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명기학원] 4월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이기는 시기

전문가 칼럼

[민명기학원] 4월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이기는 시기

     독자 여러분께서 이 신문을 받아 드실 주말은 벌써 4월의 첫번째 주말일 것이다. 4월하면 떠 오르는 몇가지가 있다. ‘4월’이라는 말을 입가에 올려 보면, 자연스레 이어지는 어귀는 시인 엘리어트의 싯귀이다. T.S. 엘리어트가 1920년대 초에 그의 시집 황무지 1부에서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불렀을 때, 그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겨울의 눈 덮인 잠 속에서는 모든 것이 한시적으로나마 잊혀지지만, 봄에 막 생명이 다시 살아 나려 꿈틀대는 그 움직임은 잔인할만큼 처절하다는 의미였을까? 


독자들도 아시겠지만, 기억을 되살리시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그 시의 일부를 필자의 졸역으로 다시 읽어 보면: “사월은 더 없이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다시 살려 내고/ 옛 추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말라 터진 뿌리들을 봄비로 해갈시킨다.//겨울엔 차라리 편안했었지/눈 덮인 대지는 우리의 생각도 덮고/갸냘픈 생명의 끈은 마른 뿌리로 이어 주었었지.”


 이쯤에서 대입 카운슬러인 필자의 직업병이 도진다. 혹시 이 맘 때쯤에 제1지망 대학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은 고교생들이 고난을 이겨 내고 꽃을 피워 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금쯤은 반영되어 있지 않았을까? 물론 아니겠지, 그 때는 지금처럼 대입 전선의 포성이 이리도 치열하지는 않았을 터이니. 


     4월을 되뇌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다른 하나는 기독교에서 부활절로 기념하는 날이다. 물론, 지난주 칼럼에서 소개한 것처럼, 항상 부활절이 4월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올 해는 3월 31일이었고, 작년에는 4월 17일에 부활절을 기념했다. 


왜냐하면, 부활절은 전통에 따라, 춘분이 지나고 첫 만월이 지난 후의 첫 일요일을 정해 기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해 날짜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Easter라고 불리는 이 명절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신 뒤, 사흘만에 죽음에서 다시 산 날을 기념한다. 


그래서 이즈음에 많은 미디어들에서 “He is risen”이라고 하는 말들을 들어 보셨을 것이다. [잠깐 숨을 돌리기 위해, 우리네 이민자들이 범하기 쉬운 잘못된 발음을 하나 지적하고 넘어 가자면, ‘risen (‘일어나다’라는 의미의 동사 ‘rise’의 과거 분사형)’은 ‘라이즌’이 아닌 ‘(히 이즈) 뤼즌’이라고 발음한다.]


 즉, 예수가 죽음을 이기고 다시 일어 나셨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엘리어트의 싯귀나 예수님의 죽음에서 부활에 이르는 고통과 고난이 서로 시기적으로 오버랩된다는 자각이 다시 이 때쯤 입시 전선에서 일어 나는 현상들과 겹쳐 진다. 


     또 다른 4월 즈음에 생각나는 일들 중의 하나는 대입 합격자 발표이다. 작년에는3월31일에 아이비 데이(Ivy Day, 아이비 리그 8개 대학들이 한 날을 정해 동시에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이 있었는데, 올 해는 조금 일찍 3월28에 있었다. 합격자들은 세상을 얻은 기분이겠지만, 꼭 자신이 특별하게 뛰어나 그리 되었다고 너무 티를 내지는 말자. 


왜냐고? 스와스모어 대학과 버클리에서 사회 이론을 가르치는 배리 슈와츠 교수는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신입생을 가장 공정하게 선발하는 방식은 ‘제비 뽑기’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올 해 하버드, 예일과 컬럼비아 대학의 합격율이 약 3% 중후반이었고, 브라운과 다트머스가 5% 초반을 기록했으니,  한 자리에 20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리는 형국이다. 


더구나 이 지원자들의 대부분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자격 요건을 갖춘 학생들이니 이들 중에서 누구를 뽑고 누구는 떨어트리는 것은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기보다는 그저 상황과 시간이 맞아 떨어진, 한마디로 운이 좋은 지원자가 합격한다는 설득력 있는 이론을 주장한다. 

 

     합격한 학생에게는 축하를, 제1지망 학교에서 불합격을 통보 받은 지원자에게는 위로를 전한다. 위의 이론을 말함이 이들에게 어떤 위로가 될까만 한가지는 분명히 전하고 싶다. 만약에 슈와츠 교수의 주장이 합리적인 면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합격한 학생들은 어떤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 


운이 좋아 다가오는 4년을 원하는 장소에서 공부하게 되었다면 이러한 행운이 주어진 것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쉬운 말로 하자면, 몇 년전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 부부가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식에서 한 연설을 인용하는 것이 좋겠다. 


멜린다 게이츠의 말: 빌은 단지 운이 좋았던 것이지요. 잘 나가는 변호사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고, 당시엔 희귀했던 컴퓨터를 중학교 때 레이크 사이드 학교에서 경험할 수 있었고, 사업에서는 승승장구했고, …, 이 모든 것에 행운이 주어졌던 것이지요. 


세상을 돌아 다니며, 힘들게 사는 이들을 만났을 때, 이런 생각이 났어요. “그래, 내가 바로 저 사람처럼 될 수도 있었던 거야, 운이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러니 그들에게 무언가를 해야 해.”


     좀 과장하자면, 이것을 잊으면 이혼이라는 불운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예견한 것처럼 들린다. 꿈꾸던 학교에 불합격한 학생들이여, 힘을 내시라. 세상은 죽음의 고통을 이기고 열심을 다 한 자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는 것이니 (www.ewaybellev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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