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목회계사] 렌드리스법 연장의 문제

전문가 칼럼

[안상목회계사] 렌드리스법 연장의 문제

2014년에 시작된 “돈바스 전쟁”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확전되었고, 이제는 그것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Russo-Ukrainian War)이라 부른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그 전쟁은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해 왔다. 러우전쟁에서 푸틴을 저지하지 못하면 유럽 국가들이 하나씩 차례로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나토 회원국 등 수많은 우방국은 그에 호응하여 무기와 구호물자를 제공해 왔다. 일부 나토 회원국들은 자국으로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초청하여, 자국이 제공할 무기를 사용하는 군사 작전을 훈련해 주었다. 각종 무기와 훈련과 경험에 힘입어, 우크라이나 군대의 전투력은 세계 정상급이 되어 있다. 그러나, 긴 전쟁에 지친 우방국들은 의견 분열의 조짐을 보인다.


이러한 조짐 속에서 젤렌스키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렌드리스법의 시행 중지다. 2022년 5월 9일 발효된 렌드리스법(Lend Lease Act of 2022). 여기서 말하는 lend(대출)는 돈을 빌려준다는 뜻이며, lease(대여)는 물자를 외상으로 제공한다는 뜻이다. 1941년 미국이 영국과 소련 등 연합국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법의 이름을 2022년에 재사용한 것이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보낸 모든 전쟁물자는 이 렌드리스법에 근거하고 있다. 그것이 시행 중지될 우려가 있는 이유는, 그 시행 기간이 2023년 말까지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렌드리스법의 연장을 위해 젤렌스키는 최근 유엔본부와 수도 워싱턴과 캐나다를 방문하고 돌아갔다. 도중에 일어난 여러 언론과의 1대1 인터뷰에서도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 


그의 행적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2023년 9월 19일 유엔총회 연설과 이틀 뒤인 21일 상원의원 모임에서의 연설이었다. 유엔총회의 10여 분간 연설에서 젤렌스키는 전 세계의 지속적인 지원을 호소했다. 그 연설 중 미국 언론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부분은 이 발언이다.


“The goal of the present war against Ukraine is to turn our lands, our people, our lives, our resources into a weapon against you, against the international rule-based order.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의 (러시아 측) 목표는 우리 땅을, 우리 사람들을, 우리의 생명을, 우리의 자원을 이용하여, 여러분을 적대하는,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를 적대하는 무기로 삼으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는 평소 주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만일 우크라이나가 이 전쟁에서 패배하여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장병들의 가족을 볼모로 잡고 강력해진 우크라이나 군대를 여타 유럽 정복의 선봉에 세울 것이라는 주장이다. 러시아는 이미 그런 짓을 하고 있다. 침략하여 강제 점령한 우크라이나 땅 주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우크라이나를 상대하는 전선에 내보내고 있다. 젤렌스키의 저 주장에는 이러한 근거가 있다.


젤렌스키가 렌드리스법 연장에 애를 태우는 것은 미국 내 의견 분열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렌드리스법의 유효기간을 2023년 이후로 연장하려고 한다. 한편, 미국 공화당은 내년 대선의 승리를 위해서 바이든 행정부의 비중 높은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바이든 정책 중 가장 비중 높은 것은 우크라이나 지원이다. 


그래서, 일부 공화당원들은 우크라이나 지원의 양상을 “백지수표(blank check)”라 칭하고 있다. 젤렌스키가 이번 미국 방문을 기획할 때는 상·하원 합동 의회 연설을 예정했으나, 공화당원인 하원의장의 비협조로 인하여 그것은 무산되었다. 9월 21일, 상원의원들만 모인 자리에서 젤렌스키는 “미국은 자금을 제공했고, 우크라이나는 목숨을 희생해 왔습니다. 


(You gave money, we gave lives)” 하는 말로써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공조 관계를 단순화하여 또 한 번 언론의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 공조 관계를 성립시킨 것은 바로 2022년 렌드리스법이었고, 상원은 그것을 100명 전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2023년 9월 21일 상원만의 모임이라도 가능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이 렌드리스법을 연장해야 할 근본적인 이유는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Budapest Memorandum)에 있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 3개국이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를 모두 러시아에 이양하고 그 대신 그 시점의 각국 국경을 보장받겠다는 약속이었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 서명한 국가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영국, 미국 등 6개국이다. 미국의 2022년 렌드리스법은 단순한 선심의 결과가 아니라 조약상 의무의 이행이었다. 


미국이 정당한 명분 없이 렌드리스법을 2023년 말에서 시행 중지한다면, 미국은 “지킬 필요가 있는 약속만 지키는 국가”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앞 문단의 정당한 명분이란, 예를 들면 종전 협상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당시의 국경선을 전제로 협상하고자 한다. 또, 푸틴 아닌 다른 사람과만 협상하고자 한다. 푸틴은 이미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어겼으므로, 그의 협상 의지를 믿지 많겠다는 우크라이나의 입장은 정당하다. 


반면, 러시아는 침략하여 강점한 땅을 정당화하는 선에서 협상하고자 한다. 협상은 불가능이다. 미국이 정당한 명분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설혹 미국이 정당한 명분을 발견하더라도, 실리의 문제가 또 남아 있다. 우크라이나가 침략당한 국토를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그 법이 연장되지 못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부가 된다. 러시아의 일부가 되는 것에 순종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유럽을 침공하는 선봉이 될 것이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강력한 테러 조직으로 거듭날 것이다. 지금까지 희생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생명은 더 많은 생명을 희생시키는 데 사용되고, 지금까지 소모된 미국의 자원은 더 많은 자원을 소모하는 데 공헌하게 된다. 젤렌스키는 이러한 현실을 알리려 한 것이다. 미국민은 이것을 알고 내년 선거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 글 속의 용어와 인용문은 모두 제시된 영문을 사용하여 구글에서 검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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