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2)

전문가 칼럼

[레지나칼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2)

<지난 호에 이어>

여유 있는 집안의 자녀인 000가 사는 무숙자 텐트에는 없는 게 없다. 나는 익히 000의 꼴통 행동을 잘 알고 있기에 가던 길을 멈추고 가야 할 곳에 먼저 전화를 돌려서 조금 늦겠다고 말하며 말없이 돌아서서 다시 사무실 데일리 데스크로 돌아가 그에게 필요한 서류와 일주일 사용할 정부지원금을 전해줬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정신줄 놓은 고객 000가 이렇게 말한다. 레지나 우리 아빠 잘 있어? 나는 웃으며 그럼 아주 잘 있어! 그래, 우리 아빠에게 얘기해 줘 사랑한다고, 그리고 레지나 나도 네가 참 좋아! 영문을 모르는 한 직원이 묻는다 무슨 소리? 응 망상 중이야! 내가 자기 아빠와 재혼한 여인으로! 그냥 놔두어도 돼! 


반박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내 담당이면 내가 설명을 해볼 시간을 가져보겠는데 내 담당이 아니다. 직원이 말한다. “레지나, I think 000 really like you! She wanted you to be her family!” 내 대답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렇기도 할 만한 게 우리 사무실 고객 000가 나를 본 지가 이십여 년 되어가니 익숙해진 것도 있고 내가 일하는 타입은 누구에게도 공평하게 똑같이 대하는 것이다. 늘 그들이 너무 더럽든, 약에 취해있든, 비틀거리든, 정신줄 놓은 고객들이 나를 알아보고 아는 체를 하면 반갑게 환영해 준다. 


가끔씩 이들이 반갑다고 허그를 하려고 달려들면 나는 뒷걸음질 치며 “나 지금 감기가 심해서 안 돼”라며 거절을 한다. 그러면 정신줄 놓은 고객들도 주춤 뒤로 물러가며 “God Dam it, what kinds of cold you have an all the time?”이라고 중얼거리며 뒤로 물러선다.


다운타운 지역의 새벽은 어둡고 춥다, 보통 텐트에서 생활하던 홈리스 고객들도 빗줄기가 쏟아지는 겨울에는 거리에서 지내며 잠을 자던 중독자들이나 정신 문제 홈리스들이 시애틀시에서 마련한 임시 쉘터로 거주지를 옮긴다. 임시 쉘터는 주로 관공서 사무실들로 아침 8시부터면 직원들이 출근을 하니 저녁 7시부터 홈리스 고객들을 들어오게 하고 간단한 샌드위치를 제공하고 밤 8시면 소등을 하고 이들은 무조건 자야 한다. 


그리고 이들을 새벽 5시면 모두 밖으로 내보낸다. 빨리 내보낸 후 자던 자리를 치우고 청소를 한 후 직원들이 근무할 수 있도록 제자리로 만들어놓아야 하니까!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추워도 이들은 새벽 5시면 임시 쉘터를 떠나야 하니 시애틀의 스산한 아침, 아직도 빗줄기가 거세게 내리는 거리를 나서는 이들은 춥고 배고프고 하니 값싼 보드카 한 병을 사서 돌아가며 마시면서 몸을 덥힌다. 


보드카 몇 모금을 마시면 추운 몸이 따뜻해지고 왠지 모를 용기가 생긴다. 

우리 사무실은 근무 시간을 선택할 수가 있다. 나는 아침형이다. 밤늦게까지 버티지 못한다. 10시 정도면 눈이 감기고 눕고 싶다. 그런데 아침에는 5시 30분이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그래서 아침 준비 마치고 사무실에 도착하면 7시가 된다. 


팬데믹 이후로 절대로 버스를 안 탄다. 버스 안에서 제정신 아닌 사람들이 행패를 부리거나 난동을 부리는 것을 몇 번 목격한 후에는. 그래서 이제는 운전을 해서 사무실에 출근한다. 팬데믹 시작 후 얼마 안 되어 우리는 새로운 빌딩을 지어 우리 사무실이 하버뷰병원하고 함께 일하면서 오래 일한 내게 회사 사무실 지하에 전용 파킹랏이 생겨서 이제는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니까 편하다.


팬데믹 이전에는 새벽에 버스를 타고 웨스트레이크에서 3블록 정도를 걸어서 회사에 도착하려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양쪽 건물 주위로 새벽에 쉘터에서 자고 쏟아져 나온 이들이 엄청난 숫자니까 양옆의 건물 입구 처마 밑에 모여 앉아 깡통에 불을 피우거나 술병을 사다 돌리면서 모두들 한 모금씩 마시면서 이미 풀린 몸으로 비틀대며 서로 결투가 시작되거나 이판사판 공사판이 된다. 


아침 일찍이 새벽 이 험한 길 가운데를 걸어가면서 나는 주기도문을 얼마나 많이 외우고 다니며 또한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 쉬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렵지 아니함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지키리 오니”를 외우고 다녔는데 이십여 년간 이 길을 다니면서 나는 우리 사무실 고객들의 보호를 받으며 험한 이 길을 다닐 수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이들도 오래 도움을 받아서 나를 기억하며 내가 지나가는 길에 나를 잘 모르는 중독자들이나 정신줄 놓은 이들이 나를 공격하려 하거나 해코지를 하려면 우리 사무실 고객들은 겹겹이 나를 보호해 주려고 이들을 제압하거나 물러가게 하였다. 

이들이 말하기는 “Regina, She is God Dam my sister!”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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