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목숨보다 귀한 것” 희생정신의 위대함

전문가 칼럼

[정병국칼럼] “목숨보다 귀한 것” 희생정신의 위대함

약 15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미국에 사는 교포들은 대부분 이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100여 명을 태운 미국 여객기가 엔진 사고로 - 실은 기상도 나빴지만 – 워싱턴 DC의 포토맥 브릿지 난간을 들이받고 강으로 기체가 부서진 채 떨어져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때가 추운 겨울철이라 얼음이 언 강 위로 비행기가 떨어지는 바람에 심장마비 등으로 죽은 사람이 많았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에서 일어난 사고이었기에 긴급 구조대가 출동하여 많은 생명을 구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도 현지에 나와서 그 처참한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그때 가장 큰 구조역할을 한 헬리콥터 조종사는 끼니를 잊은 채 구조 작업을 계속했다.


물에 빠진 사람들이 헬리콥터에서 내리는 밧줄을 잡아 몸에 감고 매달려서 비행기에 오르는 장면을 우리는 가슴을 조여가며 TV 화면을 통해서 보았다. 이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콧수염을 멋있게 기른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신사는 밧줄이 자기 앞으로 내려온 것을 옆에서 물을 먹어가며 울부짖는 여인에게 양보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여인을 도와서 밧줄로 그녀의 허리를 동여매 주고 미소까지 보냈다. 그 여인이 구조되었고 밧줄이 다시 그에게 내려왔을 때 그는 이미 기진하여 물속으로 자취를 감춘 뒤였다. 나중에 그 이 이름이 밝혀졌는데 빌 스커트니라는 사람으로 사업을 하는 비즈니스맨이었다. 


그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그를 영웅이라고 높이 추앙했고 아메리칸 히어로이즘(American Heroism)을 보여준 본보기라고 역설했다. 또 젊은 소방관 한 사람은 겉옷을 입은 채로 얼음덩이가 둥둥 떠 있는 강물로 뛰어들어 무려 9명을 구해냈다. 이 사람은 나중에 백악관으로 초청되어 국민훈장을 받았다. 참으로 용감한 사람들이고 초인적인 희생정신으로 인류를 구원한 영웅들임이 틀림없다.


사람이 죽음에 직면했을 때 의외로 초연해지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발악하는 사람도 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나 인생을 달관한 사람들은 죽음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앞에 소개한 빌 스커트니는 자신이 얼마든지 살 수가 있었는데 자기 목숨을 희생하면서 그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다. 옆에서 울부짖는 여인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밧줄을 그 여인에게 내준 것이다. 


미국에는 가끔 이런 초인적인 희생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는 본다. 약자를 보호하는 신사 정신이 오늘의 미국을 이런 강대국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초기에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이런 희생정신으로 미국을 세웠다. 정의감과 양보, 그리고 협동 정신과 하나님을 믿는 신앙심을 그들의 삶의 바탕으로 삼았다. 


그들이 비록 아메리칸 인디언들과 싸워 수많은 희생을 당했고 한 편으로 인디언을 무자비하게 죽이기도 했지만 언제나 싸움을 거는 편은 아니었다. 땅을 차지하고 있던 인디언들이 쳐들어오니까 자기 생명을 유지하고 가족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해서 곡식을 거둬들였고 그 첫 농사에서 얻은 좋은 것들을 모아놓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렸다. 그것이 오늘날 추수감사절의 시초가 되었다.

어쨌든 청교도들은 거짓말을 하거나 비겁한 짓을 하면 비록 동족이나 친자식이라 할지라도 처벌했다. 


뒤에서 비겁하게 상대방이 모르게 총을 쏜다든가 잠을 자고 있는데 몰래 들어가 죽인다거나, 도둑질을 하면 반드시 재판하여 흑백을 가려냈고 응분의 처벌을 했다. 옛날 서부 영화를 보면 미국인들의 성격을 엿볼 수가 있다. 자기 아들이라 할지라도 뒤에서 총을 쏘려고 하면 아버지가 그 아들의 총을 든 손을 쏜다. 


그러다가 실수하여 아들이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아메리칸 히어로이즘(영웅주의)이다. 워털루 전쟁 때 프랑스군이 수적으로나 사기 면에서 영국군을 능가했지만, 크롬웰이 이끄는 영국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때 영국군 중에 일류 고등학교인 이튼 출신이 많았는데 이들의 희생적인 애국정신이 승리의 관건이었다고 역사가들이 말한다. 


그래서 워털루 전쟁은 영국의 이튼 교정의 승리로 끝났다는 말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이튼 출신의 애국정신이 바로 앵글로 색슨족의 영웅주의 정신이다. 이 영웅주의가 청교도들 틈에 끼어서 미국까지 상륙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레이건 대통령이 부르짖은 아메리칸 히어로이즘이다.


아무튼, 워털루 전쟁에서 10만 대군을 거느린 나폴레옹을 6만 명의 연합군– 영국군이 3만 명 정도, 나머지는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군 등이 목숨을 내놓고 싸워서 이겼다. 이때 젊은 영국의 지원병들은 주로 이튼 출신이었고 이 전쟁으로 꽃 같은 청춘(이튼 출신)들이 1만5천 명이나 죽었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연전연승의 파이팅으로 겨뤘지만 2만5천 명의 전사자를 내고 항복했다. 이 전쟁으로 불가능이 없다던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섬으로 귀양을 갔고 그곳에서 불행한 일생을 마감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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