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명기학원] 서양 문화에서 7이란 숫자는?

전문가 칼럼

[민명기학원] 서양 문화에서 7이란 숫자는?

이제 7월이다. 일 년의 반인 6개월을 막 지나 반환점을 돈 시기이다. 어떤 전환점이 되는 시기를 맞으면, 많은 경우 지금까지를 돌아보고 잘잘못을 점검한 뒤 앞으로 맞닥뜨릴 일들에 적용하여 더 나은 미래를 세워 나가려 노력한다. 특히 우리 자녀 교육의 분야에서 7월은 한 학년을 마치고 10주라는 긴 여름방학을 보내며 과거를 돌아보고, 다음 학년을 지혜롭게 준비하는 기간이라는 점에서 선용해야 할 시간이다. 


물론 이러한 학년의 구분은 많은 경우 서양의 경우이며, 일본과 우리나라는 봄에 시작되는 등 서로 다르다. 그래서 오늘은 교육 칼럼의 본분을 잠시 망각하고, 7월을 맞아 7과 관계되는 지나간 역사의 결과를 돌아보는 서양 문화 탐방의 곁길로 새어 본다. 7월이라는 이름 “July”를 위해 서양에서 사용하는 ‘달’ 이름의 기원으로 시작해 보자. 


7월(July)과 8월(August)은 신의 이름이 아닌 로마의 정치가들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7월은 로마의 정치인인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에서 따왔고, 8월은 로마의 첫 번째 황제인 아우구스투스(Augustus)를 본떠 지었다. 한편, 9월(September)과 10월(October), 11월(November)과 12월(December)은 율리우스 달력이 만들어지기 전에 각각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열 번째 달이었고, 


로마의 숫자인 7, 8, 9, 10에서 유래했다. 9월은 라틴어의 7이라는 의미의 septem에서 왔는데, 원래 현재 우리가 쓰는 9월(September)은 위에서 본 7월과 8월이 로마 유명인의 이름을 따 사용되기 전에 일곱 번째 달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10월은 원래 여덟이라는 의미의 octo에서 유래했고, 11월은 아홉이라는 의미의 novem에서, 12월은 열이라는 뜻의 dec에서 왔다.


또 다른 7을 사용한 서양의 문화 유산 중에, “the seven deadly sins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죄악)”이라는 말이 있다. 여러 독자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이 개념은 기독교적인 것이며, 특히 가톨릭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죄 짓지 않고 잘 살기 위해 넘지 않아야 할 선을 그어 놓은 것으로, 또는 가지 말아야 할 구역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원 후 3, 4세기경에 은둔자들이 정리해 놓은 여덟 가지 죄악을 6세기 후반에 교황 그레고리 1세가 처음으로 일곱 가지 죄악으로 간추려 놓은 것이 우리가 아는 “일곱 가지 죄”이다. 그 후에 가톨릭의 교리 확립에 큰 영향을 미친 토마스 아퀴나스 등에 의해 7가지 ‘주된 (capital)’ 죄악 또는 죽음에 이르는 죄악 등의 의미를 갖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 일곱 가지는 교만/자만(pride), 탐욕/욕심(greed), 시기/질투(envy), 탐식/과음(gluttony), 게으름/나태(sloth), 분노/노함(wrath)과 음욕/정욕(lust)을 말한다. 그중에서 가장 무서운 죄악이며 만악의 뿌리라고 생각되는 것이 교만인데, 이는 자기 자신이 남들과 다르며 자신보다 높은 존재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브뤼헐과 같은 화가들은 거울에 자신을 비춰 보며 황홀경에 빠져 있는 귀부인과 옆에 선 공작새로 이를 비유하기도 했다. 


같은 화가가 그린 “바벨탑”의 주제처럼, 자신이 하나님과 동격의 존재가 된 것으로 착각하는 일이 바로 교만이리라. 이 죄/악덕과 대척점에 있는 일곱 가지 지고의 선(the seven heavenly virtues)은 위에 열거한 각 악의 반대 개념으로 순서대로 보면 다음과 같다: 겸손(humility), 선행(charity), 친절(kindness), 절제(temperance), 근면(diligence), 인내(patience)와 순결(chastity). 


자라나는 우리 자녀들이 모두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원하게 되는 미덕들이다. 이러한 미덕들은 우리 인간들이 누구나 등에 지고 사는 두 가지 조건인 온갖 욕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 남과의 비교에서 비롯하는 더 가지려는 욕심과 남보다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두려움 말이다. 


나 자신이라는 존재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더불어 사는 내 가족, 이웃, 나아가서는 원수도 나만큼 귀한 자들임을 확신하게 되면(이들을 사랑하게 되면) 위의 미덕들은 자연스럽게 실천되는 것이리라. 내 이웃도 나만큼, 길거리의 홈리스 분들도 우리만큼, 우리가 혐오해 마지않는 정치가들마저도 우리네 보통 사람만큼 귀중한 자들임을 믿는다면, 이러한 겸손과 선행과… 


순결의 마음은 우리네 마음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될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창조 이전에 이미 지명하여 불러 주셨고, 우리를 창조할 때 신의 이미지와 동일하게 창조했다고 한다. 단지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를 그리 창조했으니, 다른 사람을 어찌 존중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www.ewaybellevue.com)

0 Comments
제목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