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시련의 은총

전문가 칼럼

[정병국칼럼] 시련의 은총

밤이 캄캄할수록 별빛이 찬란하다. 겨울이 추울수록 여름이 덥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곳에 있는 나무는 강하고 쓰러지지 않는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역경과 고난을 많이 겪은 사람일수록 삶이 원만하고 존경을 받는다.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간다. 땀 흘려 번 돈은 가치가 있고 귀중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쉽게 돈을 벌려고 머리를 쓰다 보니 남을 속이게 되고 비행을 저지르게 된다.


도둑질을 하는 사람은 들킬 수 있고 또 영창을 가게 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 짓을 반복한다. 들킬지만 않으면 별로 힘 안 들이고 거액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둑질은 돈이 없어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습관적인 중독성이라는 심리적 분석 결과가 나왔다. 대도(大盜)라고 불리는 조세형 씨는 평생을 도둑질하다가 60세가 다 되었을 때 하나님을 영접하고 전도사(?)가 되어 착실하게 가정을 이뤄 살고 있었다. 그러나 67세가 되어 이미 도둑질을 하기에 몸이 말을 안 듣는 나이인데 최근에 다시 옛 도둑 솜씨를 써먹다가 들켜서 말년을 종신토록 유치장에서 보내게 되었다.


도박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도 중독이 된 습관성의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고 보면 습관보다 무서운 것도 없다. 골프에 미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골프장에 나가야 하고,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운동이나 습관도 정도를 넘으면 안 된다. 정도를 넘으면 그것은 병이 되고 신세를 망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 지도자가 이런 습관성 중독에 빠지면 양들의 영혼을 바르게 인도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습관성 중독에 빠졌다가 헤어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경우 우리를 더욱 감동하게 만든다. 원래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고 깨지기 쉬운 물건이어서 나쁜 습관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한두 번쯤 이런 나쁜 습성의 늪에 빠졌다가 용하게 빠져나와서 이전보다 더욱 큰 사람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고 유혹에도 약하다. 유명한 화가 반 고흐의 말처럼 인간처럼 깨지기 쉬운 물건이 또 어디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깨지는 유리알보다 위태로운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고 했다. 매일 마음을 무장하지 않으면 수없이 실족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 – 헛되고 헛된 것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 인간 – 라고 그는 덧붙여 말했다.


인간은 깨지지 않으면 큰 사람이 될 수 없다. 금이나 다이아몬드는 몇 차례나 용광로를 드나들면서 불순물이 제거되고 녹은 다음에야 마침내 비싼 금속으로 다시 태어난다. 위대한 사람은 보통 사람에 비해 부서지고 깨어지는 아픔을 훨씬 더 많이 겪는다. 즉 시련을 많이 겪은 사람일수록 고귀한 인격의 소유자가 되는데 이것을 ‘시련의 은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거성이고 위대한 목회자인 고 한경직 목사님은 인생의 아픔을 누구보다 깊이 체험하고 맛보았다. 젊은 시절에 그는 결핵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고, 한국교회 성장을 위해 갖은 오욕과 질곡의 역사를 몸소 짊어지고 하나님께 매달려 눈물짓던 성직자였다.


10여 년 전에 부활절을 앞두고 K일보 기자가 남한산성 고택을 찾아갔다. 부활절을 앞두고 한국교회를 향해 한 말씀을 부탁하자, “교회는 하나입니다. 나와 좀 다르다고 쉽게 정죄하면 안 되지요. 인간은 어차피 죄투성이에요. 그것을 알면 함부로 남을 정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가 있다는 점입니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1992년 세계 종교계의 노벨상이라는 템플턴 상 수상식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한 고백을 했다.


“저는 온통 죄 덩어리입니다. 또 신사참배를 방조한 죄인입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은 그 누구도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목사님을 향한 존경심이 더욱 깊어졌고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다.


한 목사님은 평생 영락교회를 섬기면서 당회장으로 시무하였는데 당회에서 어느 안건을 결정할 때 장로 한 사람이 반대해도 그 안건을 통과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많은 다른 장로들이 한 목사님께 항의하면 “만약 그 반대한 분이 당신이라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면서 더 두고 기도하자고 했단다. 다음 당회 때는 그 반대하던 장로도 마침내 찬성하여 만장일치로 결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목사님은 평생 당회를 하면서 모든 안건을 만장일치가 아니면 통과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99마리의 양을 우리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예수님의 교훈을 그분은 몸소 실천했다.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외면하고, 대형건물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보다 목회자나 교인들 자신의 영화를 누리는 경향이 짙다. 서울을 비롯한 큰 도시에는 대형교회가 즐비하고, 십자가의 네온이 밤을 물들이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진정한 영광은 어디에 있는지, 누가 그 영광을 차지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인간은 고흐의 말처럼 매일 깨지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 깨짐으로 인해 희망이 있다. 회개와 반성은 속사람이 새 생명으로 새롭게 태어나 부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나약함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사람에게, 스스로 깨지는 사람에게 용서와 함께 사랑을 약속하신다. 오늘날 교회는 풍부한 자금으로 과연 얼마만큼이나 선교와 구제에 투자하고 있는가? 또 성도들은 자신의 시간을 얼마나 선교와 구제에 할애하고 있는지 반성하고 회개해야 한다. 테레사 수녀의 말이 생각난다.


“내가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 속에서 고통받고 계시는 예수님이시다.”

두 영국인이 아프리카를 탐험할 때 한 사람은 황금 전쟁을 일으켜 원주민을 학살하고 엄청난 금과 다이아몬드를 영국에 들여왔다. 그 당시 영국은 그를 진정한 애국자와 영웅으로 받들었다. 다른 한 사람은 영국의 침략주의와 노예제도를 반대하고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평등하고 존귀한 존재임을 강조했다. 그는 그 당시 영국인들로부터 반역자요 배신자로 비난받았다. 전자는 세실로드였고, 후자는 데이비드 리빙스턴 선교사였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로드의 무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리빙스턴의 무덤은 영국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영국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왜 두 사람이 전혀 다른 평가를 받았는가? 리빙스턴은 하나님을 믿었고, 로드는 황금을 믿었다. 즉 믿음이 두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갈라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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