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모' 아니면 '도'(1)

전문가 칼럼

[레지나칼럼] '모' 아니면 '도'(1)

7개월간의 긴 어둠의 터널은 12월 16일로 막을 내렸다. 우리하고 오랫동안 한가족처럼 지내던 우리 프로그램의 매니저가 부인의 가족이 있는 보스턴으로 이직을 한다고 했을 때 너 그쪽으로 안 가면 안 되겠느냐고 물어보았었다. 프로그램 매니저는 우리 둘째 딸하고 대학원 동기로 아주 좋은 성품의 사람이었다. 


물론 가족들 근처에 가서 살고자 하는 그의 소망을 축복하면서도 워낙에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매니저의 이직은 그냥 서운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이 서운했다. 

그가 다른 주로 가기로 결정하기 6개월 전 나를 조용히 보자고 했다. 


나와 자리를 함께 한 40대 초반의 00은 나에게 살며시 물어왔다. 레지나, 네가 여기에 제일 오래 일하고 있고 많은 네트워크와 인포메이션 소스인 네가 프로그램 매니저 포지션을 맡아볼 생각은 없는가 하고? 

6개월 후면 내가 다른 주로 이사 가야 할 계획이라 누군가 프로그램을 잘 아는 사람이 맡아주면 좋겠다며... 물론 내 대답은 노 땡큐!


몇 년 전 슈퍼바이저 포지션으로 9개월간을 일하면서 내가 맡고 있는 11명의 직원들과 그 외의 서류를 꼼꼼히 살펴보며 9명의 카운슬러 일의 결과를 정리해 주고 평가하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으나 다른 슈퍼바이저들과의 경쟁도 피곤하고 일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요구해서 내가 사무실 이외의 일에 조금도 신경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슈퍼바이저로 일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에 조금도 신경을 쓸 수 없는 늘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에 몸도 마음도 편치 않았다.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요리전문가에게 직접 교육을 받기도 하고 특별한 요리 강습을 찾아다니면서 요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요리교육을 받은 뒤로는 틈틈이 쿠킹클래스를 열어서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나는 대로 책을 읽는 즐거움도 슈퍼바이저 포지션으로 여러 가지 일에 메이다 보니... 어쩌면 나는 적성에 맞지 않는 슈퍼바이저 포지션이 피곤했다. 아예, 내가 대표가 되면 내가 원하는 대로 구성을 하고 이끌어나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으나 슈퍼바이저 포지션은 위에 보고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그들의 의견도 잘 따라야 하고 회사의 방침도 맞추어야 한다. 


또한 나와 함께 일하는 11명의 직원들의 인성에 따라 그들의 보고에 따라 내 마음도 이리저리 흔들려야 하는 현실이 너무 피곤해지며 그냥 더 이상은 슈퍼바이저로 일을 하기가 부담스러워지며 더는 안 하겠다고 일을 내려놓고 39명의 팀리더로 일하니 몸과 마음이 이 피곤한 것이 없어졌다. 


팀리더는 직원들이 모르는 것을 도와주고 팀원들이 지쳐있으면 기운을 북돋우어주고 특별한 일이 있는 직원들의 대소사를 살펴보는 일인데 법적인 제재와 조치가 따르지 않는 일이니 아무런 부담이 없어서 나에게 너무나 잘 맞는 일이었다.


나는 자주 팀원들의 사기를 살려주느라 갈비를 구워 맛있는 김치하고 점심도 먹게 하고 사무실 안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요리교실을 열어 특별한 요리강습의 시간을 만들어 쿠킹클래스도 하고 난 후 음식을 나누어 먹게 한다. 가족 간에 어려움이 있어 마음이 아픈 직원들에게는 예쁜 카드를 만들어 우리 팀원들의 위로의 글들을 적게 한 후 작은 기프트와 함께 전해주기도 한다. 


일에 지쳐 마음 고생하는 직원들은 내 사무실로 불러서 따뜻한 차와 내가 구운 과자를 대접하면서 위로도 해주고 일을 잘 모르고 허둥지둥하는 직원들에게는 20여 년 이상의 경력으로 익힌 일에 대한 노하우를 전해주기도 하는 이러한 일들을 하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그런 포지션이어서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아서 사무실일 이외에도 시애틀시 행정 보드 멤버로 봉사하고 있고 또 몇몇의 액티브한 단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해 시애틀로 스카우트된 한국 여자축구 간판선수인 시애틀 여자축구 레인팀의 주전 멤버 지소연 선수의 멘토로 일하고 있다. 


정신줄 놓은 사람들과 중독자들의 재활프로그램에서 일하는 게 풀타임일이다 보니 나의 여가활동은 나를 바쁘게 하기도 하고 활력소를 주기 도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회사에서의 책임을 맡는 일은 절대로 사절이었다. 


몇 년 전 잠깐 동안 프로그램 매니저의 부재로 대타로 몇 달을 일을 했었는데 너무 많은 페이퍼워크와 자주 있는 미팅에 머리가 아파서 당장 내려놓고 싶은데 프로그램매니저의 부재 기간 동안은 커버를 해주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감당하는데 아마도 머릿속이 복잡하여 잠을 제대로 잔적이 별로 없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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