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한국예배‧브라질어예배‧선교사 세미나(4)
브라질은 대부분의 교회들이 주일예배를 오후 6시에 드리는데, 이 교회는 오후 2시에 한국인들의 예배가 있어 동생 가족과 장인, 장모님들뿐이라 너무 썰렁했다. 6시 현지인 예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유 목사님 방에 가서 의자를 길게 펴고 쉬었다. 6시 현지인 예배는 워십 팀이 나와서 키보드와 드럼을 힘차게 연주하고, 율동도 하면서 뜨겁고 은혜롭게 찬양하고 통성기도를 드린다.
이번에 평신도로서 계속 참석하며 은혜받은 한 여집사는 세 번의 이혼 후 지금의 남편과 재혼하였는데, 둘이 함께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십일조 생활도 성실히 하며, 예쁜 율동도 너무 잘해서 동영상을 찍게 되었다.
은혜받지 못했던 과거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제는 주님을 잘 섬기며 교회의 튼튼한 기둥이 되기를 기도해 준다. 예배가 끝난 후에는 낮에 사 두었던 빵 속에 햄과 치즈를 넣어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월요일에는 상파울루 지역의 한인 선교사님들을 위한 초교파 세미나가 열려 선교사님 부부들이 많이 참석하셨다. 40명 이상이 신청했지만, 다른 지역에서 갑자기 생긴 집회로 인해 몇몇 관계자는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쨌든 한인 목사님 부부들이 오셔서 은혜를 받는 일은 너무나 귀중하다. 우리 한국 선교사님들이 낯설고 힘든 환경,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특별한 사명이 없으면 그것은 고통이고, 위선자가 되며, 불행하고 병에 걸릴 수도 있다. 선교사님들이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의 위로와 성령 충만을 받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이런 세미나를 통해 힘을 얻기를 바란다. 주최자가 된 유 선교사님은 아침 일찍 교회에 가셔서 먼저 도착한 사모님들과 함께 여러 가지를 준비하셨고, 나는 오늘 세미나가 끝나면 상파울루에 출장 온 아들이 머무는 호텔로 가기로 하여 캐리어 가방을 정리해 짐을 다 쌌다.
오전 10시에 상파울루 선교사님 부부 33명이 오셔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제목의 설교를 들으셨다. 예수님을 누가 죽였는가? 왜? 어디서? 어떻게?
이방인인 장로 빌라도가 예수님께 사형선고를 내렸기 때문에, 이방인인 우리에게도 구원의 문이 열렸다. 예수님을 죽인 책임을 우리도 등에 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십자가에서 주님이 죽임을 당하실 때 나도 함께 있었다… 언제 들어도 감동이다.
정오에는 김밥과 떡볶이가 들어간 된장국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었고, ‘행복한 교회’에서 선물로 준비한 아몬드 로카 초콜릿을 한 봉지씩 나누어 드렸다. 어제 사 온 감도 함께 나누었다.
상파울루에서 이곳까지 오려면 1시간 30분 이상 걸리며, 교통체증이 있을 경우 더 소요된다. 오늘 오신 분들께 충만한 영의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고, 성경이 새롭게 열리는 복을 내려 주소서.
오후 1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열강이 이어졌고, 모든 일정이 끝난 후 단체 사진을 찍었다.
내년 1월에는 초교파적으로 브라질 전역에서 선교사님들이 모일 예정인데, 모두 너무 열악한 환경 속에 있어 강사님이 거금을 후원해 주셔야 한다고 부탁하셨다. 남편은 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걱정이 앞선다.
우리가 섬기는 칼로스 사역자들에 대한 후원도 큰 후원을 해주시던 분들의 지원이 끊겨 남편이 다 감당하고 있어 벅찬데, 이렇게 선교지를 다니다 보면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또 후원을 약속하게 된다.
언제나 “이제는 그만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또 하게 된다. 한 번 약속하면 쉽게 끊을 수가 없다.
예배를 마친 후 모두 함께 MOGI의 일식 뷔페 식당에 갔다.
저녁 7시에 문을 여는 식당인데, 우리를 위해 5시에 특별히 문을 열어 준비해 주었다고 한다.
풍성한 회와 음식들이 선교사님들을 기쁘게 해드려 감사했다. 뷔페식이지만 종업원들이 직접 서빙해 주었다. 비싸고 좋은 음식이라 선교사님들이 너무 좋아하시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셨다.
마지막에는 케이크와 아이스크림까지 나와 모두 배부르게 드셨다. 이 지역에는 한식당이 없다고 한다.
우리의 비행기표와 숙소를 모두 아들이 후원해 주어 너무 감사하다.
밤 8시에 집으로 와 짐을 챙겨 상파울루 그랜드 하얏트 호텔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을 찍고 유 선교사님, 조카 소망 씨와 함께 네 사람이 차를 타고 이동했다.
밤 시간이라 트래픽이 없어 순조롭게 달릴 수 있었다. 아들이 머무는 곳은 상파울루에서도 상업 중심지로, 세계의 기업들이 모인 곳이라고 한다. 뉴욕 맨해튼처럼 높은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네온사인이 눈부셨다. 호텔에 도착해 아들에게 전화를 걸자 아들이 내려왔다. 그 사이 프런트 로비에서 목사님이 유 선교사님과 소망 씨에게 기도해 주셨다.
조카 소망 씨가 훌륭한 주의 종이 되어, 혼자 사시는 고모에게 좋은 아들이 되어 주기를 나도 함께 기도드렸다. 아들이 내려와 유 선교사님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유 선교사님과 소망 씨는 먼 길 MOGI로 돌아가셨다. 소망 씨가 함께 있어 마음이 든든했다. 931호 객실, 아들은 넓은 응접실에 침대를 하나 더 넣었고, 우리는 넓은 하얀 침대에 옷을 꺼내어 어지럽히며 정리를 했다.
종일 강의를 했던 81세의 남편은 곤하게, 달콤한 잠을 푹 주무셨다. 음식도 맛있게 드시고, 큰 목소리로 강의도 시원하게 잘하셨다. 사랑하는, 더 날씬해진 멋진 아들이 눈부시게 빛난다.
“주님, 이 아들이 주님의 일을 더욱 잘하고, 칼로스 선교 사역을 잘 도우며, 주님께 영광 돌리게 하소서!”
유 선교사님과 가난한 신학생들, 선교사님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내가 울고 싶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긍휼의 눈물을 흘리게 하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