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까치설, 우리설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까치설, 우리설

2월 10일이 설날이다. 음력을 쓰지 않기 때문에 언제가 설인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인 마트에 수북이 싸놓고 팔고 있는 설 용품을 보고서야 설인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은 민족 최대 명절로 4일 연휴이고 고향을 찾아가는 천만여 명의 인파로 고속도로가 막히는 등 설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 사는 우리는 연휴는 고사하고 평일 날과 똑같이 근무한다. 다만 마트에서 파는 썬 떡국 떡을 사다가 떡국을 끓여 먹고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 한국 학생들은 결석해도 설날 하루를 출석한 거로 해 주는 특혜도 있다.


설날이면 이 노래 한 번쯤은 불러 봤을 것이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이 노래에서 설날에 빠질 수 없는 동물, 까치가 등장한다. 별생각 없이 흥얼거리던 설날 노래이다. 그런데 왜 까치설날은 어저께이고 진짜 우리 설은 오늘이었을까? 궁금하다.


'설날'이라는 단어는 많은 뜻을 담고 있다. 사전을 보면 '설'은 시간적으로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첫날, 다시 말해 '한 해를 처음으로 시작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설날 유래를 살펴보면 '설'은 그 해 첫 번째로 만나는 날이기 때문에 '낯설다'라는 말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설을 정월 대보름과 연관시키고 있다.

설날은 한 해가 시작되는 뜻을 가지고 있고 정월 대보름의 보름달, 즉 만월(滿月)은 풍요를 상징하기에 더욱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사내아이가 언덕에 올라 솟아오르는 보름달에 소원을 비는 것이 우리의 풍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7세기에 나온 중국의 역사서에 따르면 설을 한자로 신일(愼日)이라고 썼는데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가한다."라는 뜻으로, 설날을 '삼가 하는 날', 즉, 바깥출입을 삼가하고 집안에서 한 해 동안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기를 천지신명에게 빌었다고 한다. 

그런데 설날 노래 가사에 왜 하필이면 수많은 동물 중에 까치가 등장했을까?

첫 번째로 발음이다. 옛날에는 순우리말로 설날을 '아치설'이라고 불렀다. '아치'는 '작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치가 아지로 변해 송아지, 망아지, 강아지도 작다는 뜻이다. 세월이 흘러가는 사이 '아치'의 뜻을 잊어버리면서 음이 비슷한 '까치'로 바꿔졌다는 것이다.


고려시대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에서도 설날에 대한 설화가 있다.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승려와 내통해 왕을 죽이려고 했으나 왕이 까치와 쥐, 돼지, 용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했다. 쥐, 돼지, 용은 모두 십이지에 드는 동물이라 공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까치만은 여기에서 제외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왕이 설 전날을 까치의 날로 정해 까치설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삼국유사 원문에 나오는 관련 설화의 주인공은 까치가 아니라 까마귀로, 잘못 전해졌다는 설도 있다.


설은 언제부터 쇠기 시작했을까?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와 신라에서 설맞이 행사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에는 한식, 단오, 추석과 함께 설을 4대 명절로 여길 정도로 큰 행사를 개최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에 음력설을 없애고, 양력 1월 1일을 공식적인 양력설로 지정했다. 양력설 즉 일본 설은 한겨울이고 추위도 한창이다. 하지만 음력설을 쇠고 나면 소한과 대한의 큰 추위도 물러가고 봄이 되는 입춘(立春)까지 지나가니 양력설을 극구 반대했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음력설을 쇠지 못하게 곱게 입고 가는 여인의 옷에 먹물을 뿌리고, 설 제주(祭酒)로 해놓은 술을 집집마다 조사해 밀주(密酒)했다고 항아리를 깨고, 방앗간의 흰떡 빼는 기계를 압수하는 등 가진 박해를 가했다.

나는 일제강점기에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음력 설날도 학교에 갔다. 만일 결석을 하면 교무실로 불려가 벌을 쓰고 반성문을 썼다. 그런데도 음력설, 조선설, 아니 우리설을 아무리 박해를 가해도 굴하지 않고 숨어서 악착같이 쇠었다,


조국이 해방(解放)되고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도 이중과세(二重過歲)를 금한다며 음력설을 쇠지 말고 양력설을 쇠도록 권장하였다. 그리고 우리설을 구정(舊正)이라 불렀다.

그러나 온 국민이 여전히 음력설만을 쇠니까 1985년 음력설을 '민속의 날'로 지정해 설 하루만 공휴일로 정했다. 그러다가 1989년에 음력설을 우리의 '설'이라 명명하고, 3일간 공휴일로 정했다. 비로소 우리의 설을 떳떳하게 쇨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로 시작되는 까치설날 동요는 언제부터 불리게 됐을까? 이 동요(童謠)는 1924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日本) 노래밖에 없던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반달'이라는 노래로 유명한 작곡가 윤극영 선생이 지은 동요(童謠)이다.

이 동요는 어둠의 시대 속에서도 새날의 희망을 염원하며 지었다고 한다. 까치 소리는 듣기에 명랑하다. 아침에 지붕 위에서 깍! 깍! 울면 그날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해 까치를 길조(吉鳥)라고 불린다.


2024년 용띠해 갑진년(甲辰年)을 맞이하여 페더럴웨이 한인회는 설날 윷놀이(擲柶大會)를 개최하여 민속문화를 이곳 미국 땅에 계승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윷놀이 문화에 적극 참여하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독자 여러분! 까치설 우리설 노랫소리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고 복(福) 많이 받으시기를 기원(祈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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