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그리운 오빠(1)

전문가 칼럼

[레지나칼럼] 그리운 오빠(1)

매년 이 기간이 되면 몸도 마음도 많이 아프다.

그저께는 홈디포에 가서 꽃을 잔뜩 사왔다.

그리고 화단에 자리를 잡아 놓았다.


이제 시간을 만들어서 심어야지!

오빠는 꽃을 참으로 좋아했다.

아프리칸 모리골드, 버버나, 록호일, 팬지….


토요일 오후 앞마당에다가 며칠 전 사온 꽃들을 색깔대로 배열해서 자리를 잡은 후 심기 시작했다.

하루 온종일 꽃을 심으면서 어린 시절의 많은 생각들을 했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나의 사랑하는 오빠 두 분이 3일 간격으로 하늘로 떠나가 버렸다.


큰오빠는 나하고의 나이 차이가 아주 많았다.

큰오빠는 나에게 항상 어려웠으나 항상 조용조용한 말씨로 한참이나 어린 막내 여동생인 나에게 인생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곤 했던 선생님 같은 분이셨다.


가끔씩 막내 여동생인 나를 불러내어 좋아하는 간식거리도 사주며, 학교생활을 잘해야 미래가 보인다며 잘하는 것은 격려도 해 주고, 내가 부족한 점은 코치도 해 주었다.


큰오빠는 가끔씩 나에게 노래를 불러 주고는 했는데 지금도 생각이 나는 노래는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오빠는 그 시절 누구나가 부러워하는 서울대학교 공대를 나와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나하고 나이가 많이 차이가 나지 않는 막내오빠는 잘생긴 외모에 재미있는 유머 감각과 음악에 재능이 많아서 항상 비틀즈의 노래에 심취해서 기타를 치곤 하였다.


지금도 가끔씩 흥얼거려 보는 비틀즈의 “렛잇비.”

나도 이 노래를 아주 좋아한다.

오빠와 나는 함께 교회에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불려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함께 찬양을 하던 기억도 새롭다.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니…”



막내오빠는 아주 재미있는 성격으로, 형제들 중에서 제일 어린 나는 늘 오빠를 졸졸 따라다니며 오빠의 장난에 매번 넘어가 골탕을 먹기도 하였다.

그때에는 설탕이 그리 흔하지 않을 때라서 엄마가 설탕을 깊숙이 두었던 생각이 난다.


설탕이 비싸기도 했지만 우리 엄마는 이가 썩는 것을 무척이나 조심하던 분으로 우리에게 사탕이나 단음식은 거의 못 먹게 하셨다.

특별히 우리 엄마는 90세가 넘으셔도 본인의 치아를 갖고 계셨었다.


아무튼 설탕을 구입하신 엄마는 부엌에다 설탕을 두지 않고 ‘광’(지금의 거라지) 깊숙이 숨겨 놓아서, 아무도 설탕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였다.

광에는 이것저것 많이 쌓여 있어서 아무리 우리가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어서 우리 형제들을 아예 단것하고는 거리가 멀게 하였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우리 형제들은 단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직 어린 나는 사탕이 먹고 싶어서 아버지가 용돈을 주면 조르르 집 근처에 있는 슈퍼에 가서, 지금도 생각하면 불량식품이 뻔한 색깔이 형형색색인 사탕을 사서는 집에서 멀찍이 떨어져 가서는 담벼락에 몸을 기대고는 입에다 사탕을 물고서 사탕의 단맛을 음미하곤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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