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란 장례] 죽음을 넘어 삶을 이야기하는 부고-Obituary

전문가 칼럼

[아슬란 장례] 죽음을 넘어 삶을 이야기하는 부고-Obituary

모든 인생에는 배움이 있습니다. 아무리 평범해 보이는 삶이라도, 그 안에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가르침을 주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기사나 라디오를 통해 한인 분들의 부고 소식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무개의 부친상”, “모친상” 식의 짧은 공지에 그칩니다. 


장례 일정, 유족 명단, 연락처가 전부인 경우가 많죠. 한국인의 장례 문화에서는 고인의 생애나 인생 이야기를 담은 부고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장례식에서 듣는 약력조차 출생지, 학력, 결혼, 이민 연도, 사망 날짜 정도입니다. 그러나 부고는 단순히 죽음을 알리는 공지가 아닙니다. 고인의 삶을 기리고, 그 생애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돌아볼 수 있는지 묻게 하는 귀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온라인 부고(Obituary Page)’를 통해 고인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그 사람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가족과 지인들이 기억하고 있는 따뜻한 순간들, 그가 좋아하고 잘 했던 것들, 그가 즐겨 찾던 장소와 취미 활동, 좋아하던 음악이나 음식들까지도 공유할 수 있습니다.


부고는 하나의 짧은 전기입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사랑했으며, 어떤 어려움을 극복했는지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명성이나 지위와는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고, 그 안에는 크고 작은 삶의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부고는 슬픔만을 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고인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의미 있었는지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잘했고 어떤 일에 열정을 쏟았는지,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는지를 전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사랑하는 이를 추억하고, 사람들과 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감사하게 여깁니다. 많은 자녀들은 부모님의 인생 이야기를 의외로 잘 모릅니다. 왜 그 직업을 선택했는지, 왜 미국으로 이민을 결심했는지, 어떤 꿈을 품고 살아왔는지…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늦기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는 건 어떨까요? 특히 50세가 넘었다면, ‘나의 부고’ 초안을 한번쯤 써보는 건 아주 의미 있는 일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야 그것을 떠올리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을 수 있습니다.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학적인 표현이나 글솜씨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차 한 잔 앞에 두고 친구와 대화하듯, 떠오르는 이야기 위주로 적어보세요. 그 자체로도 지금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무엇을 소중히 여겨야 할지 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되짚다 보면 성공과 실패, 자랑과 후회, 감추고 싶은 순간까지 모두 떠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야기들이 진정한 인생의 무게를 담고 있고, 그걸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라도 당신의 인생을 온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너무 늦기 전에 나에 대한 부고를 직접 써보세요. 고인의 일생이 담긴 부고를 읽다 보면 마음이 경건해지고,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글 속에는 한 사람의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우리는 그 삶을 통해 새로운 배움과 다짐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하는 부고. 이제는 우리가 그런 부고를 남기고, 또 그런 부고를 통해 서로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기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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