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찰흙 공작(工作) 시간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찰흙 공작(工作) 시간

동리 입구에 황토산이란 나지막한 야산이 있다. 산의 윗부분은 황토고 밑 부분은 찰흙이다. 동리로 들어가는 소로(小路)길 30m가량은 찰흙이라 비가 오는 날이면 신발이 빠져 불편을 겪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황토산에 가 황토를 파오라 하셨다. 동리 사람들이 파가서 구덩이가 생겼다. 그곳에서 제일 색감이 좋은 곳을 찾아 흙을 팠다. 땅속에서 이런 곱고 아름다운 황토가 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이 흙을 그릇에 담아 지게에 지고 집에 왔다. 


어머니는 이 흙이 정월 열나흗날 액운을 막는다고 믿으셨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을 찾아 집안 곳곳에 고루고루 뿌리시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붉은색은 액운을 막는다는 주술적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황토를 뿌리면 나쁜 잡귀가 도망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이웃 면에 있는 황토 사과 과수원에 견학을 갔다. 빨간 황토에서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많이 열렸다. 마침 가을 수확기여서 우리는 대신 사과를 따주었다. 손으로 느끼는 사과의 감각이 탐스러웠다. 한 개씩 맛을 보라고 주었다. 비옥한 황토밭에서 자란 사과는 다른 밭에서 자란 사과보다 맛이 월등히 좋았다. 당도가 엄청 높아 달며 과즙이 입안 가득하고 거기에 새콤한 신맛에 침이 저절로 나왔다. 


이 사과가 바로 전국에서 유명한 ‘예산(禮山) 황토 사과’이다. 이 사과 먹다가 다른 사과는 맛이 없어 못 먹는다. 맛이 좋아 동남아, 러시아. 캐나다 등에 수출하고 있다.

황토 사과밭에 길이 나 있는데 그 길을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게 하였다. 맨살에 닿는 부드러운 황토의 촉감이 기분 좋았다.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벼 바심을 앞두고 우리 집 바깥마당은 찰흙을 파다가 맥질하여 안방 아랫목보다 더 반들거렸다. 추석 때 ‘땅따먹기 놀이’를 하기 위해 모여든 아이들은 마당에 누워 놀다가 일어서면 흙먼지가 하나도 옷에 묻지 않았다. 이렇게 찰흙으로 맥질한 마당은 깨끗하였다.

옛날의 초가(草家)집은 부엌, 방바닥, 벽, 천장, 지붕이 모두 황토였다. 우리들은 그 황토 속에서 살았다. 일 년에 한 번씩 찰흙을 파다가 물을 혼합하여 방 전체를 맥질하였다.


 벽에 도배도 하지 않았다. 엷은 핑크빛의 맥질이 끝나면 방안 가득히 흙냄새가 솔솔 났다. 이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진정되고 포근해졌다. 그 이유를 다음에서 알게 되었다. 즉 원양어업선을 타고 한 달간 바다에서 생활하는 어부가 흙을 밟지 않아 현기증이 나서 육지에 오르면서 제일 먼저 흙냄새를 맡는다. 또 수십 층 고층아파트에서 흙을 밟지 않고 공부하는 수험생이 어지러워 화단으로 내려와 흙냄새를 맡는다.


초등학교 4년 때로 기억한다. 하루는 담임선생님이 종례 시간에 “내일은 찰흙 공작을 하겠다. 집 근처에 찰흙이 나는 학생은 손을 들어!” 손을 든 학생은 나 혼자 뿐이었다. “미야모도(宮本)만 남고 다들 집에 간다.” 일본 강점기 때라 이(李)를 미야모도라고 일본식으로 불렀다. 선생님은 교무실로 데리고 가서 찰흙에 대하여 자세히 물었다. “찰흙이 얼마나 차지냐? 찰흙이 황토와 같이 섞여 있느냐? 마을 사람들이 찰흙을 파가느냐? 파다가 어디에 쓰느냐?” 나는 묻는 대로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찰흙이 나는 곳을 직접 가보고 싶다며 앞장서라고 하였다. 나는 선생님을 모시고 학교에서 2km나 떨어진 길을 걸어갔다. 동리 입구에 있는 황토산에 도착하여 찰흙이 나는 곳을 답사한 선생님은 신기하다며 반가워하였다. 찰흙을 손으로 떼어 뭉쳐 보고 점도(粘度)를 살펴봤다. 선생님은 6학년 학생네 집이 어디냐고 묻고 그 집에 가 찰흙을 파서 내일 등교 편에 가지고 오도록 당부하였다.


다음 날 6학년 학생이 찰흙 덩어리를 지참(持參)하고 학교에 갔다. 그 찰흙 덩어리가 우리 교실에 놓였다. 고대하던 찰흙 공작 시간이 돌아왔다고 아이들은 기뻐했다. 선생님은 어제 우리 마을에서 채취한 찰흙으로 공작 시간을 위해 미리 여러 그릇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반장과 부반장이 선생님을 도와 찰흙 덩어리를 2개로 나누어 차지게 주물렀다. 말랑말랑하게 될 때까지 계속했다. 이것을 도시락 크기만큼 칼로 베어 한 개씩 분배했다.

선생님은 “그릇을 만들기 전에 내가 시범으로 그릇을 하나 만들어 볼 터이니 잘 보고 따라 해야 한다. 먼저 나누어준 찰흙을 다시 한번 주물러야 한다. 찰흙은 주무를수록 점도(粘度)가 생겨 그릇 만들기가 쉽다. 


말랑말랑한 찰흙을 칼 국수할 때 밀가루를 밀듯 연필로 찰흙을 민다. 두께는 2cm 정도이다. 가로 5cm 세로 7cm 크기로 칼로 자른다. 이것을 세워 원통형을 만들고, 이음새를 꼭 누르고 물을 칠해 결합하게 한다. 밑 부분도 둥근 원으로 잘라 윗부분과 결합한다. 드디어 연필꽂이가 만들어졌다.”


학생들은 선생님 시범 공작을 보기 위해 모였다가 제자리로 돌아가서 각자 찰흙 그릇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선생님은 교무실에 근무하는 여급사(女給使)로 하여금 그릇 만드는 작업을 도와주게 하였다. 학생들은 선생님과 여급사의 지도를 받아 저마다 독특한 모양의 그릇을 만들었다. 만든 그릇은 이름을 새기고 완전히 마를 때까지 교실에 보관하도록 하였다.


그때 만든 찰흙 그릇은 높은 온도로 구워 완성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도자기의 기초가 되는 그릇을 만든 찰흙 공작은 우리에게 퍽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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