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운드교회] 조화로움

전문가 칼럼

[리사운드교회] 조화로움

조화로움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최근 가자지구의 하메스 일당의 테러와 이스라엘의 보복행위를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메스의 테러가 당연하다고 여겨지십니까?


이스라엘의 보복은 정당하다고 여겨지십니까?


답을 알 수 없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음입니다


어느 한쪽을 전폭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인간적 딜레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정 서로 아끼며 배려하고 용서하며 살 수는 없는 것입니까?


이렇게 싸우며 보복하고 침공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편들고 하는 것이 인간적인 조화로움입니까? 


어느 스님이 흐르는 물을 담 자라고 설파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옳은 말인 것 같습니다


물은 바위가 가로막으면 굽이굽이 돌아가면서도 제 길을 가는 것입니다


무엇도 그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곳에는 꼭 그러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그 흐름을 막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어떨 때는 그 막는 바위를 부숴버리고 서는 큰 성취감에 도취 되기도 함입니다


인간은 때로는 자유의지를 핑계 대며 무엇이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를 칭송하기 때문일 것이라 여겨집니다


산 할매 라는 인간극장을 보았습니다


75세 된 할머님께서는 계룡산 동학사에서 1600m 거리에 있는 대피소를 관리하고 계십니다


7세 때부터 키워온 38세 된 업둥이와 함께 대피소를 지키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었습니다


할머니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무릎 관절의 고통은 어찌할 수 없음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당신이 그것을 즐거워하고 보람스러워하기 때문에 그것도 또 다른 조화라고 여겨져 그저 할머님께서 오랫동안 건강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흐뭇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가정 구성원들의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흐르는 물처럼 돌을 무너뜨리려 하지 않고 돌아가는 모습 같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노모를 염려하고 근심함을 말로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돕는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할머님과 함께 살기 원하지만, 오히려 할머님의 삶을 존중하며 당신의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할 줄 아시는 남편 되시는 할아버님의 그 자상하심도 돋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조화로운 가정이 되는 데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서로 원망이 없으면 조화로운 것일 것입니다


원망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 과연 이 땅에 존재할 수 있다고 여겨집니까


우리는 그것을 불가능하다고 정의하여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된 우리에게는 어쩐지 답답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이겠습니까?


우리는 언젠가는 그 원망들이 부질없었음을 깨닫게 해주시는 타자이신 하나님께서 실존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그 권능의 말씀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도는 이 모든 것의 뜻을 참으로 알고 실천하는 자라고 정의하고픈 욕심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이것을 장담할 수 있습니까?


인생은 미지수입니다


돌풍 같은 세상사입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끼워 맞출 수 없음입니다


오직 타자만이 주장하심입니다


5년 만에 한국에 와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어이없게도 위암 3기 이상이라는 결과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별로 실감할 수가 없습니다.


두렵지도 염려됨도 없는 것 같은데 아내와 장모님을 비롯한 주변의 염려와 돌봄이 황송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당하고 보니 이웃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삶을 소명으로 여기며 살고 싶지만 여의치 않을 때가 많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삶은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지만 누구나 그 삶을 살 수는 없다고 여겨지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선한 사마리안으로 해 아래인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은 특권입니다.


즉, 해 아래에서 해 위의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풍요는 이 땅의 것을 잘 나눔으로 가능하지만 우리는 잘 나눔에 인색함이 특성입니다.


오늘도 원수 되었던 우리와의 담을 스스로 무너뜨리신 그 주님께 감사와 찬양, 경외, 존귀와 영광을 드리는 날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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