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우리 집에 새로 이사 오는 가족분들에게 (1)

전문가 칼럼

[레지나칼럼] 우리 집에 새로 이사 오는 가족분들에게 (1)

무릎 통증이 심해지면서부터는 트라이 레벨인 집 일 층, 이 층, 삼 층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다. 수술 날짜까지는 아직도 서너 달 더 기다려야 하는데 이층 방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일이 마치 곡예를 해야 하는 것 같았다.  집의 계단이 그리 넓지 않으니 목발 사용도 쉬운 일이 아니고 그렇다고 기어 내려올 수도 없고…. 


몇 번씩이나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앞으로 고꾸라질 뻔해서 놀란 적도 한두 번이 넘으면서 스스로 자괴감도 생기기도 했었다. 아니, 벌써 내가 이렇게 된다니??? 부지런한 성격이라 몸이 아파서 활동에 브레이크가 걸리니 바쁘게 살던 내게 다리 무릎 통증이 벌써 이렇게 오다니! 내가 핸디캡이 되다니?


아픈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통증이 있어도 매디 데이트하면서 또는 최면요법으로 참아내면서 사무실 일을 정상적으로 하면서 또 주말에는 시애틀시 행정 봉사위원 활동을 바쁘게 다녔었다. 물론 두 목발을 짚고서 시애틀 여름 행사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했었다. 내가 일단 책임을 맡은 이상 내 의무를 꼭 다하고 싶었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목발에 의지해 다니는 게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런 상황도 나에게는 커다란 쇼크이지만 벌써 10개월간 여러 가지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는 것이 확실해지고 찢어진 연골을 제거해야 하고 압력에 눌려 금이 간 뼈들은 시간이 지나야 아문다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뼈들 때문에 무릎에 전혀 힘을 실을 수가 없으니 왼쪽 다리에만 힘을 실으니 왼쪽 다리도 조만간 아플 거라고 얘기를 해주는 정형외과의사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의사는 내게 통증약을 주었는데 통증약이 너무나 중독성이 강한 것들이라 복용을 피하고 통증을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최면도 걸어보고 명상도 해 가며 웬만큼 참아보며 너무 아프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얼리브로 통증을 감당하고는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또한 다리의 무릎의 통증은 수술하여도 장담할 수가 없는 것이라 하니 일단 집을 편하게 사용하려면 움직여야 했다. 여러 가지 생각 끝에 팬데믹이 시작되기 바로 전 해에 아들아이가 캐피탈 힐에서 엄청 많은 돈을 내면서 아파트 생활을 하는 것을 지켜보던 내가 “아파트 월세를 낼 돈이면 집을 사도 되는데”라고 권유한 것이 아마도 아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아들은 우리 집이 있는 지역에서 10분 거리의 지역에 작은 단층집을 사서 이사를 왔다.


아들은 아직 미혼인데 덩치가 황소만 한 셰퍼드를 키우니 이사 온 집은 아들이 너무 바빠서 산책을 못 나가주어도 집 뒷마당에서 그 큰 개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너무나 좋아했다.

집은 방 세 개에 화장실 한 개, 부엌, 그리고 작은 게스트룸이 두 개, 1,500스퀘어 피트로 우리가 살던 집의 반 사이즈 정도였다.


다리와 무릎 통증이 너무도 심해 아무래도 결정을 내려야 해서 집을 내놓기로 하고 딸아이 친구가 마침 부동산을 한다고 연락이 와서 만나보니 20년 동안 성실하게 일하는 청년이라 딸아이 친구에게 집 매매를 의뢰하기로 하고 아들 집을 살펴보니 집이 너무 오래된 집이라 여기저기 손을 보아야만 편하게 사용할 수가 있을 것 같아서 여러 군데 리모델링 업체


를 알아보고 비용과 이들의 작품들을 살펴보는데 예전 현재 살고 있는 집에 불이 나서 리모델링할 때 일 마무리 안 해놓고 떠난 뒤에 다시 우리 집 마무리를 해준 몽골 청년들을 찾아보니 예전 그 청년들은 다른 일로 바빠서 일을 못 하고 자기 나라 사람들인 자기의 친구들을 소개해 주었다. 이들이 견적을 낸 비용도 다른 업체보다 편한 비용이었다.


감사한 일은 이 리모델링을 하는 몽골 청년그룹들이 자기네 나라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한 친구는 유명한 컬리네리스쿨을 졸업하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멋진 요리를 하던 사람이었는데 이들이 손재주들이 좋아서 집 리모델링 하는 일을 엄청 디테일하고 섬세하게 일 처리를 했다.

방 세 개인 작은 집에 좀 더 환하게 보이려고 방마다 창문을 하나씩 더 만들었다. 


새로 만든 창문들은 픽쳐창문들로 벽 공간에 벽 대신에 커다란 창문이 자리를 잡으니, 방마다 햇살이 넉넉히 들어왔다. 햇살이 밝아서 집안이 환해지니 마음도 역시 밝아지는 듯했다.

이 집은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어서 어떻게 화장실을 하나 더 만들어 볼까? 고민하고 벽을 터서 만드나 아니면 거라지에 만드나? 


고민하던 차에 패밀리룸쪽 뒤로 작은 스토리지 하나가 있어서 패밀리룸 벽에 붙어있는 작은 스토리지를 개조하여 또 하나의 목욕탕과 화장실을 하나 더 만들고 1960년도의 집이라 부엌이 답답해 보여 부엌의 담을 헐어내어 리빙룸과 아일랜드로 정리를 하니 집이 시원하게 넓혀졌다. 아일랜드는 바퀴가 달리게 해서 움직일 수가 있게 만들어 온 가족들이 모이거나 집에서 모임이 있을 때는 한쪽으로 밀어두면 리빙룸이 아주 크게 넓게 사용할 수가 있게 됐다.


집 입구부터 집안 전체에 깔려있던 오래된 카펫을 다 들어내고 카펫 아래에 숨겨져 있던 오동나무 바닥을 샌드페이퍼로 밀고 맑은 컬러로 칠을 하고 나니 밝고 환한 집이 한창 격조가 있어 보였다. 모든 방문과 클라젯문 창문 등을 새로운 창문으로 교체하니 집안이 더 환해졌는데 그냥 보아도 기분이 좋은 집이 되어버렸다. 조금은 답답해 보이던 메인 화장실을 어떻게 해야 환하게 할까? 


생각해 보다가 화장실 천장에 스카이 문을 크게 냈더니 화장실에 환한 햇살이 내리쬐면서 밝은 빛이 들어와 밝고 환한 화장실이 마음도 편하게 해줬다. 이 집의 역사가 60년도의 집이라 전기선이 조금 걱정되어 살펴보니 구리 선으로 되어있어야 할 전기선이 알루미늄으로 되어있어서 이 집의 역사를 찾아 들어가 보니 집을 지은 시절에 미국에 구리가 귀해서 알루미늄으로 전선을 만들었다고 한다.


자라는 우크라이나 사람인 전기공사하는 전문가 친구가 있어 의뢰해서 온 집안의 전기선을 다 갈았는데 감사하게도 아주 섬세한 친구라 일 처리가 아주 깔끔하고 분명한 데다 예술적인 감각까지 있어서 새로 설치하는 전기선을 방마다 예쁜 디자인으로 전기를 설치해 주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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