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서울을 떠나오며 (감사 생활일지) (6)

전문가 칼럼

[나은혜칼럼] 서울을 떠나오며 (감사 생활일지) (6)

올해 남편의 한국 나이가 80이다. 남편의 두 형님은 재작년 한 해에 돌아가셨고 남편만 남았고 두 여동생과 두 형수님이 계시는데 큰 형수님은 막내딸과 여행 중이라 못 오셨고 두 여동생과 둘째 형님과 외사촌 여동생이 모여서 남편의 팔순 잔치를 식당에서 조촐하게 했다. 6만 원이나 되는 뷔페로 가자고 하는 것을 내가 적극 말려서 한식 밥상이 나오는 21,000원짜리 식사를 했는데 너무 맛있었다. 


생일은 11월이라 사실은 만남이지 생일파티는 아니지만 11월에 만날 수가 없으니 미리 하자는 것이다. 식사 후에 둘째 형님께서 사시는 아파트 단지 안에 주민들을 위한 카페가 있는데 라떼, 카푸치노 등이 다른 커피집보다 배나 싸고 정성껏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만들어주어서 그 카페 집에 조카가 사준 케이크를 자르면서 그동안에 지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우리도 미국에서 가지고 간 선인장 꿀가루와 초코렛을 나누어드렸다. 제발 이런 물건들을 무겁게 가지고 오지 말라고 하지만 남편은 꼭 무겁게 가지고 가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드린다. 선교관 빌라가 3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무거운 가방을 들고 올라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행여 "허리라도 다치면 어쩔 것인가"하고 나도 힘을 보태면서 들고 올라갔다. 


형제들이 모두 멀리 살아서 한 번 만나려면 온종일 걸려서 만나야 하고 이런 때나 다 같이 모일 수가 있다. 미국에서는 형제들을 비행기 타고 가서 만나야 해서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하고 지내기도 한다. 내 형제들은 오래전에 다 미국에 이민 와서 살고 바로 밑의 여동생 한 명만 남편이 고급 공무원이라 한국에서 살고 있는데 미국에서 형제들이 가면 모두 그 집으로 가서 지냈는데 제부가 백혈병에 걸려서 너무 피곤해하고 있어서 가지 않기로 했다. 


큰오빠가 오래전에 돌아가시고 혼자 되신 올케언니가 있어서 내 동생과 언니와 서울숲 지하철역에서 만나서 셋이 서울숲을 구경했는데 덥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고 낙엽도 다 떨어지고 썰렁했다. 여름에는 잔디도 파랗고 꽃도 피고 아름답다고 한다. 추워서 택시를 타고 가까운 우리 선교관으로 왔는데 선교관이 응접실도 있고 너무 좋다고 한다. 


6시에 성수역에서 동생의 남편을 만나기로 해서 남편과 네 사람이 걸어서 성수역으로 가서 동생의 남편을 만나 예약해 놓은 갈빗집에 가서 갈비를 굽는데 제부가 갈비를 굽는 아가씨에게 만 원을 주니 서비스를 더 잘해 준다. 한국은 팁을 안 주는데 이렇게 주기도 하는구나 생각하다. 먹고 남은 반찬을 잘 싸 주기도 하다.


한국에서 기도원을 운영하시는 원장님이 계시는데 늦게 연락을 했더니 왜 오셔서 진작 연락을 안 하시느냐고 하시면서 선교관으로 찾아오셔서 차를 선교관에 세워놓고 걸어서 식당으로 가서 아귀찜과 생선찌개를 맛있게 들고 남아서 싸 오다. 다음날에 비비고 설렁탕 국물을 더 넣고 콩나물을 넣고 끓여서 러시아 선교사님과 세 사람이 너무 맛있게 들었다. 


기도원 김 원장님이 선교관에 올라오셔서 다음에 오시면 기도원에 반찬을 맛있게 해 오시는 사모님이 계시는데 반찬을 다 먹을 수가 없다고 갖다 주시겠다고 하신다. 내년 4월에 남편의 임플란트를 하러 오면 맛있는 반찬을 예약해 놓았으니 기대가 된다. 동생도 김장을 한다고 해서 우리 김장도 좀 해놓으라고 하다.


