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정월(正月) 대보름
음력(陰曆) 1월15일은 설날 후 처음 맞는 보름날이다. 1월을 설날이 들어있으므로 정월(正月)이라 부른다. 또 보름도 제일 크다는 대(大)자를 붙여 ‘정월 대보름’이라 부르고 전통 명절로 쇠고 있다.
정월 대보름의 전설(傳說) 중에 거문고갑을 쏘라는 ‘사금갑(射琴匣)’이 있다. 삼국유사에 신라 소지왕이 정월 대보름에 행차하기 위해 궁(宮)을 나섰다. 갑자기 까마귀와 쥐가 시끄럽게 울었다. 쥐가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옵소서."
그러자 임금은 신하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하였다. 신하가 까마귀를 따라가다가 어느 연못에 다다랐을 때, 돼지 두 마리가 싸움을 하고 있었다. 신하는 돼지 싸움을 보느라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잠시 후에 연못에서 노인이 나와서 신하에게 편지 봉투를 주고는
"그 봉투 안의 글을 읽으면 두 사람이 죽고, 읽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오"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신하는 궁에 돌아와 임금에게 편지 봉투를 주면서 연못의 노인이 한 말을 전했다.
임금은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단 한 사람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 편지를 읽지 않으려 했는데 "전하! 두 사람이라 함은 보통 사람을 말하고, 한 사람이라 함은 전하를 말하는 것입니다.
"편지의 글을 읽으시옵소서."
신하가 아뢨다. 이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임금은 편지를 꺼내서 읽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거문고 갑을 쏘시오(射琴匣)"
임금은 곧 거문고 갑을 활로 쏜 다음 열어 보니 두 사람이 활에 맞아 숨져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왕비와 스님이었는데 스님이 왕비와 짜고 임금을 죽이려 했던 것이다. 그 뒤 정월 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해서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 이 찰밥이 발전해 약밥이 되었다.
정월대보름은 달맞이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나, 전통적으로는 설날보다 더 성대하게 지내기도 했던 명절이었다. 대보름 전날인 음력 14일부터 행하는 여러가지 풍속들이 있다. 원래는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15일 동안 축제일이었다. 이 시기에는 빚 독촉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옛날에는 큰 축제였다. 또한 세배를 드릴 수 있는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보름날에는 부럼, 오곡밥, 약밥, 귀밝이술, 김과 취나물 같은 묵은 나물 및 제철 생선 등을 먹으며 한 해의 건강과 소원을 빌었다. 또한 고싸움, 석전(石戰)과 같은 행사와 다양한 놀이를 하였는데, 이 풍속들은 오늘날에도 일부 지방에서 행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달은 음(陰)에 해당하여 여성(女性)으로 본다. 달은 여신(女神)으로 만물을 낳는 힘을 가졌다고 여겼다. 그래서 달은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지방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개 대보름날 자정을 전후로 마을의 평안을 비는 마을 제사를 지냈다
대보름 밤에는 뒷동산에 올라가 달맞이를 하며 소원 성취를 빌고 1년 농사를 점치기도 하였다. 즉 달빛이 희면 많은 비가 내리고, 붉으면 가뭄이 들며, 달빛이 진하면 풍년이 오고, 흐리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대보름의 풍년과 복을 비는 행사로는 볏가릿대세우기 놋다리밟기 등이 있고, 놀이로는 지신밟기 용궁맞이 쥐불놀이 사자놀이 줄다리기 차전놀이, 연날리기 등이 있으며, 그 밖에 더위팔기도 있다.
설날과 정월 14일은 온 집안에 등불을 켜놓고 지새웠다.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하여 가족 중에 누군가 잠이 들면 장난삼아 밀가루 등으로 눈썹을 하얗게 칠해놓기도 하였다.
아침에 사람을 처음 만나면 서둘러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 "내 더위 사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해 여름무더위를 파는 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리(橋)를 밟으면 다리가 튼튼해질 것이라고 믿고 밤새도록 다리를 걸었다고 한다. 영남 지방의 대보름 문화로, 농민들이 행렬을 이루어 집을 차례로 찾아가는 풍습이 있다.
그해의 액운을 멀리 날려 보낸다는 뜻으로 음력 정월 열나흩날에 띄워 보내는 연에는 이름, 생년월일을 쓰고 액운을 보내고 복을 맞이한다는 ‘송액영복(送厄迎福)’의 글귀를 썼다.
연날리기는 정월보름까지 하고 그 후는 농사에 힘썼다.
보름에 차려 먹는 음식으로는 밤 잣 호두 등 견과류의 부럼을 먹고 쌀, 보리, 조, 수수, 팥 등의 다섯 가지 이상의 곡물을 섞어 지은 오곡밥을 먹는다. 또 무 오이 호박 박 가지 버섯 고사리 등 햇빛에 말려둔 것을 먹었다. 비타민 D가 풍부한 음식들이다. 보름날 아침에 데우지 않은 찬술인 귀밝이술로 남녀 구별 없이 아이들도 조금씩 마셨는데 이 술을 마시면 귀가 밝아지고 한 해 동안 좋은 소식만을 듣게 된다고 믿었다.
대보름날에는 세 집 이상 성(姓)이 다른 집밥을 먹어야 그 해의 운이 좋다고 하여 하루 세 번 먹는 밥을 이날은 아홉 번 먹었다. 대보름 전날 밤에 펼쳐지는 전통 놀이로 쥐불놀이가 있다. 논 사이의 능선에서 마른 풀을 태우고 아이들은 숯불이 타오르는 구멍이 송송 뚫린 깡통을 신나게 돌린다.
이 숯불은 들판을 비옥하게하고 해로운 잡초와 벌레를 죽인다. 정월대보름 밤에 여자애들이 널뛰기를 하며 즐긴다. 이것도 보름이 지나면 하지 않는다. 지금도 조국에서 정월 대보름 행사를 하고 있다. 우리 교포들도 마트에서 파는 오곡으로 밥을 지어 먹고 각종 나물을 사서 푸짐하게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