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다미안의 헌신
신부 다미안은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가 신부라 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의 헌신적인 봉사정신 때문이다. 다미안을 ‘나병 환자의 아버지’라고도 부른다. 그는 벨기에 출신으로 그의 부모는 큰 부자였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부자의 아들이었다면 호의호식하며 이 세상에서 잘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재산을 몽땅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혈혈단신으로 몰로카이로 떠났다. 몰로카이는 당시 절망의 땅으로 나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다미안이 그곳으로 간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다미안 자신도 나병 환자들과 똑같이 움막에 함께 살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캄캄한 밤길을 걸어서 움막으로 돌아오는 길에 환자들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자기는 몸이 성하니까 배부른 소리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지만 우리처럼 문둥병에 걸려서 몸이 썩어가 봐라, 어디서 소망을 찾고 하나님을 찾겠어?”
그 이야기를 들은 다미안은 몸시 충격을 받고 자신의 움막에 돌아와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저 사람들의 말이 맞습니다. 제가 정말로 저들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저들과 똑같은 모습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니 저에게도 문둥병을 주십시오. 예수님은 저를 위해 그 귀하신 몸을 버려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하물며 이 미천한 당신의 종이오리까.
그러니 저에게도 문둥병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그는 결심했다. 그는 나병 환자의 고름 섞인 피를 자신의 몸에 수혈했다. 얼마 안 되어 그는 나병 환자가 되었고 몸의 감각도 차차 무디어졌다. 눈썹이 빠지고 손가락이 오그라들고 손마디가 떨어져 나갔다. 죽음의 병, 저주의 병이 그의 몸속에 다 펴졌던 것이다.
그러나 다미안은 나병에 걸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야 비로소 제가 저들 앞에서 ‘우리’라는 말을 쓰면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병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는 나가서 나병 환자들을 붙잡고 외쳤다.
“하나님은 나병에 걸린 우리들도 사랑하십니다.”
그의 모습을 보고 모든 나병 환자들이 감동하여 그곳에 있는 나병 환자 모두가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한다. 그곳에 있는 나병 환자들은 마음 문을 활짝 열었고, 다미안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절망과 죽음의 섬이었던 몰로카이는 소망과 생명 이 넘치는 섬으로 바뀌게 되었다.
신부 다미안의 이야기는 대개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하 여 그 저주의 섬이 복음의 섬으로 바뀌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의 자서전을 읽으면 믿는 사람으로서, 또한 교회의 직분을 맡고 있는 자로서 부끄러움이 앞선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지 않고는 상 대방을 알 수가 없다. 즉 자신이 당해 보지 않고는 말할 수가 없다. 전도를 위해 미개척지에서, 혹은 위험한 곳에서 목숨을 내놓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미안처럼 자신을 버리고 내놓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전 도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많은 전도의 선배들이 목숨을 내놓고 현지의 모든 악조건과 싸우다가 희생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게는 못하지만 우리는 편안한 곳에서 그런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해야 한다. 많은 헌금이 아닐지라도 할 수 있는 대로 후원하고 보내는 선교사로서의 임무를 다하자.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온갖 악조건과 고투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많은 선교사들이 있다. 크리스마스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편안하게 잘사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지만, 헐벗고 못 먹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폈으면 좋겠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다. 잠시 머무르다가 가는 인생길이다. 이 세상에서 안식을 누리는 최고의 비결은 다미안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나눠주는 것이다. 그것이 또한 전도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계속 나눠주면 잔이 차고 넘치도록 하나님이 계속 채워주신다.
사르밧 여인의 기름병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