흘리는 나를 바라보고만 있다.


한참을 이미 세상을 떠난 ○○씨를 바라보다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이 흘리며 울다가 보니 사후처리를 위해 모여든 소셜워커들이 이제 ○○씨를 시체안치실로 옮긴다고 말하며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나는 ○○씨를 시신안치실에 보내놓고 ○○씨의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아들은 연락이 안 되고 먼 곳에 사는 딸이 겨우 연락이 되었고 ○○씨의 전 부인이 연락이 닿았다.


나의 ○○씨의 소식에 모두 숙연해진다. 그리고는 딸이 얘기한다. “아버지를 그대로 보낼 수는 없고요. 우리가 시애틀로 가서 해결하겠습니다” “그래요! 가족들의 마지막 배웅이 좋겠죠!”


○○씨는 아내와 20여 년 전 헤어졌다. 어느 시간부터 이상한 행동을 보이며 두 어린아이를 예쁘게 단장시켜놓고 소파에 앉힌 후 지금 방송촬영 중이니 그대로 있어야 한다며 아이들을 종일 소파에서 꼼짝도 없이 못 움직이게 하고 아내에게 이상한 남자와 다닌다며 아내를 의심하고 마치 생기지도 않았던 일을 방금 생긴 일처럼 설명하고 강짜를 부리며 당신이 나를 죽이려고 음식에 무엇을 섞었냐며 의심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씨의 길고 긴 이상행동에 지친 심성이 고운 아내가 헤어지자며 이혼을 하고 ○○씨는 거의 20여 년간 시애틀 길바닥을 떠돌았다.


늘 종이 가방 두 개를 양쪽 손에 들고 긴 막대기 두 개를 갖고 다니며 달나라와 소통하고 있는 안테나라고 들고 다니던 망가진 우산대 두 개, 가방 안에는 청와대에 보내는 편지 한 묶음 ,예전에 레이건 대통령에게 보내는 너무나도 잘 쓴 영문편지 한 묶음, ○○씨는 사시사철 매일매일 시애틀 길을 헤매고 다녔다. 시애틀의 겨울엔 비가 억수처럼 내리는데도 ○○씨는 그 비를 다 맞으며 시애틀 구석구석을 다니었다.


시애틀의 구석구석 ○○씨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리고는 킹카운티 코트 우리 사무실에도 늘 찾아왔다. 내가 일에 파묻혀 바쁘게 일할 때 로비에서 누군가가 찾는다는 아기를 듣고 로비로 나가보면 ○○씨가 짠하고 나타나서는 반가워하고는 했다.


“레지나씨 잘 있었어요?”

“지금 어디서 오는 길이세요?”

“내가 지금 청와대에서 불러서 한국으로 나가 봐야 하는데 아니, 레지나씨가 나에게 그렇게 잘해주었는데 내가 그냥 떠나면 안 되니 레지나씨를 초청해서 함께 가려고요”

“아 네! 저는 그냥 여기서 있을게요”

“아니지요, 레지나씨, 레지나씨를 내가 잘 모셔야 하지요. 그동안 몇 년째유! 레지나씨가 내 수행원으로 일한지가? 내가 이제는 갚아야지요” 그러더니 지금 바쁘냐고 물으신다.

“아, 네 지금 좀 그래요”


“레지나씨 아주 중요한 일이니 잠깐만 시간을 내주어요?”마침 환자를 만나는 중이 아니라서 ○○씨를 상담실로 오시라고 해서 “그래! 무슨 할 얘기가 있으세요?”라고 물으니 “레지나씨, 레지나씨가 내 수행비서로 일한지가 벌써 20여 년이 되어가는데 마침 청와대에서 이번에는 꼭 대통령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간곡히 애원하니 내가 아무래도 한국으로 가야겠어요. 그래서 말인데 레지나씨를 내가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려고 해요. 자! 그래서 임명장을 내가 만들어왔어요. 여기에다 사인을 하고 참! 월급은 얼마나 줄까요? 지금 여기서 얼마 받지요? 한 달에 만 불 드리면 될까? 아니면 조금 더 드릴까? 자! 만 불 어때요?”

“저 김 선생님 저는 한국에 안 갈래요. 여기서 일할래요”


“아니 내가 대통령이 되어서 한국으로 나가는데 비서실장으로 대우도 잘해줄 텐데 왜 안 가요? 가야지요? 그리고 나는 레지나씨가 꼭 비서실장으로 수고해주어야 해요. 월급이 적어요?”


