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3년 근(根) 더덕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3년 근(根) 더덕

내가 더덕을 처음 캐 본 것은 고등학교 다닐 때이다. 겨울 방학이 되어 집에 오면 한가한 시간에 산으로 나무를 하러가는 우리 집 머슴을 따라 깊은 산으로 갔다.

연탄도, 프로판가스도 없는 때라 산에 가서 떨어진 나무 잎을 긁어다가 그것으로 방에 불을 때고 밥을 지어 먹었다. 


처음에는 가까운 산으로 가서 나무를 해왔는데 나뭇감이 없어 점점 깊은 산으로 가서 해 오곤 했다. 차령산맥(車嶺山脈)이 고향 근처에 뻗어 있어 나무는 풍족하였다. 보리밥을 싸가지고 나무하러 가는 머슴 뒤를 졸졸 따라갔다. 낮이 짧은 겨울철이라 일찍 출발했다. 10km의 거리를 부지런히 걸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참나무, 소나무가 울창한 곳을 찾아 머슴은 지게를 받쳐 놓고 먼저 산비탈 7부 능선(稜線)으로 더덕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올라 갔다. 


칡넝쿨, 다래넝쿨이 뒤 엉킨 곳에 더덕도 있다며 더덕 넝쿨을 찾았지만 말라비틀어진 더덕넝쿨은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여러 나무 가운데 버찌나무가 보였다. 이 나무를 보니 초등학교 다닐 때 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들이 산나물을 채취하러 갈 때 따라 간 일이 생각났다. 그땐 이른 여름이라 신록(新綠)이 꽃 보다 아름답고, 이름 모를 산새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꿩! 꿩! 하고 바로 곁에서 푸드득 날아 가는 장끼(수꿩)소리에 놀라기도 했다. 


동리 부녀자들은 곰취, 취나물, 미역취 등 산나물과 고사리를 채취하며 즐거운 듯 수다를 떨었다. 같이 따라온 또래 애들과 버찌나무를 찾아 검붉게 익은 버찌를 따 먹었다. 과일 중에서 제일 먼저 따먹는 과일이 버찌다. 보릿고개의 부황(浮黃)식품이다. 새콤달콤한 그 맛깔스러운 맛에 현혹되었다. 이곳 미국의 체리와 모양이 비슷하나 아주 작고 체리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입술이 까맣게 되도록 버찌를 맛있게 따 먹었던 생각이 났다.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토끼가 놀라 9부 능선으로 줄행랑을 쳐 도망갔다. 머슴은 드디어 더덕 넝쿨을 발견했다고 좋아했다. 낙엽이 푹신한 땅을 괭이로 파 커다란 더덕을 캐냈다. 울퉁불퉁한 못생긴 더덕을 캐는 순간 더덕 향(香)이 진동했다. 머슴은 껍질을 벗기고 먹으라고 주었다. 


껍질을 벗길 때 하얀 젖 같은 진액이 나와 손이 끈적거렸다. 입에 넣는 순간 더덕향(香)에 완전히 취해 버렸다. 한약냄새 같기도 한 신비한 향과 달착지근하며 쌉쌀한 환상적인 맛은 그 후에 다시 먹어 보지 못했다. 그날 머슴은 여러 개의 큰 더덕을 채취해 어머니께 드렸다. 그날 어머니는 방망이로 얇게 두드려 고추장을 발라 불에 구워주셨다. 한약에 일가견(一家見)을 가지고 계신 할아버지는 더덕을 사삼(沙蔘)이라고 부른다고 하셨다. 


