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돈이 제구실을 할 때(2)
<지난 호에 이어>
우리가 평소 꿈꾸어 오던 것이 이루어지면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는 것이 그의 겸손한 말이다. 조금만 큰 액수의 복권에 당첨되어도 다니던 직장을 당장 집어치우고 호화판 인생으로 변신하는 것이 인간인데 로빈스 선생은 그렇지 않다.
복권 당첨자들의 생활을 조사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벼락부자(당첨자)들이 가정이 파산되었고, 마약에 손대었고, 도박이나 불행한 것에 손을 대어 망한 경우가 거의 90%였다. 이런 사람들에 비해 로빈슨 선생의 말과 행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나의 학창 시절에 나에게 도움을 준 분이 있었다. 그분은 내 후배의 어머니였고, 나는 그 집에서 그 집 딸(후배의 동생)을 가르치는 가정교사였다. 별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도 아니었는데 이 아주머니는 늘 남을 도우면서 살았다. 그 당시 명동 뒷골목에서 미제물건을 팔면서 달러 환전상을 하던 아주머니는 얼마 후 그것을 집어치우고 음악감상실 겸 다방을 경영했다.
아주머니는 어느 교회 권사님이셨는데 늘 그 집에는 사람들이 들끓었다. 도움을 청하거나 밥을 얻어먹으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었다. 목조건물 2층에 방 2개를 얻어서 사는 집이라서 몹시 시끄러웠다. 대부분이 이북 사람(주로 여자)들이었는데 얼마나 소리들이 크고 시끄러운지 공부를 가르칠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그 집에서 며칠 동안 먹고 자기도 했다. 그래도 주인 아 주머니는 눈살 한 번 찌푸리는 법이 없었고, 어쩌다 내가 불평을 하거나 시끄러워서 공부를 못 가르치겠노라고 하면 조금만 참으라고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한번은 등록금이 모자라서 내가 안달을 하며 속으로 걱정하고 있는데, 학교에 벌써 등록금을 냈으니 걱정 말라면서 내게 영수증을 내주었다. 얼마 후 돈을 장만하여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드렸더니 받지 않았다.
"나에게 줄 돈(깊을 돈)을 꼭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했다. 지금 당장 주라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 돈벌이를 하여 남을 도울 수 있을 때 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알기로 아주머니는 그 당시 많은 고학생들의 등록금을 대주었다. 그중에 더러는 지금 큰 부자가 된 사람도 있고 출세한 사람도 있다.
5년 전에 그분이 암으로 돌아가실 무렵 나는 몹시 바빴지만 일부러 한국에 나갔다. 풍채 좋고 아름답던 그 착한 아주머니가 뼈와 가죽만 남은 채 말씀도 못하시고 입술만 조금씩 움직였다. 나는 눈물이 마구 쏟아지는 것을 억지로 참고 그 가냘픈 손을 잡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이렇게 착한 분을 꼭 이런 식으로 데려가셔야 하느냐고 울부짖었다.
그 후 10일 만에 세상을 뜨셨는데 많은 조객이 오열했고, 그 조객들 속에는 나처럼 그분에게 빛을 못 갚은 사람들이 많이 끼어 있었다. 그분에게 진 빚을 누구에게라도 꼭 갚아야만 나중에 그분을 만나서 할 말이 있고 볼 낮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분 아들(내 후배)은 미국에서 대학원을 나와 지금은 컴퓨터 제조회사에 근무하며, 내가 가르쳤던 딸은 역시 최고 학부(이화여대와 연세 대 대학원)를 나와 어느 양갓집으로 시집가서 잘살고 있다. 이제야 그분의 선행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미 이민으로 1960년대 초에 브라질에 가서 갖은 고생 끝에 큰 부자가 된 선배 한 분이 10여 년 전에 I4에 왔다. 그는 한국에서 남미로 이민 갈 때 300불을 움켜쥐고 갔다. 과일 행상, 날품팔이, 농장 노동자 등을 거쳐 마침내 큰 농장주가 되었지만 그의 청춘은 이미 지나갔고, 60을 바라보는 반백의 로맨스그레이가 되었다. 그가 LA로 이주한 후 한 젊은 부부를 만났는데 이들 부부는 마땅한 직업이 없었다.
이들 부부에게 이 선배는 앞으로 5년간 그의 농장에서 나오는 토마토, 양파 등 채소를 최상품으로 골라 외상으로 주되 5년 후에 갚도록 했다. 젊은 부부는 우선 외상으로 최상품의 과일과 야채를 가져다가 다른 가게보다 싸게 팔 수 있었고, 얼마 안 되어 행상에서 의젓한 야채 과일가게로 발전되었다. 그들 부부는 3년 만에 이자와 함께 원금 외상값을 갚으려고 선물도 하나 마련해 가지고 선배를 찾아갔다.
이 선배는 옛날 자기에게 도움을 주었던 할아버지처럼 "이 외상값을 가지고 가서 빛을 꼭 깊을 만한 사람에게 주라"고 했다. 은혜나 빛을 깊을 때 반드시 은혜를 입은 사람이나 빚을 진 사람에게 갚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토록 오래, 즉 빛을 깊을 때까지 이 세상에 살지 못한다. 그래서 물이 아래로 흐르듯 빛은 꼭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깊게 되는 것이다.
부모에게 진 빚, 형제에게 진 빚, 또 좋은 이웃들로부터 진 빚을 우리는 어떻게 깊을 것인지 생각해 보자. 아무리 현재의 자기 자신이 잘나고 부자라도 반드시 누구에겐가 빚을 지고 있다면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든지 갚아야만 그분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주홍보다 더 붉은 죄, 알게 모르게 매일 범하는 과오를 그 분께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런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려 사해 주신 그 빚을 무엇으로 감을 것인가! 나에게 진 빚을 내가 받지 않고 어느 필요한 사람에게 갚도록 할 때, 나에게 덕을 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 은혜를 갖도록 할 때 우리는 아주 작게나마 우리 자신이 진 빚을 갚는 것이다.
재물이나 돈은 쓰기에 따라서 우리의 삶에 행복의 필요조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삶에 충분조건이 되기는 어렵다. 인간이 재물의 노예가 되어 돈의 명령에 움직일 때 비극적이고 비참한 삶이 된다. 그러나 인간이 돈의 주인이 되어 영리한 판단하에 이것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우리 삶에 가장 좋은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후자의 경우를 갈망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전자의 경우를 더 많이 범하고 있다.
복권 당첨으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의 가정파탄이나 많은 재산 상속으로 형제간에 원수가 되고 살인까지 하는 경우가 바로 전자의 경우이다. 차라리 벼락부자가 되지 않았다면 평범한 삶 속에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