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To 쌤(2)
<지난 호에 이어>
샘을 생각하면서
오늘 마침 우리 사무실에 간호원이 상주하는 날이니 소변 검사하면 되겠네?
샘은 고개를 숙이더니 오늘은 준비가 안 돼서 안 하고 다음 주 월요일에 검사를 하겠단다.
아니,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오면 되는데 ㅜ 뭘 준비가 안 됐다고 하는 거지?
아니, 너 지금 술 안 마셨다니까 지금 해야지?
샘은 극구 오늘은 못 하겠단다.
준비가 안 됐단다.
뭔 준비?
그런데 우리는 홈리스 고객을 우리 마음대로 강제로 할 수가 없으니 어찌할까? 생각을 하다.
샘, 너는 어떤 아빠가 되고 싶니? 하고 물어보았다.
샘은 아무 말도 없다.
샘, 너는 그동안 너무나 거칠고 아픈 인생을 살아왔는데 앞으로는 어떤 인생을 살고픈 거지?
네가 000에 두고 온 너의 부인과 두 아들들은 언제 볼 건데?
아이들이 보고 싶지 않니?
그 아이들에게 너는 어떤 아빠의 모습이 되고 싶은 건데?
그리고는 내가 며칠 전 읽던 ‘크리스마스’라는 글을 읽어주겠다고 하니 아무 대답도 없다.
나는 언젠가 읽었던 ‘인생 이야기’라는 글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글의 내용은 우리 모두가 인생이라는 기차를 타고 가다가 우리를 낳아준 부모님은 먼저 정거장에서 내리고, 함께 가던 친구들 그리고 나의 가족들이 각기 다른 정거장마다 내리는데, 우리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그 여행 중에는 슬픈 일, 기쁜 일, 재미있는 일 등 여러 가지 일들이 펼쳐지는데 너는 어떤 인생의 길을 가다가 정류장에서 내릴 거니?
내 얘기를 숨죽이며 듣고 있던 샘이 별안간 울기 시작한다.
소리 없는 눈물이 내리더니 급기야는 흐느끼기 시작하는데, 나는 샘이 울게 내버려 두었다.
그래!
울고 싶으면 울어!
울고 있는 샘의 어깨가 들썩거리며 소리를 안 내려고 입을 다문 샘의 울음은 앓는 사람처럼 신음소리를 내며 울고 있다. 나는 샘에게 휴지 한 통을 건넨다.
한참을 울던 샘이 눈물을 닦으며 “레지나, 내가 왜 술을 먹어야 하는지 알아?
나는 눈을 뜨면 너무나 무서워! 그리고 눈을 감아도 무서워!”
샘은 11살 때 자기 나라 아프리카 수단에 내란이 나면서 전쟁 고아가 됐었다.
부모님과 형들은 전쟁통에 다 죽고(샘은 가족들이 죽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였단다) 혼자 남은 샘은 수단 정부군에 대항하는 상대편 적군에 끌려가서는 어린 나이에(11살) 총을 잡고 이들이 내몰아 치는 대로 전쟁터로 나가서 이유도 없이 사람들을 죽여야 했다.
자기가 11살부터 16살까지 수단, 잠비아, 콩고 등등 아프리카를 돌며 전쟁터를 쫓아다니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지 셀 수가 없단다. (이들의 이야기들이 책으로 나왔었다. The Lost Boys)
상대방 군인들도 죽이고,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민간인도 죽이고,
지나가다 부스럭거리면서 눈에 띄는 사람들도 죽이고, 지금도 눈을 감으면 사람들이 죽으면서 지르는 비명소리에, 솟구치는 피가 튀기는 모습에, 죽어 널브러진 사람들에 파리 떼들이나 새들 그리고 동물들이 떼를 지어서 사람 시체를 뜯어먹는 모습이 하루도 안 보일 날이 없단다.
잠을 자고 싶어도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하게 그 모습들이 보여서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술을 마신다고 했다. 술에 취하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기분이 좋아지니 그래서 마시고, 때로는 아침 5시면 자기들이 머무는 쉘터에서 밖으로 내보내는데, 밖이 너무 추우니까 값싼 보드카를 한 병 사서 서너 명이 돌아가면서 마시면 그 추운 추위가 안 느껴지기 때문에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술이 깨고 나면 더 추울 텐데 그때는 어쩌니?”라는 내 질문에, 그때는 시애틀 센터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잠을 잔다는 것이었다.
