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운드교회] 하나님의 내재성과 타자성

전문가 칼럼

[리사운드교회] 하나님의 내재성과 타자성

1) 하나님께서는 누구신가

2)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계신가

3) 하나님께서는 지금 무엇을 하시는가

4)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관하시는 방법은 무엇인가


1) 하나님께서는 누구신가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I am who I am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정의할 수 없음입니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정의해도 항상 그것보다 더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한계는 하나님의 무한계를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정의하는 것은 하루살이가 내일을 정의하는 것처럼 어두울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정의하면은 맞습니까 틀립니까.

우리가 창조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창조들에 대한 정의를 열어 놓고 하나님께서 창조주라고 정의해야 할 것 같음을 느끼게 됩니다.


2)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계신가


주기도문에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다고 정의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은 어디이겠습니까.

어릴 적부터 하늘의 정의가 궁금하였습니다.

땅에서 몇 m 위가 하늘이라는 것입니까.


내 머리보다 100m 이상이 높으면 하늘입니까.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이라는 정의는 영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육안에 들어오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장 4절 말씀입니다.

내 안에 거하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우리 안에도 거하시는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어떤 구름 잡듯이 허망한 분이 아니라 우리와 동행하시고 동거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이겠습니다. 그러므로 보이지도 않는 하늘을 헛되이 바라보지 말고 나를 안으시고 품으시는 하나님을 체감하는 나날을 살아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우리와 동행하신다고 우리와 동격일 수 없는 타자성을 부인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 보호, 중보하시는 분이시지 우리에 의해 좌우지 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뜻과 하나님의 뜻은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동행과 동거를 우리는 신비한 연합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 어리석고 무죄한 우리와 동거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것이 측량 불가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찬송가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 내 속에서 절로 흥얼거려집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 제물 삼으시고 죄 용서하셨네

후렴: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3) 하나님께서는 지금 무엇을 하시는가


요한복음 5장에는 38년 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신 예수님의 일화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예수님을 치려 할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우리 인간의 영혼과 만행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음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일하심을 멈추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엔또 수샤쿠의 "침묵"이라는 책에서도 마치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지도 간섭하실 수도 없는 하나님이신 것처럼 묘사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도 일하심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함이라 여겨집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본의 만행을 참으신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의 만행을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기다림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4)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관하시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돌아온 탕자가 연상됩니다.

떠나려 할 때는 보내 주시고, 그냥 기다려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 선하시다고 해도 강제하시지 않으심입니다.

세상을 다 경험해 보고 스스로 돌아오게 하심입니다.

그렇습니다.


창기도 세리도 깡패도 구원하시고 살인자도 구원하시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심입니다.

그리고 병으로도 가난으로도 핍박으로도 연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잠언 17장 3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내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재성과 타자성이 구별이 없으심입니다.

하나님의 타자성은 인간과의 인격적 관계성을 피하지 않으심입니다.

해 위에 계시면서 해 아래를 섭리하심입니다.


홍해를 가르시기도 하시고 덮어서 바로의 군사를 삼키게 하신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오늘도 생활이 우리를 속이는 것 같은 현실이지만 실망하지 말고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날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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