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라마나욧과 같은 교회

전문가 칼럼

[나은혜칼럼] 라마나욧과 같은 교회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참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는 제비뽑기를 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뽑혔는데 사무엘이 그를 찾자 행구 사이로 숨어서 나오지 않았고 왕이 되려는 야심도 없던 사람이었고 키가 크고 잘 생기고 효자였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되고 사람들로부터 대접을 받고 백성들 위에 군림하게 되자 다윗을 시기하고 죽이려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저를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시는 불행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불행한 최후를 보면서 차라리 왕이 되지 않았으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모습이 행여 내가, 우리 자녀들이 되지 않기를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 마음대로 충성하고 싶어서 바다를 건너왔던 청교도 정신으로 나라를 세워 복을 받아 세계에서 제일가는 풍성하고 부족함이 없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동경하는 천국 같은 미국을 세웠는데 지금은 음란이 극치로 달리고 세계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총성이 그치지 않는 불안한 나라로 변했고 더 이상 천국이 아닌 불안한 나라가 되었다.


나는 어릴 때에 미국에 꼭 오고 싶었고 천국으로 동경하였는데, 지금은 그 꿈을 이루고 미국에 와서 자녀들이 다 예수님을 잘 믿고 안정되어 잘살고 있지만 세계와 미국의 앞날이 번영하면 번영할수록 죄악에 빠지는 것을 보고 우리 후손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빛을 발하여 미국을 구원해야 하겠다는 사명감으로 기도한다.


사울이 왕이 되고 블레셋 군대 앞에서 대장 골리앗의 온갖 조롱 속에서 이스라엘 온 군대가 떨고 있을 때에 다윗이 군인인 자기 형들에게 음식을 갖다 주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을 왔다가 골리앗이 하나님을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 분을 참지 못하여 창과 칼도 없이 오직 물맷돌을 들고 나가서 골리앗 이마를 명중하여 골리앗의 목을 베고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되었다. 


15세쯤 되는 막내인 어린 소년 다윗이 목숨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여 정의에 불타는 다윗을 어찌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으실 것인가! 다윗이 쓴 시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로써 너무나 가슴을 설레게 하고 감동을 주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신 뜻을 알게 된다.


그렇게 용감하고 멋진 다윗을 사위로 삼은 사울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만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사람은 만만이다.”라고 백성들이 노래하자 사울은 시기와 교만의 사탄이 들어와 그 마음을 강팍하게 하여 수시로 다윗을 죽이려고 발광을 하게 된다.


그 악한 마음이 내 속에는 없는가? 수시로 나를 점검해야 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시기하고 미워하며 온갖 조롱을 다하고 무시하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이민교회 공부를 많이 한 젊은 목사님들을 밥으로 삼고 온갖 흉을 많이 보는 나이 든 사람들을 보면 참 안타깝고 한심하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자기 자식들에게는 꼼짝을 못하고 자식들을 주님 앞으로 제대로 인도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더욱 시기로 주의 종을 마음대로 조롱하고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는 것 같다. 왜냐면 주의 종은 어떤 모욕에도 참고 견디기 때문에 바보로 여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시면서 심판하시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울은 사위이기도 한 다윗을 끊임없이 죽이기로 작정하고 찾았으나, 다윗은 그와 반대로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사울 왕을 두 번씩이나 죽일 기회가 있었으나 죽이지 않고 도망만 다녔다. 아둘람 굴속에서 사울 왕이 대변을 볼 때에 다윗은 그 굴속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사울의 옷자락만 살짝 베고 사울을 살려 주었다. 


옷자락을 베었어도 사울은 알아채지 못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나보다. 나중에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보여주며 벌레 같은 자기를 어찌하여 죽이려 하시느냐고 호소하자 사울은 “나는 너를 죽이려 하였으나 너는 나를 후대하니 너는 나보다 옳도다.” 하고 “내 아들아!”라고 울면서 회개하고 돌아갔다. 그렇게 회개하고 다윗을 후대하면 얼마나 좋았을까만은 또 시기심이 가득 차올라서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사울과 아브넬 장군과 군인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에 다윗과 군사들이 조용히 다가가서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고 사울의 물병과 창을 가지고 돌아와서 사울 왕에게 소리치고 자기는 왕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사울이 또 울고 회개하였다. 그렇게 회개하고 돌이키면 얼마나 행복한 말년을 보낼 수 있었을까.


다윗이 좁은 이스라엘에서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사무엘이 있는 라마 나욧에 찾아가서 안식하고 있을 때에 사울 왕이 군대를 보내어 다윗을 잡아 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군대가 그곳에 가자 모두 성령의 불을 받고 예언을 하고 다윗을 잡아 오지 못하였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군대를 보내도 잡아 오지 못하자 사울이 화가 나서 자기가 직접 다윗을 잡으려고 찾아 나섰다. 그런데 라마 나욧으로 가서 사무엘 앞에 당도하자 사울이 성령의 불을 받고 뜨거워서 옷을 다 벗어 던지고 벌거벗은 몸으로 종일 예언을 하면서 지냈고 그래서 “사울도 예언자 속에 있느냐?”라는 속담이 나오게 되었다. 


많은 군인도, 악한 사울도, 성령의 불을 받으면 성령께서 하시는 예언을 할 수 있는 것이니 우리 모두도 뜨겁게 성령의 불을 받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예언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 “그 예언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앞으로 통일 이스라엘의 왕은 다윗이 될 것이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별로 성군이 될 것이라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예언을 듣고 감히 다윗을 잡으려는 군대가 있을 것인가? 사울도 그런 예언을 들었을 텐데 그 순간은 회개하고 돌이켜도 다음 순간에 마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가 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 후에도 사울은 다윗을 찾아 죽이려고 하였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원수의 나라 불레셋에 가서 몸을 의탁하고 지내고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아들들과 다 함께 전사하는 불행한 왕이 되었다. 라마 나욧에는 기도를 많이 하는 선지자 사무엘이 있었고 그곳에 가기만 해도 성령께서 임하셔서 예언을 했다. 


그 어떤 원수라도 이 성전에 들어오면 마음이 성령으로 감동이 되어 불을 받고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 되었는데 우리 교회가 라마 나욧같은 교회가 되어 시기와 교만의 죄를 버리고 이웃을 사랑하여 미국의 청소년들을 살리고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많이 양성하고 기적을 일으키는 라마나욧과 같은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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