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에미(1)

전문가 칼럼

[레지나칼럼] 에미(1)

이십여 년의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가을의 입구에 들어설 때쯤이면 그리움으로 생각나는 분이 있다.

000 할머님, 한국 여자분으로서는 보기 드문 큰 키에 항상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다니시며 얼굴은 창백하게 보여서 어디 아픈 곳은 없으신가? 


내가 할머니께 병원 진단을 권해보아도 아니, 내게 주신 생명이 만큼 살았으면 감사하지! 뭘 또 더 오래 살겠다고 병원에 가누!라고 말씀하시면서 한사코 거절을 병원 검진을 마다하셨다.


그때 내가 일하는 직장이 시애틀 다운타운하고 붙어있는 인터내셔널 지역 근처에 있을 때였는데 이분이 거주하시는 노인아파트도 다운타운하고 가까운 지역에 있어서 혹시라도 길을 지나가다 우연이 마주치게 되면 이분은 나를 발견하고는 큰 목소리로 “레지나 선생님, 레지나 선생님이라고 부르시며 잠깐만 기다려요?


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불편한 걸음걸이로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시는데 이분은 발이 불편하셔서 걷는 게 쉽지가 않으시니 나는 가야하는 길이 바쁘기도 하고 또 이분이 내가 있는 곳까지 오려면 시간도 지체되니 아니, 나중에 사무실로 오세요라고 말씀을 드린 후에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면 할머니는 아니야, 레지나 선생님, 나좀 보고 가야지!


라며 굳이 내 발길을 세우시고는 아니 보통 사람이 5분이면 걸을 거리를 이 분은 10분이 걸린다고 말하면 이해가 될까?  이분은 사실 워커를 끌고 다니셔야 하는데 본인이 워커를 끌고 다니면 볼일을 보는데 지장이 많다시며 어디서 구하셨는지 오래된 그런데 처음에는 튼튼했을 모양의 유모차를 워커 대신 밀고 끌고 다니시는데 이분에게는 도우미의 손길이 필요한데 이분은 항상 내가 미국에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와서 이


렇게 오랜 시간을 먹여주고 집도 주고 보살펴주는데 어떻게 도우미 손길까지 받겠냐면서 한사코 거절을 하시어서 이분을 담당하던 나도 이분의 고집에 두손 두발을 들고 그냥 지켜보면서 이분이 일반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만 도움을 드리고 살펴보는 중이었다.


이분은 기어코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하시고는 주머니를 때로는 밀고 다니시는 유모차 뒤에 가방을 뒤적거리시며 오랫동안 꽁꽁 싸매어 두었을 우유 사탕을 내 손에 몇 개 쥐어주시면서 레지나 선생님 이거 먹어요?


라고 주시는데 사탕은 얼마나 오랫동안 할머니의 가방에서 머무르고 있었는지 사탕이 녹아서 끈적끈적 거리는데 이미 당뇨로 인하여 거의 실명 위기까지 있어 눈까지 침침한 할머니는 오래 주머니 속에 있었던 사탕이 녹아서 종이에 달라붙은 게 보이시지를 않으신지 내 주머니에 끈적한 사탕 몇개를 쥐어주시고는 할머님의 길을 가셨다.


할머니가 걸음걸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앓아온 당뇨부작용으로 인하여 양발의 발가락 중 오른발은 엄지와 장지 왼쪽 발은 발가락 장지와 중지를 잘라버릴 수밖에 없어서 발바닥이 지탱해야 할 몸의 무게를 지탱하기가 어려워 걸음을 걷는 데에는 엄청 고생스럽고 힘이 드신 상태였다. 


누가 쓰다가 주셨다는 유모차에 의지하셔서 평지만 밀고 다니시는데 이분이 사시는 노인 아파트는 조금 언덕길에 있어서 이분이 언덕길로 올라갈 때면 무척 힘이 들어 하셨다.


할머니가 불편한 몸인 데에도 집안에만 계시지를 않고 밖으로 특별히 차이나타운 근처의 거리를 다니시는 이유는 차이나타운 지역에 있는 아시안마켓 등을 돌아다니시면서 마켓 뒤의 쓰레기 수거장 옆에 버려진 약간은 상한 듯한 야채 또는 과일들을 주어가셔서 그것들로 음식을 만들어 드시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사전에 미리 이야기 없이 이 할머니가 사시는 아파트 방을 찾아가 보게 되었는데 별안간 방문한 내게 할머니는 집이 지저분해서 보여줄 수 없다며 나중에 오면 집을 치운 다음에 방문해달라고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을 한참이나 할머니를 설득해서 들어가 본 할머니의 방안 상태는 그야말로 온갖 야채 말라빠진 것들과 이미 반쯤 상해서 누렇게 변해있어 파리 떼가 모여들고 있는 과일과 야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할머니는 차이나타운 지역의 아시안 가게들을 돌아다니면서 가게에서 버리는 상한 야채나 과일 때로는 오래된 통조림을 주워다가 집으로 가지고 와서 그 재료들로 음식을 해서 드시는 중이셨다.

내가 오늘 이 할머니 집을 미리 알려드리지 못하고 방문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이 할머니 방에서 파리나 벌레가 많아서 그 방 주위 분들이 너무 불편해진다는 주위 분들의 민원을 아파트 측이 받고는 할머니를 담당하는 나에게 연락을 해와서 예고 없이 방문을 한 것이었다.


할머니 방안에는 주워다 놓은 상한 야채와 과일 등으로 방안에는 숨을 쉬기가 힘이 들 정도로 공기가 탁해있는 데에도 방문을 꼭 닫아 놓으시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 이거 드시면 안돼요 다 버리셔야 해요?라고 물건을 치우자고 권하면서 썩어가는야채나 과일들을 쓰레기백에 넣으려고 하자 할머니는 정색을 하시면서 아니, 그냥 놔두어요,  다 먹을 수 있는 건데 그걸 왜 버려?


그냥 놔두어요.

그러고는 내가 할머니 이런 음식을 먹다가는 몸이 탈이 날 수가 있어서 절대로 드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씀을 드리며 이미 한쪽이 상해버려서 음식을 만들어 먹기에는 말도 안 되는 썩어가는 감자, 당근, 호박, 양배추 등을 집어들며 쓰레기백에 버리려는데 할머니는 내 손을 제지 하시며 레지나 선생님, 이분이 나를 레지


나 선생님이라고 부르시는 이유는 이분은 1992년도에 내가 시애틀한인회에서 할머님들에게 시민권반을 지도했을 때에 102명 분들 중 한 분이셨다. 시애틀한인회에서 시민권반 선생으로 몇 년 간 봉사를 하면서 96명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시민권취득을 도울 수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0 Comments
제목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