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시련의 은총”
밤이 깜깜할수록 별빛이 찬란하다. 그리고 겨울이 추울수록 여름이 덥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곳에서 자라는 나무는 강하고 쓰러지지 않는다. 뿌리가 깊게 내렸기 때문이다. 괌은 날씨가 무덥고 습기가 많아서 낮에 땀이 한 번 나면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대신에 큰 나무 그늘 밑에 있으면 금세 땀이 사라지고 시원한 기분이 감돈다. 괌에서 자란 나무들은 나무의 크기보다 뿌리가 훨씬 길고 깊이 내려있다. 심한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이 견딘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로 역경과 고난을 많이 겪은 사람일수록 삶이 원만하고 이해성이 많아서 존경을 받는다. 말하자면 고생을 많이 한 사람에게서 사람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데 그것은 그가 겪은 삶이 고되고 고생스러웠기 때문이다.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간다. 그러나 땀 흘려 번 돈이나 고생하여 번 돈은 가치가 있고 귀중하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쉽게 돈을 벌려고 머리를 쓰다 보니 남을 속이고 비행을 저지르게 된다. 급기야는 죄를 짓고 잡혀가거나 호되게 변을 당한다.
도둑질을 하는 사람은 들킬 수 있고 또 감옥에 가게 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 짓을 반복한다. 그래서 많은 불명예스러운 계급장을 달고 산다. 들키거나 잡히지 않으면 별로 힘 안 들이고 거액의 돈을 주머니에 넣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둑질은 돈이 없어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습관적으로 그 짓을 한다고 한다. 일종의 습관적인 중독성이라는 심리적인 분석 결과가 나왔다.
한때 대도라고 불리던 조세형은 평생 도둑질을 하다가 60세가 넘어서 하나님을 영접하고 전도사(?)가 되어 착실하게 가정을 이뤄 살고 있었다. 그러나 67세가 되어 이미 도둑질을 하기에는 몸이 말을 안 듣는 나이에 다시 옛 도둑 솜씨를 써먹다가 들켜서 말년을 종신토록 유치장에서 보내게 되었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어서 세상의 유혹에 약하다. 유명한 화가 반 고흐의 말에 의하면 인간처럼 깨지기 쉬운 물체가 또 어디에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깨지는 유리알보다 더 위태로운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고 했다. 매일 마음을 무장하고 정신적으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수 없이 실족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가 인간이다. 또 헛되고 헛된 것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 인간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런데 인간은 깨지지 않으면 큰 사람이 될 수 없다고도 한다. 금이나 다이아몬드는 몇 차례나 용광로를 드나들면서 불순물이 제거되고 녹은 다음에야 마침내 비싼 금속으로 다시 태어난다. 위대한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부서지고 깨어지는 아픔을 겪은 사람일수록 고귀한 인격의 소유자가 되는데 이것을 우리는 “시련의 은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거성이고 위대한 목회자인 고 한경직 목사님은 인생의 아픔을 누구보다 깊이 체험하고 맛보았다. 젊은 시절에 그는 폐결핵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고 한국 교회 성장을 위해 갖은 오욕과 질곡의 역사를 몸소 짊어지고 하나님께 매달려 눈물짓던 성직자였다. 오래전에 부활절을 앞두고 K일보 기자가 남한산성 고택을 찾아갔다.
부활절에 즈음하여 한국 교회를 향해 한 말씀을 부탁했다.
“교회는 하나님입니다. 나와 좀 다르다고 쉽게 정죄하면 안 되지요. 인간은 어차피 죄투성이예요. 그것을 알면 함부로 남을 정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가 있다는 점입니다.”라고 했다.
그는 또 1992년 세계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템플턴상 수상식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한 고백을 했다. “저는 온통 죄 덩어리입니다. 또 신사참배를 방조한 죄인입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은 그 누구도 그를 향해 손가락질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목사님을 향한 존경심이 더욱 커졌고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다.
그분은 평생 영락교회의 당회장으로 시무하면서 회의 때 한 사람이 반대해도 그 안건을 통과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많은 다른 장로들이 항의하면 “만약 그 반대한 분이 당신이라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면서 더 두고 기도하자고 했다. 그다음 당회 때 그 반대하던 장로도 찬성하여 만장일치로 결의를 했다는 일화도 있다.
99마리의 양을 우리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예수님의 교훈을 그분은 몸소 실천했다. “내가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 속에서 고통받고 계시는 예수님이시다.”라고 말한 테레사 수녀의 말이 생각난다.
참으로 진솔한 믿음의 소유자이고 한경직 목사님 역시 주님의 일을 주님의 입장에서 행한 훌륭한 목사임에 틀림이 없다. 시련의 은총 속에서 이런 목사가 요즘 더욱 생각나고 우리 주위에 이런 목사가 절실히 요구된다.