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
젊었을 때는 죽음이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인생은 과연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죽음을 향해 매일매일 다가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했다. 넓은 운동장의 한쪽에 말뚝을 박고 하얀 테이프를 운동장 끝에 늘어놓았는데 그 끝이 죽음이다. 우리 인생은 매일매일 조금씩 죽음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나의 것이 아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만 잠깐 빌려 쓰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끝까지 움켜쥐고 있다가 끝내는 빈손으로 떠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자기 소유라는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그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는 동안 자연에서 모든 것을 잠시 빌려 쓰다가 떠나가는 나그네 인생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삶을 다하고 돌아갈 때에는 남김없이 돌려주어야 한다.
한 마리의 여우가 어떻게든지 포도원에 들어가 포도를 배불리 먹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울타리가 있어서 기어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우는 사흘 동안 굶어 몸을 작게 해 간신히 울타리 틈으로 기어들어가는데 성공했다. 포도원에 들어간 여우는 포도를 실컷 먹고 나서 포도원을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이제는 배가 불러 울타리 구멍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삼일 간 단식하여 몸을 가늘게 만들어서 간신히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이때 여우가 말하기를 "결국 뱃속은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똑같구나!"고 탄식하였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빈손으로 태어나고 죽을 때에도 역시 빈손으로 가야만 한다. 우리의 인생살이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그 무엇인가를 움켜쥐어 보겠다고 주먹을 꽉 쥐고 나오지만, 떠날 때는 모두 돌려주고서 두 손을 펴고 돌아가는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임종 무렵 관례대로 수의(囚衣) 속에 그의 손을 넣지 말고 관 밖에 내놓도록 명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 손을 보고 비어있음을 알도록 했다고 한다. 제국의 제왕으로 태어났던 그가 생전에 동서양에 걸쳐 존재하는 온갖 종류의 보물은 다 갖고 있었으나 죽어서 갈 때에는 작은 보물조차도 소유하지 못했다. 가장 가난한 거지나 알렉산더 대왕이나 결국에는 같은 빈손으로 가는 것이다.
명성과 부를 누렸던 억만장자 스티브 잡스(Steve Paul Jobs)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유언으로 남겼다. "내가 이루어 놓은 부(富)를 가지고 갈 수는 없다. 단지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사랑이 넘쳐나는 추억뿐이다."
겨우 10일간 살다가 버리는 집이 누에고치 집이고, 6개월간 살다가 버리는 집이 제비들의 집이며, 1년을 살다가 버리는 집이 까치들의 집이다. 누에는 집을 지을 때 창자에서 실을 뽑고, 제비는 자기 침을 뱉어 진흙으로 집을 만들며, 까치는 볏집을 물어오느라 입이 헐고 꼬리가 빠져도 지칠 줄 모르고 집을 짓는다. 날짐승과 곤충은 이렇게 혼신을 다해 집을 지었어도 시절(時節)이 바뀌면 미련 없이 집을 버리고 떠나간다.
곤충과 새들도 이러한데 인생은 집에 관한 집착력이 얼마나 강한가.
세상에 내 것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것 하나 가지고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은 뒤에 입는 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부자(富者)나 빈자(貧者)나 다 같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해야 할 것은 물질이 아니고 아름다운 마음이며 선행뿐이라고 생각한다. 빈손으로 와서(태어나) 빈손으로 간다(죽는다)라는 인생은 실로 삶이 덧없다. 살아가면서 아무리 재물을 탐하고 권력을 좇아도 결국 모두 부질없으므로, 너무 아등바등 욕심 부리며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옛날 어느 유명한 부자가 죽었다는 부고가 와서, 그의 친지들이 문상을 갔는데 그의 관 모양이 조금 이상했다. 관 크기가 조금 작고, 관의 양쪽에는 구멍이 뚫려서 시신의 손이 관 밖으로 삐죽이 나와 있었던 것이다.
이에 문상 온 사람들이 상주인 아들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선친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많은 재산을 모아서 큰 부자(富者)로 살았지만 인생이란 태어날 때도 빈손으로 와서 갈 때도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주시려고 관을 이렇게 짜라고 유언하셨습니다."
가왕 나훈아의 노래 '공(空)'이 있다. 공(空)은 비어 있다는 뜻이다. /...잠시 왔다 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 백 년도 힘든 것을 천 년을 살 것처럼/ 모두 부질없다.
태진아의 노래 중에도 '공수래 공수거'가 있다.
그리고 김연자의 노래에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는 공수래, 공수거를 표현한 내용이다. 여담으로, 보안이 요구되는 군대, 회사, 연구소에서는 보안 수칙으로 이 말을 쓰는 경우가 있다. '빈손'으로 출근해서 '빈손'으로 퇴근하라는 뜻으로, 빈손 출근은 해킹 프로그램, 도청 및 도 촬 장비를 챙겨오지 못하게, 빈손 퇴근은 기밀 자료를 반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도 비슷한 교훈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죽어서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은 그가 묻힌 3아르신(2미터) 크기만큼 이었다. 누구든 죽은 뒤에는 제 무덤 자리만큼의 땅만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성경 디모데전서(6장 7절)에도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가 있다.
700명의 후궁과 300명의 첩을 두어 쾌락에 빠졌던 솔로몬 왕도 전도서에 후회하며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해 인생의 허무함을 피력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은 기껏 백 년도 살지 못한다. 그러면서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아등바등 교만한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범사(凡事)에 늘 감사하고 겸손하자. 그리고 선행(善行)을 베풀며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