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최 집사님 댁 / 정 목사님 입관예배 / (한국일지1)

전문가 칼럼

[나은혜칼럼] 최 집사님 댁 / 정 목사님 입관예배 / (한국일지1)

한국에 도착해서 기흥역 공항버스에서 내려서 기다리고 계시는 최 집사님을 만나 택시를 타고 백현동 아파트로 가서 짐을 풀었다. 최 집사님은 언니 집에 가서 살기로 하고 우리에게 한 달 동안 집을 내주셨는데 너무 깨끗해서 걱정이 될 지경이다. 그런데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없었다.


텔레비전은 안 보니까 괜찮은데 인터넷을 한 달 동안 신청하기로 했는데 설치와 사용료를 합해서 10만 원 정도 들었지만 꼭 필요해서 하기로 하니 금방 사람이 나와서 설치해 주었다.


언니하고 동생하고 세 자매가 살다가 이 집이 나와서 이 집은 기도하는 집으로 잠만 자고 기도하고 성경만 읽고 하는 집으로 아주 깨끗한 집이고 주위에 나무가 울창하고 호수와 산책길이 있고 너무 아름다웠다.

너무 좋은데 시내에서 너무 멀어서 버스를 타고 20분 이상 가서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해서 버스비가 많이 들고 하루에 한 번 나갔다 오면 서너 시간이 걸린다.


주일에는 헌금을 선교에 모두 드리는, 예전에 우리가 다녔던 큰터교회에 가서 설교하였는데 성도님들이 너무 반가워하고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보람이 있었다. 어깨를 수술하신 정 목사님이 바쁜 일로 곧 만나자고 하시고 먼저 가셨다. 러시아 우스리스크에서 오신 김 목사님이 예배에 참석하시고 헤어지기 섭섭하여서 우리와 같이 동생 집으로 갔다.

동생 집에 우리의 주민등록증이 있어서 가지고 와야 투표를 하기 때문이었는데 제부가 식당으로 가자고 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가 동생이 밥을 해서 집에 있는 국과 반찬으로 식사를 했는데 너무 맛있었다.


김 선교사님이 스마트폰으로 하는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고 AI의 제미니(Gemini)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니 제미니가 모든 것을 다 대답하고 가르쳐 준다. 우리 모두의 스마트폰에 그 장치를 만들어 주었는데 나중에 집에서 해 보니 안 된다. 김 선교사님과 사모님은 병원 진료를 받으려고 오셨는데 예전에는 러시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금방 왔지만 지금은 직행 비행기가 없어서 중국을 통해서 복잡하게 와야 한다.


우리에게 교회에서 제공하는 무료 선교관을 소개해 주셔서 그곳에 두 번 갔었는데 지금 그곳에 오셔서 우리에게 같이 지내자고 하신다.

그곳은 시내가 가까워서 좋았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짐 때문에 불편했다. 이곳은 엘리베이터도 있고 너무 좋은데 버스비가 많이 들고 시내에서 너무 멀어서 한 번 나갔다 오면 하루를 다 보낸다.


월요일에 시아주버님이 돌아가시고 홀로 사시는 큰형님이 남편하고 같이 오라고 하셔서 12시에 집으로 가기로 했는데 지하철을 갈아타고 택시를 타고 갔는데 1시 30분이 되어 너무 죄송했다. 많이 시장하실 텐데 그 동네의 복집에 가서 복탕과 복 생선튀김을 맛있게 잘 먹고 커피집에 가서 라떼 커피 두 잔을 시켜서 우리는 나누어 먹다. 모두 형님께서 내시고 선교헌금 봉투도 거금을 주셔서 너무 놀라다. 예전에는 남편이 모두 드리고 대접했는데 이번에는 시집에서 모두 선교헌금을 주셔서 선교를 하니까 사방에서 넘치게 쓸 것을 주시는구나 감동한다.


우리는 밖에 나가면 인터넷을 할 수가 없고 집에서만 인터넷을 하는데 집에 들어와서 미국 스마트폰을 열어보니 정 목사님이 화요일 낮 11시에 압구정동에서 만나 어느 회장님 댁에 가자고 꼭 시간을 지키라고 일방적으로 간절한 약속을 하셨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버스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약속 장소에 1시간이나 늦게 갔는데 안 계셨다.


지하철에서부터 우리가 늦었다고 계속 전화를 했는데 안 받으셨다. 전화도 안 와서 웬일인가 걱정도 되고 섭섭했다. 그런데 그날 화요일 아침에 목욕탕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의 전화를 받을 수가 없으셨다. 정 목사님은 우리에게 비타민 C 가루를 사주시고 꼭 건강하셔서 오래 사시고 복음을 전하셔야 한다고 하시고 당신은 아무 질병도 없고 건강하다고 하셨는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남편이 예전에 정 목사님이 어떤 회의를 하러 미국으로 여러 사람이 오셔야 하는데 물질이 많이 필요하다고 해서 2000불을 드렸는데 자기가 남에게 베풀기는 많이 했지만 남에게, 특별히 목사님들께 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우리가 올 때마다 식사 대접을 정성껏 해 주시고 너무 잘해 주셨다.


남편은 치과 약속도 있고 신학교 강의도 있고 곧바로 가서 뵙지를 못했고 금요일 아침에 치과에 갔다가 오후 4시 입관예배 때에 아산 병원으로 찾아갔다. 목사님 사진이 걸려 있고 여러 유명 인사의 화려한 꽃다발이 많아서 고인이 굉장히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를 나타내었다.


큰터교회 문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하셨고 에스더 이용희 교수께서 기도를 하시고 남편이 축도를 하고 예배를 드렸다. 미국에서 아직 결혼을 안 한 큰형과 치과의사인 작은아들이 날아와서 입관 시에 어머니의 얼굴을 부비며 마지막 인사를 하였고 나도 가슴에 얼굴을 묻고 왜 먼저 가셨느냐고 하늘에서 기도해 달라고 사랑합니다 잘 가시라고 인사를 했다.


하늘에서, 공중에서 우리를 다 내려다보실 것이다. 갑자기 돌아가셨지만 천국의 집이 준비되어서 가셨으니 울지 말아야 하지만 눈물이 난다. 그리고 우리를 많이 사랑해 주셨던 그리운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허무한 인생, 언제라도 주님께 훨훨 잘 날아가야 하겠다고 다시금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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