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세상 사는 이야기

전문가 칼럼

[정병국칼럼] 세상 사는 이야기

사람이 한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어려운 일들을 겪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은 누구나 고난의 파도와 싸우면서 살아간다. 파도가 심하여 배가 파손되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파도는 대부분 이겨낼 수 있다. 이 파도가 젊었을 때 닥치는 경우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 험한 파도를 만나는 수도 있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듯이, 험한 파도를 가능하면 젊었을 때 만나면 힘이 있어서 이겨내기가 쉽겠지만, 나이 들어서 늙은 후에 만나면 힘겨워서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그때를 인간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어떤 고난이 언제 닥치더라도 결코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망하거나 포기하면 그것으로 그의 인생이 끝난다. 그러나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열심히 기도하고 찾으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다. 즉 성의를 다하여 열심히 구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말이다. 또 “진인사대천명”이란 말도 있다.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명령(뜻)을 기다리라는 말이다.


사람은 때때로 자신을 과시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내가 어떻게 그런 시시한 일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내가 교수 노릇을 했는데, 전에는 내가 월급을 수천 불씩 받았는데, 어떻게 지금은 이렇게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단돈 10불도 그냥 들어오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 우선 해야 한다. 


그러면 어느 땐가는 더 좋은 일자리가 나온다. 나는 얼마 전에 여행사를 다른 회사에 넘기고 접은 후 내가 할 일을 찾아보았다. 평생 열심히 일했으니까 이젠 좀 쉴 수도 있지만, 아직 그럴 만큼 늙은 것은 아니고 일을 더 할 수도 있다. 이곳에서 일자리를 찾아보았으나 별로 자리가 없다. 


시애틀과 한국에는 일할 자리가 있었는데, 그래서 떠날 생각도 했는데 이사를 한다는 것이 여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살던 집을 팔려고 내놓았는데 팔리지 않아서 월세로 내놓았다. 우리는 짐을 정리하고 방 하나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부자도 아닌데 이삿짐이 많아서 반 이상 버리고 이웃에게 나눠줬다. 


책은 거의 다 교회에 기증했다. 그래도 짐이 많다. 인간이 갈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는데 왜 그리 많은 것을 장만하고 가지려고 하는지! 내가 시애틀에 살 때 가지고 있던 식품점을 팔고 일자리를 찾으러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결국은 가스충전소와 세차장을 함께 경영하는 큰 주유소에 매니저로 취직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는 조건이었다. 말이 매니저이지 들어가 보니까 내 밑에는 젊은 흑인 청년 한 사람뿐이고 위로는 바로 주인이 있었는데 주인도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일을 했다. 점심을 앉아서 먹은 적이 없다. 차가 밀려들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가스도 넣고 세차도 해야 했다. 


그 당시는 세차를 시작할 때 먼저 걸레로 비누질을 하고 끝나면 수건으로 말끔히 닦아야 했다. 하루 12시간 일을 하고 집에 오면 고단하여 그냥 쓰러져서 잠을 잤다. 몇 달 동안 그 일을 했더니 팔과 등에 근육이 단단히 생겼고 밤에는 근육이 쑤셔서 앓는 소리를 했다. 저녁이면 아내가 등을 주무르면서 울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에 함께 축구 동호인으로 친하게 지내던 C가 가스를 넣으러 왔다가 나를 만났다. 놀란 얼굴로 나를 보면서 명함을 한 장 건네주고 내일 즉시 연락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나는 그다음 주부터 그가 사장으로 일하는 회사의 시애틀 지점장으로 취직이 되었다. 월급도 많고 일도 편했다. 하나님이 그를 나에게 보내주신 것으로 알고 감사를 드렸다.


지금도 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지금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다. 멋있는 신문을 만드는 것이 내 젊은 날의 꿈이었는데 그 일을 지금에야 하게 되었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내가 꿈꾸던 일이다. 그렇게 크고 번듯한 신문은 아니지만 새로 만들어 내는 기쁨이 자못 감격스럽고 흐뭇하다.


그동안 미국에 30여 년을 살면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 나는 교민봉사를 했다. 법정 통역 일을 20여 년간 했고, 교포 노인들의 복지문제와 민원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앞으로도 건강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인 파가니니는 연주 도중에 바이올린 줄이 3개나 끊어졌는데도 훌륭하게 연주를 끝내고 앙코르까지 받아서 연주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기도했다. 그러자 한밤중에 지진이 일어났고 손발을 매었던 착고가 풀어졌다. 이 일이 있고 난 뒤에 모든 교도관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 지금 괌의 경제가 말이 아니게 나쁘다. 그래서 괌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지난번 태풍 후에 많은 교포가 이주했다. 


1970년대 중반에도 지금처럼 괌의 경제가 나빠서 많은 사람이 괌을 떠났다.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지만, 그 당시 더러는 미국 본토로, 또는 한국으로 이주를 했다. 그러나 그때 괌을 떠나지 않고 참고 견딘 사람들은 지금 거의 모두 부자가 되었다. 본토나 한국으로 뜬 사람들은 그렇게 부자가 된 사람도 없고 성공한 사람도 별로 없지만 남았던 사람들은 모두 살 만하게 되었다.


참고 견디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다. 불평하기보다는 현재의 고통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실에 자족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음속에 화평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평과 불만은 사람을 망가지게 한다. 고통과 험한 풍파 가운데서도 한 줄기 빛을 바라보고 기다려야 한다. 


10%의 희망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면서 기다리면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무슨 일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과거의 찬란한 별은 생각하지 말고 어두운 밤에 엷게 비치는 작은 별을 찾아보자. 그 작은 별 주위에는 항상 큰 별들이 즐비하게 널려있다. 


파가니니는 한 줄만 남은 바이올린으로도 훌륭한 연주를 했다. 우리에겐 아직도 한 줄씩은, 아니 그 이상의 줄이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줄로 열심히 연주하면 관중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을 수 있다. 줄이 끊겼다고 그냥 내려가면 연주자의 위신은 말할 것도 없고 입장료도 모두 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에 연주를 아무리 여러 번 해도 그 연주자의 연주는 아무도 보러 가지 않을 것이다. 어려울 때 세상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갖도록 노력하자. 세상은 아직도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이 더 많고, 악보다는 선이 더 우세하다. 


그래서 아직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많다. 그러나 그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70억이나 살고 있다. 이 유한한 세상을 살면서 이토록 많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언제 다 만나보고 갈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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