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김] 미국 이야기1-축복의 땅(하)
미국 본토가 자리 잡은 이 땅의 위치는 위도 48도 아래에 위치한 온난한 기후 지역에 속합니다. 사람 살기 좋고 농사짓기 좋고 광활하게 늘어선 이 대지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비옥한 농경지입니다. 이는 한국 최대 농경지인 호남평야 면적에 약 700배에 해당하는 크기입니다.
아르헨티나의 팜파스 대평원, 우크라이나의 초르노젬(흑토) 대평원과 함께 미국의 중앙 대평원은 전 세계 3대 곡창 지대입니다. 이러한 토지 덕분에 미국은 3억 3천만 명에 달하는 인구의 완전한 자급자족이 가능하며 전 세계 식량 수출의 대국이기도 합니다. 현재 국토의 45%가 농업지대이며 미래에 농업지대로 충분히 개척할 수 있는 손도 안 댄 미개척지도 어마어마합니다. 매년 옥수수 생산량만 해도 3억 5천만 톤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토지들이 앞서 설명한 수로망과 완벽하게 겹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놀라운 유통 체계를 지닌 미국은 그 덕분에 GDP 대비 무역 의존도가 20%도 안 되는 수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합니다. 왜 항상 미국이 대규모 무역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나라가 잘 굴러갈 수 있는지 이해가 갑니다.
미국의 지정학적 이점은 또 있습니다. 미국의 서쪽 태평양 연안에는 대한민국 인구와 비슷한 약 5천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대서양 연안에는 그 두 배인 1억여 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태평양과 대서양 양대 교역 지대에 모두 접근 가능하며 전 세계 모든 시장에 도달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양쪽 거대한 대륙 시장과 제약 없이 교역이 가능한 미국은 매우 유연하게 무역 전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아시아주 시장이 경기 침체에 빠지면 태평양 연안 주민들은 유럽과 교역하면 되고, 유럽 시장 경기가 나빠지면 대서양 연안 주민들은 아시아와 교역을 하면 됩니다. 이 같은 유연함 덕분에 미국은 전 세계 경기가 침체에 빠졌을 경우에만 비로소 영향을 받게 되는데, 사실 그런 상황은 2차 대전 이후 단 한 번도 없었으며 오히려 미국의 경기 침체 때문에 세계 경제가 휘청거렸던 사례가 대부분입니다.
이에 대해선 기축통화인 달러의 역할도 크게 한몫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은 다른 나라 신경 쓸 것 없이 스스로 걱정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정학적 이점들 때문에 미국은 19세기 산업화 과정 가운데서도 국가적 차원의 계획경제나 별다른 노력 없이 그냥 민간 차원에서 알아서 뚝딱뚝딱 산업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정부의 간섭 없이 이렇게 시장에 알아서 맡겨 놓으니까 배도 만들고 차도 만들고 은행도 만들고 학교도 만들고 필요하다 싶으면 뭐든지 자기들끼리 알아서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독일이나 소련이 국가 발전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미친 듯이 계획과 전략을 쥐어짜 내고 하나하나 조심스럽고 정교하게 관리해 왔던 것과는 달리 너무나 대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간섭이나 개입이 없는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성공 신화는 사실 미국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유명한 지정학 전략가인 Peter Zeihan 교수는 “미국이 안고 있는 단 하나의 문제는 뭐든지 풍요로운 나라라는 사실이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토지, 노동력, 기술, 농업, 금융 등 뭐든지 세계 최대 규모를 압도적으로 유지하고 있으니 남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것이 미국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합니다.
한국처럼 애써 밤잠 안 자고 노력해서 대학입시 수능시험 공부하지도 않습니다. 머리 아프게 공부 안 해도 고등학교만 마치고 괜찮은 기술만 있으면 얼마든지 중산층 생활은 해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21세기 들어 미국인들의 지적 수준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반지성주의 시대’라는 책을 쓴 수전 제이코비에 따르면 미국인의 3분의 2 이상이 DNA가 유전을 밝히는 열쇠임을 알지 못합니다.
열에 아홉은 방사선과 그것이 인체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인 다섯에 하나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확신합니다. 또, 미국 성인 가운데 소설이나 시집을 한 권이라도 읽은 이는 절반이 안 되었다고 합니다. 수긍이 가는 얘기입니다.
이처럼 미국은 동서로는 태평양과 대서양 한가운데라는 기막힌 지정학적 위치 선정, 남북으로는 다른 국가들과 깔끔히 단절시켜 주는 탁월한 지형, 거대한 대륙치고는 매우 안정적이고 온난한 기후, 그에 걸맞은 평평한 토지, 이 모든 것을 100% 활용 가능케 하는 수로망까지, 미국은 태어날 때부터 무엇을 시도해도 도저히 실패할 수가 없는 치트키를 가지고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 최근 미국 전역에서 뿜어져 나오는 셰일오일, 셰일가스로 인해 향후 200년에서 500년 동안 에너지 자원의 완전한 자급이 가능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는 것 같습니다.
(Peter Zeihan 교수의 저서 『The Accidental Superpower: The Next Generation of American Preeminence and the Coming Global Disorder』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