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한국인‧미국인(2)
<지난 호에 이어>
미국인들은 매사에 적극적이다. 일을 시작하거나 장사를 시작하면 적극적으로 한다. 그럭저럭이 아니고, 뚜렷한 계획을 세워서 그대로 밀고 나간다. 처음엔 돈을 못 벌고 투자만 하지만 5년, 10년 후에는 큰돈을 벌 수 있다.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을 시작하지 않는다. 우리 이민 1세들은 다분히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시작한다. 남의 돈을 바라보고 일을 시작한다.
물론 장사는 남의 돈을 보고 하는 것이지만 미국인은 자신의 능력으로 반 이상을 투자하고 나머지는 은행에서 집을 저당 잡히거나 빌려서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고리로 개인에게 빌리거나 형제간에 돈을 꾸어서 한다. 계를 타서 하기도 한다. 아주 위험한 일이다. 형제간에도 가능하면 돈 거래를 하지 말아야 한다. 돈 거래를 하다 보면 서로 의가 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좀 더 합리적인 방법으로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셋째, 한국인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말하자면 바 꾸거나 개혁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인은 세상을 잘 바꾼다. 상 점도 바꾸고, 집도 바꾼다. 매사를 능동적으로 처리한다. 오래 생각하지 않고 우선 행동으로 옮긴다. 그래서 세상을 바꾼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있다.
고치지도 바꾸지도 않으면 점점 쇠할 수밖에 없다.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다분히 수동적인 데 반해 미국인들은 능동적이고, 우리는 운명론자(숙명론자)가 많은 반면 미국인들은 개혁론자가 많다. 물론 우리 한국인도 능동적이고 활동적인 사람들이 있다. 모두 다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적이라면 미국인은 동적이다.
넷째, 한국인은 차분히 숙고한다. 그러나 미국인은 행동하고 본다. 대부분의 동양인은 생각하고 숙고한다. 행동하기 전에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말하자면 앞뒤를 너무 죈다. 그러다가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행동은 급하게 빨리빨리 하면서 생각은 깊다. 그러나 미국인은 일단 일을 저지르고 본다. 단순하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계획을 먼저 세우고 그것이 운다고 여겨지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미국인이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설계도를 그려 놓고도 보고 또 보고 생각한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지나간다.
다섯째, 우리는 침묵의 자유를 믿는다. 미국인들은 언론의 자유를 믿는다. 우리는 마음에 들지 않거나 꺼림칙하면 입을 다문다. 좀 입장이 불리해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실은 묵비권 행사는 미국인이 더 잘하고 더 많이 한다. 이들도 불리하면 아예 입을 열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언론의 자유는 마음대로 비판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상대가 대통령이라 해도 할 말은 한다.
또 그것을 정중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미국은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할 말을 하고 사는 세상이 미국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가 할 의무는 다하면 서 할 말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의무는 이행하지 않으면서 자유만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참된 민주주의의 언론의 자유가 아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세상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폭력이다.
여섯째, 우리는 먼저 결혼하고 다음에 사랑한다. 그러나 미국인은 먼저 사랑하고 다음에 결혼한다. 글쎄, 요즘은 한국인도 먼 저 사랑하고 그다음에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먼저 결혼하고 그다음에 살면서 사랑을 했다.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장일단이 있고, 본인들이 하기에 따라서 어느 것이 먼저라도 상관이 없다고 본다. 미국인들은 사랑이 없는 결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사랑하다가 좋으면 결혼하고 그렇지 않으면 헤어진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미국인이 많다. 그냥 삶을 즐기면서 매이지 않고 부담 없이 산다는 측면에서는 일리가 있지만, 우리 한국인의 도덕적 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미국 속에 사는 이민 2세들은 먼저 사랑하고, 동거하면서 후에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결혼이 얽매이는 삶이라고는 하지만 사랑이 전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