나는 ○○씨를 바라보며 “김 선생님 저는 이곳에 가족도 있고 해서요 한국에 나가기가 쉽지 않아요” ○○씨는 나를 보더니 심각하고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아니, 레지나씨 국가가 부르는데 남편과 아이들이 중요해요? 다 버리고 나를 따라오세요” ○○씨는 작은 백지 한 장을 꺼내더니 종이 끝 한 귀퉁이에 월급 만 불 그리고 나중에 올려줌이라고 쓰더니 사인을 하라고 했었다.


어느 날은 별안간 우리 사무실로 급하게 들어와서는 무조건 나를 찾으며 지금 내 사무실 2층에 백악관 각료 모임에 초청을 받아서 지금 참석해야 하니 자기를 그곳으로 안내하라고 떼를 쓰셨다가 경비들에게 쫓겨나가기도 했었다.


김 선생님은 한국의 고급인재셨다. 한국의 ○○대의 우수졸업생에 유명대학원출신 그리고 그분의 아내 역시 유명여성대학 출신이셨었다. 이분이 청와대나 레이건이 자기에게 갚을 돈이 7백억 원이라며 갚을 돈에 대하여 구절구절 글을 쓰셔서 나에게 백악관으로 보내 달라고 하셨는데 이분의 글을 받아보니 문장 실력이 아주 멋지셨다.


이분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애틀 바닥을 돌아다니시며 자기만의 세계에서 삶을 사셨다. 나를 찾아온 어느 날 나는 이분을 붙들고 간곡히 부탁을 드렸었다. 김 선생님, 지금보다 더 건강해지시려면 약을 드셔야 해요? 우리 사무실에서 약을 드릴 수가 있으니 저를 매일 꼭 찾아오실래요? 아니면 지금 머무르고 계신 쉘터로 약을 보내드릴까요? 이분은 내 말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펄쩍 뛰시며 일어나 나가셨다. 그리고는 거의 20여 일 나를 만나러 오시지 않으셨다. 레지나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며….


성인 정신질환 환자들이 약을 거부할 경우 약을 먹게 할 방법은 환자들이 남에게 해를 입히려고 할 경우와 자기 자신에게 해를 가하려고 할 경우만 제외하고는 강제로 약을 먹일 수가 없다.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이분에게 특별한 관심으로 대하고 일하였다. 조금 더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분이 시애틀이 아닌 타코마에는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타코마 세인트 프란시스 병원에서 이분의 아이디를 보시고 담당 카운셀러인 나에게 연락을 해준 것은 이분에게는 가족의 정보가 전혀 없었다. 물론 내 사무실 기록에는 이분의 전처나 자녀들의 정보가 있었지만, 이분들은 우리 사무실 이외에는 본인들의 정보를 알려주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원에 입원해있던 이분이 병원 음식을 거부하고 있다기에 한국식품점에서 전복죽 호박죽 그리고 몇 가지 간식을 사 들고 병원으로 이분을 찾아가 이분이 입원해있는 병실에 들어서니 이분은 나를 보더니 활짝 웃으시며 

“아이쿠! 내가 레지나씨 때문에 못살아! 어디를 가든 나만 쫓아다니니! 여기까지 찾아왔네!”라며 반가워하시면서 뭐하러 나를 쫓아다니냐고 했다. 그리고는 한마디 더 하셨다. “레지나씨 혹시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죠? 나는 대통령 될 사람이에요!”라면서!


간호사의 말로는 이분이 음식을 거부하니 지금 영양주사를 놓고 있는데 몸 상태로 보아서는 오래 사실 것 같지 않다고…. 나는 사서 간 전복죽을 병원 보조하시는 분에게 데워달라고 해서 ○○씨에게 먹이려 하니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씨가 입을 절대 안 연다.


나는 ○○씨에게 “아니 김 선생님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지금 이렇게 식사를 거부하면 못 일어나요. 기운 내셔서 몸을 챙겨야지요? 자 드세요?” 안 열어지는 ○○씨의 입을 어떻게 열까 궁리하다가 “참! ○○한국으로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해요.” 나는 전복죽 한 숟가락을 허공에 들며 “자 비행기가 떠납니다. 활주로가 열려야 하니 자, 입 벌리세요. 뷰융뷰융!” 하며 숟가락 비행기를 몇 번을 날려서 대충 전복죽 반 그릇을 ○○씨의 입에 넣어드릴 수가 있었다.


그래도 조금 기운이 생긴 ○○씨가 나를 쳐다보며 얘기를 했다. “레지나씨, 내가 레이건 전 대통령한테서 돈이 오면 레지나씨에 제일 먼저 빨간색 컨버터블 한 대 사줄게요. 그리고 우리 청와대로 함께 가서 일하자고요!” 내가 ○○씨를 방문하고 온 이틀 후에 나에게 빨간색 컨버터블 차(오픈카)를 사준다던 ○○씨는 새벽에 지친 삶을 떠나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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