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상실(1)

전문가 칼럼

[레지나칼럼] 상실(1)

지난해 나는 36년간 살던 집을 정리해야만 했다. 무릎이 아프기 시작한 지 2년 6개월, 그 기간 동안 물리치료, 한의원, 정형외과, 마사지, 카이로프랙틱 등 가능한 치료법은 모두 시도해 보았다. 코르티손 주사를 맞고 근육 강화 훈련도 받았지만, 무릎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몇 가지 치료로 더 악화되기도 했다.


정형외과 의사는 아직 수술할 시기가 아니니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며 수술 없이 치료해 보자고 했다. 나는 진통제도 거의 거부하며 통증을 견뎠다. 너무 아파 식은땀이 날 정도일 때만 의사가 처방해 준 진통제를 복용했다. 만약 그 진통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했다면 지금쯤 약에 의존하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정신질환자나 중독자를 상담하는 일을 한다. 약물 중독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약 복용을 최대한 피하려 한다. 어릴 때 잔병치레가 많아 병원에 자주 다니고 약을 많이 먹었던 경험 탓에, 이제는 약을 먹는 것 자체가 싫어졌다. 내가 병원과 약에 의지했던 과거를 말하면, 사람들은 농담 아니냐고 놀라곤 한다. 왜냐하면 나는 겉으로 아픈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늘 씩씩한 내 모습만 보고 병치레가 많았던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다.

나는 낙천적인 성격이다. 깨진 항아리를 보면 “이걸로 뭘 하면 될까?”를 먼저 생각한다. 어릴 때 이런 성격 탓에 엄마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도, 칭찬을 받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항상 내 아이디어를 칭찬해 주셨다.


무릎 통증으로 밤잠을 설치며 아파한 날도 많았지만, “내일이면 나아지겠지!”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아프니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감사하기도 했다.

내가 상담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의 고충을 듣는 일이다. 직접 통증을 경험해 본 지금, 내담자들의 고통을 더 진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3층짜리 넓은 집에서 아이들을 다 키우고, 그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로 떠나고 나니 집이 너무 크고 비효율적이었다. 특히 무릎이 아픈 내게 3층 구조의 집은 매일 산행을 하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

막내아들이 “엄마, 제가 살던 집으로 오세요”라고 제안했다. 그는 시애틀에서 직장에 다니며 숲속의 작은 단층집에 살고 있었다. 아들이 다른 주로 떠나면서 나는 그의 집으로 이사했다.


36년간 살던 집을 정리하며, 젊은 시절의 추억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느낌에 울적했다. 하지만 집을 내놓을 시기가 왔기에 10일 만에 모든 정리를 마쳤다.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부모님이 46년 전 한국에서 해주신 고가구들이었다. 새로운 집으로 가져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딸들에게 물어보니 “엄마가 좋아하는 가구일 뿐이지, 우리는 관심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결국 이 고가구들을 다른 곳으로 입양 보내기로 했다. 먼지를 털고 가구 기름을 묻혀 반짝거리게 하던 내 사랑하는 가구들. 그것들과 이별하며 지난 추억과 함께 또 다른 상실감을 느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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