러시아 우수리스크 선교사님의 사모님이 자신이 중매한 조카 결혼식 참석과 임플란트를 하러 오셔서 같이 지냈는데 이번에 선교사님께 선교비를 못 드리는 대신 음식을 풍성히 사서 내가 만들어서 같이 먹자고 하니까 꼭 엄마같이 해 주신다고 하고 서로 즐겁게 지냈다.

남편도 있고 밥을 해서 내가 설거지도 다 하다. 


우수리스크에 많이 갔는데 사모님이 다 잘 해주어서 이번에는 내가 다 하겠다고 하다. 새벽기도회에도 같이 가면서 둘이 제일 오래 기도하고 오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베트남 사모님이 코로나로 선교후원이 다 끊어졌다고 하셔서 우리가 돕겠다고 했는데 우리가 선교 후원금을 보내기도 전에 자기 오빠 과수원에서 굵고 맛있는 밤을 한 자루 보내와서 교회 분들께 밤과 초코렛을 나누어드리다. 


러시아 사모님이 힘들게 밤을 다 까서 밥에 넣고 해 먹으니 너무 맛있다. 사랑을 받고 주고 우리가 사는 곳, 여기가 천국 동산이다. 나도 받은 만큼 좋은 것을 주려고 애쓰고 후원자님들을 위해서는 기도로 갚는다.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들 때는 그 헌금은 내가 쓰는 것도 아닌데 하고 스스로 변명도 하는데 그러나 그분들이 계셔서 선교회가 있기에 너무 감사한 것이다.


우리를 만나러 오신 기도원 원장님도 "천문선교회" 은행 계좌번호를 가지고 가시면서 이곳으로 헌금하라고 권하시겠다고 하신다. 나는 천문교회 돈 22억을 가지신 장로님께서 선교비를 주신다면 "천문사랑의 기도원"을 후원해서 원장님과 그 일동들에게 기도원을 드리고 싶어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드린다. 


 원장님은 자녀도 없고 처녀로 일생을 주님께 헌신하신 분이시고 신유의 은사를 받으셔서 많은 불치의 환자들을 치료하시며 일생을 사신 분이시고 기도원을 세우면 후임자들이 다 같이 협력하여 일할 것이라고 하신다. 선교사님들이나 탈북민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은 우리가 항상 드리는지라 받는 데에 어색함이 없고 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우리도 많이 받는데 받을 때는 감사하고 기쁘기도 하지만 미안하고 죄스럽기도 한데 줄 때가 더 떳떳하고 행복하다. 돈은 돌고 돌아서 돈이라고 한다. 한 군데에 머물러서 쌓이면 썩게 되므로, 돈은 부지런히 돌게 해야 모두가 풍성하게 잘살 수 있다고 한다.

남편의 책과 캄보디아에서 사 온 후원자분들께 드릴 선물들과 여름옷과 겨울옷 등짐이 또 많다. 


무거운 짐을 러시아 선교사님과 오랫동안 절친으로 지낸 젊은 권사님이 차를 가지고 오셔서 내가 준비한 식사를 맛있게 드시고 그 짐을 남편과 둘이서 다 끌고 내려가서 차에 다 실었다. 선교사님은 허리가 아파서 못 돕고 나에게는 나오지도 말라고 남편이 호령하고 두 사람이 다 들어서 차에 실었고 나는 행여 다치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 권사님이 다음에 오시면 자기 집과 자녀들 집에 가서 꼭 기도해 달라고 하시고 공항버스 타는 곳으로 가서 우리를 내려주셨고 우리가 내리자마자 공항버스가 와서 우리가 가는 바람에 그분이 파킹하고 인사하러 온다고 하다가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떠나오게 되었다. 강정과 누룽지와 여러 가지를 많이 주시고 선교사님과 우리에게 얼마나 잘하시는지 감동이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주의 종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하고 저들에게 주님께서 꼭 넘치도록 놀라운 복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서울을 떠나오면서 나그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신 분들을 기억하고 감사를 드린다. 주님께서는 모두 자기가 행한 대로 갚아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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