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폭삭 속았수다
알래스카 크루즈에 와서 계속 생각나는 단어이다. 남편은 브라질에서 선교사님도 오시고 크루즈에 갈 수 없다고 했는데, 대표 목사님이 100여 명의 탈북자들과 선교사님들이 이번에 알래스카 크루즈에서 대한민국 복음 통일을 위한 선상 집회를 하는데 강사님으로 오시라고 한다. 7분의 강사님이 계시는데 한 분 더 추가할 테니 오시라고 해서 내가 그렇다면 가겠다고 했다.
우리가 3월 말에 10일 동안 브라질 선교를 Mogi 신학교와 상파울루 선교사님들 세미나를 8일 동안 아침 9시부터 저녁 4시까지 했고, 이틀 동안은 아들과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님상을 보고 바닷가 좋은 호텔에서 잘 쉬고 왔다. 아들이 다니는 회사 지점이 브라질에 있어서 마침 아들이 출장을 와서 우리를 여행시켜주었다.
그리고 5월 19일에는 한국에 가서 6월 23일에 돌아올 스케줄이 있어서 알래스카 크루즈에 갈 수 없었다. 이곳 할머니들도 자녀들이 관광을 시켜드린다고 알래스카 크루즈를 많이 다녀오지만, 나는 가고 싶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100여 명이 선상에서 집회를 한다고 해서 우리도 탈북자 신학생과 목회자들을 돕고 그들이 교회를 세우면 후원도 하고, 고향선교회는 과거에 우리 목사님이 최초의 회장을 하셨고 해서 딸에게 네가 우리 크루즈 비용을 해주면 아빠가 강사로 가셔서 남북통일의 비전을 전하고 오겠다고 하니, 딸이 늦게 신청해서 벌금까지 2,468불을 지불해서 오게 되었다.
우리 칼로스 후원자들께도 통일 포럼 집회에 강사님으로 가니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드리고 정성껏 양복을 잘 싸 가지고 왔다. 그런데 와서 보니 강사님들이 많은데 남편의 이름은 없다. 너무 화가 나고 “폭삭 속았수다”라는 말이 자꾸 생각이 난다.
예전에도 도미니카에 강사님으로 가자고 해서 우리 회원들께 같이 가자고 계획을 세웠는데 아무 말도 없이 취소되어서 우리 회원끼리 가서 열흘 동안, 그중 사흘은 선교로 그곳 교회들을 방문했고, 남은 시간 동안에는 새벽부터 밤 10시까지 성경공부와 찬송과 기도로 너무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었고, 너무 행복했다고 모두 또 이런 시간을 갖자고 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제자들이 와서 시장하지 않으시냐고 하니,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고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나의 양식이라고 하셨다. 80이 넘은 남편은 날마다 ‘매일의 만나’를 써서 카카오톡 회원들에게 올리고, 주일 예배와 수요일 예배와 목요일 샤론 센터에서 예배에 말씀을 인도하신다.
나는 월말에 한국의 탈북 신학생들이 보내오는 과제를 내 카페에 다 올리고, 월초에는 저들에게 후원금을 주어야 한다. 배를 타고 ‘매일의 진수성찬’의 호화스러운 양식에 질렸고, 우리 교회 집사님이 주신 고추 장아찌가 금방 동이 나게 인기가 있고 다 없어졌다. 배가 땅에 도착하면 그곳마다 나가서 관광을 해야 하는데 돈이 많이 든다. 우리는 나가지 않기로 하다.
세계의 좋은 곳을 아들이 다 구경시켜주었고, 우리 타코마 시애틀도 너무 환경이 좋아서 세계를 다니다 보면 미국보다 더 좋은 곳이 없는 것 같다. 방은 창문이 하나도 없고 좁고, 그러나 나와서 좋은 곳에 앉아서 얼마든지 성경을 읽고 글도 쓸 수가 있어서 좋은데, 방은 낮에도 캄캄하고 전혀 환기를 하지 않아서인지 남편이 기침을 무척 많이 했다.
인터넷으로 글을 올리고 카카오톡으로 서로 주고받고 일을 하는데 인터넷을 할 수가 없으니 너무 답답하다. 인터넷을 하면 돈이 많이 나온다고 하고, 전화도 쓸 수도 없고, 유튜브로 한국 소식을 보는 남편도 답답할 것 같다. 오는 날부터 돌아가는 토요일 새벽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리고 “폭삭 속았수다”라는 생각에 쓴웃음이 난다. 우리는 TV를 안 보는데 유튜브에서 “폭삭 속았수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무슨 이런 제목이 그렇게 인기가 있나 생각을 했는데, 제주도 방언으로 “무척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한다고 한다. 부모님들이 고생을 많이 해서 자녀들을 기르는 사연이 온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킨다고 하니, 한국 드라마의 위력이 참 대단하다.
나는 이번에 남편을 강사님을 시켜준다고 속아서 와서 귀중한 일주일을 배 속에서 보내면서 시간을 아끼려고 신약을 시로 쓰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남편은 워낙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문제가 없다.
이 집회를 운영하는 대표님이 자기는 강사를 시키고 싶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 미리 죄송하다고 이야기를 했으면 힘들게 양복을 싸오지 않았을 것인데, 나에게 한마디 사과도 안 하고 내 속은 부글부글 끓는다. 딸에게도 남편에게도 우리 칼로스 후원자들에게도 면목이 없다.
우리만 좋은 곳으로 거짓말을 하고 놀러 다니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나는 주님이 아시지만 크루즈를 싫어하고 흥청거리는 분위기와 과식하는 것이 싫다. 끝난 후 대표님이 자기 집에 60여 명을 모신다고 하니, 그 수고가 “폭삭 속았다/수고 많이 하셨습니다”이다. 탈북자, 선교사님들이 이 비싼 비용을 어찌 다 감당하고 오셨을까? 대표님이 사방에 후원을 청구해서 오셨는지 나는 모르지만, 그 수고가 참 감사하다.
황혼의 우리에게는 하루가 너무나 귀중하고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기에 이곳의 시간 속에서 새벽 3시부터 기도로, 낮에는 짐(Gym)에서 운동도 하고 창가 좋은 곳에 가서 남편은 성경을 읽고 ‘매일의 만나’를 쓰고, 나도 신약을 열심히 써서 마쳐야 한다.
그동안 두통은 없다고 건강하다고 장담하던 내가 지난주 열흘 동안 머리가 많이 아파서 병원에 가고 두통약도 먹으면서 이곳에 왔는데, 기도하지 않고 내 뜻대로 왔는지 모르겠다고 회개 기도를 많이 드리다. 이번에 힘들게 오신 분들이 남북통일을 위해서 더 간절히 기도해서 대한민국이 온 세계에 나아가 마지막 추수꾼의 사명을 완수하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