큰 더덕은 근 백 년은 족히 됨 직하며 산삼 버금가는 약효가 있고 장아찌를 담가 먹으면 몸에 좋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된장에 박은 더덕장아찌는 그 후 우리 집 별미로 유명했다. 먹처럼 까만 더덕장아찌는 보기보다 맛이 좋아 학교에서 도시락을 먹을 때면 친구 애들이 앞다투어 집어다 먹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같은 교회 다니는 H집사님이 한국에서 가지고 온 더덕 씨를 일회용 컵에 심었다며 작은 모(苗)종을 주고 갔다. 아직 날씨가 추운 3월이라 빈약한 모를 방 양지쪽에 놓고 한 달 이상 키웠다. 다섯 개중 1개만 겨우 살았다. 날이 풀려 화단에 옮겨 심으니 처음에는 노랗고 빈약한 더덕모는 땅 냄새를 맡고는 푸른색을 띠며 자랐다. 여름 가뭄엔 혹시 마를까 봐 물을 주고 아기 키우듯이 정성껏 돌 봤다. 넝쿨이 2m도 넘게 뻗어나갔다. 막대(支柱)를 꽂아 주었더니 잘 자랐다.


이듬해 봄에 더덕은 묵은 넝쿨 곁에 새순이 여러 개 나왔다. 이제부터는 2년 근 더덕으로 자랐다. 옆을 파고 계분(닭똥)과 낙엽 썩은 부엽토를 충분히 묻어 주었더니 무럭무럭 잘 자랐다. 

 봄이 되자 3년 근 더덕 줄기에서 초록색 잎이 많이 나왔다. 잎을 뜯어 쌈을 싸먹고, 밥을 비벼 먹을 때 더덕 향이 났다. 그 옛날 차령산맥 깊은 산 속에서 캐 먹던 진한 더덕 향(香) 생각이 났다. 


그렇게 진한 향은 아니지만 분명히 더덕 향이었다. 보통 3년 크면 캐 먹을 수 있어 올 봄에 아내와 같이 조심스럽게 흙을 파내었다. 캐보니 뿌리가 한 개인 줄 알았는데 한 포기가 다섯 개나 되었다. 한 개의 크기는 어른 엄지손가락 두 개만 했다. 흐뭇한 마음으로 캔 다섯 개의 더덕을 아내는 비닐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집에 와서 쓰레기통 옆에 놓았다. 


이틀이 지났다. 우리는 바쁜 생활에 쫓겨 더덕을 캐다가 놓은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쓰레기통 옆에 놓았기 때문에 쓰레기인 줄 알았다. 교회 가는 날 아침 아내는 쓰레기라며 묵직한 쓰레기 주머니를 나가는 길에 내다 버리라고 나에게 주었다. 난 웬 쓰레기가 이렇게 무거우냐고 중얼거리며 수거함에 내다 버렸다.


하루 후였다. 아내는 "아이! 어떻게 하지요? 글쎄 어제 더덕을 담은 비닐봉지가 쓰레기통 바로 곁에 놓여 있기에 쓰레기인 줄 알고 버리라고 했어요. 빨리 쓰레기 수거함(收去函)에 가 봐요"라고 하며 못내 아까워했다. 


나는 쓰레기 수거함이 있는 1층으로 달려갔다. 가 보니 쓰레기를 금방 수거해가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혹시 수거함 속에 버려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오라기 같은 기대는 허사(虛事)였다. 3년이란 세월을 아기처럼 정성을 다해 키운 더덕이라 너무 아까웠다.     

       

알토란같은 다섯 개의 3년 근(根) 더덕을 캐어가지고 의기양양하게 집에 와 쓰레기통 곁에 놓았었는데 지금은 쓸쓸히 공허(空虛)만 남아있다. 그 옛날 어머니가 하시던 대로 젖처럼 뽀얀 진이 나는 더덕 껍질을 벗겨서 방망이로 잘근잘근 두드렸다. 고추장 발라 불에 구워 할아버지 추도식 날 더덕 향에 취해 맛있게 먹으려고 했는데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작년에 심은 더덕 모 20개를 올봄에 화단에 옮겨 심었다. 연필 크기만 한 어린 모 1년 근(根)이지만 2년 후에는 캐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3년 근(根) 더덕을 수확해 실수로 버리는 일이 없이 주의해 맛있게 먹고, 이웃에게도 나누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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