나는 “샘!
내가 할 일은 너에게 베네핏을 찾아주어서 네가 이 세상에서 인생을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게끔 도와주는 일인데, 너의 협조가 없으면 나는 절대로 이 일을 할 수가 없어.
너 나하고 새로운 인생길을 걸어가 볼래?
아니면 그냥 이전에 살아온 것처럼 그대로 살아갈래?
어쩔 건데?” 샘은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레지나, 나 좀 더 도와줘. 한 번 해볼게.”
“오케이, 그럼 너 지난 두 주 동안 일해서 나에게 맡겨놓은 돈 100불을 줄 테니 이것을 가지고 지금 다운타운에 있는 YMCA로 가서 회원 등록을 해.
내가 홈리스라는 편지를 써주면 한 달에 등록비를 $9.00만 받을 테니 일단 YMCA에 등록을 하여서 아침마다 쉘터에서 나오면 거기로 가서 샤워하고 몸을 녹이고 운동도 한 다음 굿윌 프로그램에서 하는 직업 훈련 프로그램 등록을 해.”
그리고 나는 카운슬링 방에 있는 컴퓨터를 열어서 우리 사무실에 상주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 ‘쟌’하고 샘의 상담 약속을 해놓았다.
“샘! 이날이 네가 정신과 의사 상담 날이야.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고.
그리고 너는 매주 수요일 아침 8시 30분에 나를 만나러 와.
그리고 한 번 새롭게 시작해보자.”
샘은 나에게 맡겨놓은 패스포트(길거리를 다니다 잃어버릴까 봐 내 사무실에서 샘의 서류를 보관 중)를 가지고 YMCA를 등록하러 간다고 가고, 나는 YMCA에 전화를 돌렸다.
YMCA에서는 일단 등록하기 전 7일간 이용해볼 수 있다는 얘기와 함께, 홈리스일 경우 카운슬러가 편지를 써주면 디스카운트를 더 해줄 수 있다는 인포메이션과 함께…
얼마 전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00가 전화가 왔었다.
자기가 지금 모텔에서 매니저로 일을 하는데, 자기 모텔에 청소할 사람이 급히 필요하니 레지나가 사람 소개를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나는 샘이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는 중이었기에 너무나 반가워서 샘을 소개했었다.
샘은 새까만 피부색에 큰 키를 갖고 있는데, 처음에 말도 안 해본 사람은 아예 새까만 샘을 보면 너무나 까만 피부라 샘이 무서워 보인다고까지 했다.
감사하게도 샘은 나에게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자기는 수단 남수단에 살았는데, 남수단은 크리스천들이 모여 살고 북수단은 모슬렘들이 모여 사는데 북수단이 남수단을 침범하면서 모든 크리스천들을 학살을 시작하였는데, 점점 커다란 내전이 되어서 전쟁 중에 부모님과 형제들을 잃고 11살에 고아가 된 후 먹을 것을 해결해준다는 이야기에 적군에 가담하게 되어 아프리카 전쟁터를 돌다가 16살 조금 넘어서 유엔군의 포로가 되어서 몇 개의 나라를 거쳐서 미국으로 건너올 때쯤이면 샘은 21살이었었다.
자기 민족들이 많이 모여 산다는 보스턴에서 자리를 잡고 살다가 콩고 출신의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고 살다가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한 우울증이 심하게 생기면서 아내와 자식들이 떠나간 얘기,
그리고 친구가 있었다는 시애틀에 온 지는 19개월이 된 얘기,
그리운 부모님과 고향 이야기 등등…
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떻게 이 사람이 살아있을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샘의 삶은 거칠고, 아프고, 힘들고, 괴로운 인생길이었다.
샘이 어떻게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는 샘도 아는데, 자기의 지나간 아픔이 머릿속에서 괴롭힐 때마다 샘은 어쩔 줄을 모르고 술을 마셔댄 거다.
나는 모텔에 전화를 걸어서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사람 좋은 매니저는 나에게 “레지나, 아니야. 잠깐이라도 네가 하는 일을 도울 수가 있어서 정말 좋았어!
좀 더 잘 지냈다면 더 좋았을 텐데.”라며, 샘이 그렇게 떠난 것에 대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리고는 매니저 00은 나에게 한마디 한다.
“레지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