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돈이 제구실을 할 때(1)
이 세상에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이야기들도 많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언짢은 사건들이 많지만 우리의 가습을 훈훈하게 해주는 흐뭇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도 있다. 이런 흐뭇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 듣거나 직접 그 사연을 읽을 때에 우리는 새삼 살맛이 난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고, 하나님도 이 죄 많은 세상을 아직 벌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이야기, 그런 사건은 대부분 희생과 절제를 전제로 하여 이루어지며, 때로는 봉사와 사랑의 실천으로 인하여 생겨난다. 캘리포니아주에서 복권이 실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우리 교포가 있었다. 내가 탄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교포가 탔기 때문에 부러움과 축복이 온통 그 교포에게 쏠렸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된 이 교포는 얼마 후 부인과 이혼을 했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되었다. 갑자기 굴러 들어온 행복이, 그 엄청난 돈이 불화의 원인이 되었고 인간을 변형시켰다. 돈 없이 화목했던 가정이 돈 때문에 깨진 것이다. 돈 때문에 가정이 깨지고, 형제간에 재산분배 때문에 송사가 생기고 원수지간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본다.
이런 재산 싸움은 우리 한국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유수한 재벌가의 하나인 헤프트 가문도 재산을 둘러싸고 집안싸움이 벌어졌다. 경영권을 놓고 아직 은퇴하지 않겠다는 아버지를 밀어내고 장남이 권좌에 앉자 둘째 아들이 아버지와 합세하여 형을 몰아내려고 한다. 장남은 어머니를 자기 편으로하는 조건으로 상당한 재산을 어머니가 좋아하는 딸(여동생)에게 주기로 약속하고 한편이 되어 싸우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아버지는 아들(장남)로부터 구타를 당했다고 고소를 하는가 하면, 부인(어머니)은 남편이 말 못할 바람둥이였다고 과거까지 들추어내고 있다. 말하자면 서적 판매 재벌로 유명한 헤프트 집안은 가족들에 의해 모두 까발려졌고 그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재산 때문에 이런 불행을 겪게 된 것이다.
얼마 전 한국의 어느 일간지에서는 역시 재산 때문에 부모와 형, 형수, 조카까지 죽인 끔찍한 살인사건을 다뤘다. 살인한 사람의 정신이 정상이 아니라 해도-현재 정신감정 중-분명히 부모 와 형제는 알아볼 수 있었을 터인데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은 역시 돈 때문에 눈이 뒤집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해서 모두 이런 불행이 오는 것은 아니다. 즉 돈이 많다는 것이 바로 불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돈으로 죽어가는 생명도 살릴 수 있고, 얼마든지 보람 있는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 다만 인간과 돈 사이의 주종관계가 제대로 서 있지 않을 때 돈이 불행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돈을 부려야 문제가 없다. 돈이 인간을 부릴 때 불행이 오는 것이다.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난 7월에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복권(1억 1천1백만 달러)에 당첨되어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을 산 위스콘신주의 한 중학교 교사인 로빈스라는 청년은 새 학기를 맞이하여 전과 다름없이 학교에 출근했다. 교장이나 학생들은 이 억만장자 로빈스 선생이 아주 평범한 옷차림으로 겸허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적이 놀랐다. 그는 당첨금을 약혼녀와 나누고 세금을 제하고도 앞으로 20년간 매년 180만 불씩을 받게 된다.
갑자기 엄청난 부자가 된 로빈스 선생은 "왜 억만장자가 되고도 학교에 출근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내가 실력이 없는 교사라고 생각했으면 몰라도, 또 학생들로부터 실력 없는 교사로 인정받았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바에야 왜 내 직업을 포기하느냐"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는 이어서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너무 즐겁고, 이제 내가 가난한 학생들을 도울 수도 있게 되었으니 더욱 즐겁게 가르쳐야지요" 하고 덧붙였다.
그는 복권의 일부 금액을 그가 나가는 학교에 헌납하겠다고 했으며, 교사들이 학생들을 창의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도록 재정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복권이 당첨된 후 약간 큰 아파트로 이사를 했을 뿐, 아직 도 1989년형 플리퍼스를 물고 다닌다고 한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